런던에서 남서쪽으로 약 160km 떨어진 바스에는 고대 로마인들이 즐기던 온천장이 그대로 남아 있다. 1세기 중반, 영국을 지배했던 고대 로마인들은 온천수가 나오는 바스에 거대한 ‘로만 바스(Roman Baths)’를 지었는데, 지금도 당시의 웅장했던 모습을 가늠할 수 있다. 유네스코(UNESCO)에 의해 세계문화유산 지역으로 지정된 이곳은, 영국의 대표 작가 제인 오스틴(Jane Austen) 소설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1800년대 가족과 함께 이사 와 이곳에서 집필 활동을 했던 제인 오스틴. 그녀의 흔적을 찾기 위해 해마다 많은 관광객이 이곳을 방문하는데 명소로 가득한 바스에서도 빠뜨릴 수 없는 오래된 관광 명소 중 하나가 바로 샐리 런의 집이다.

샐리 런의 집 이야기는, 샐리 런이 영국에 온 1680년 훨씬 이전부터 시작된다. 프랑스가 16~17세기에 걸쳐 신교도들을 추방할 때 젊은 프랑스 여자 샐리 런은 영국으로 망명한다. 바스에 정착한 그녀는 지금의 집에 세를 들었다. 그녀는 빵집을 운영하던 한 제빵사 밑에서 일하며 길에 나가 빵을 팔았다. 빵 굽는 솜씨가 있던 샐리는 브리오슈(brioche: 버터, 달걀, 우유, 이스트 등을 넣고 만든 프랑스 빵)를 빵집에 소개했고, 브리오슈의 레시피로 개발한 번(bun: 약간 단맛이 나는 둥글넓적한 빵)이 영국 전역으로 알려지면서 크게 성공했다. 그 후 1930년경 샐리 런의 집에서 티룸을 운영하던 메리(Marie)는 어느 날 우연히 비밀 벽장 속에서 고문서를 발견했는데 바로 샐리의 번 레시피였다. 현재 원본의 레시피는 한 은행에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녀의 이름을 붙인 샐리 런의 번(Sally Lunn’s bun)은 수백 년 동안 내려오고 있다.

1482년에 지어진 샐리 런의 집은 바스에서 가장 오래된 4층 집이다. 번은 1890년대까지 부엌에서 장작불 지피는 오븐으로 구워졌지만 이후에는 석탄을 이용했다. 지금도 지하 1층에는 번을 구울 때 사용한 기구들을 비롯해 당시 부엌의 모습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커다란 투명 유리로 막은 한쪽 벽면 아래에는 발굴 작업을 했던 고대 로마와 중세의 건축 토대를 볼 수 있다. 식사를 마친 손님들은 부엌 박물관을 무료로 관람할 수 있으며 매일 오후 6시까지 연다. 부엌 박물관 바로 옆의 작은 가게에서는 낱개로 담은 번을 판매한다. 가격은 한 개에 우리 돈으로 약 2,800원으로 3개 사면 1개를 덤으로 준다. 그 밖에 버터, 홈메이드 잼, 전통 차 등 여러 기념품들이 있으며 버터의 종류는 생강, 초콜릿, 브랜디(brandy: 포도주를 증류해서 만든 술), 계피 맛 등이 있다.

샐리 런의 집 메뉴에는 ‘규칙은 아니지만’이라는 안내 문구가 눈에 띈다. 번의 윗면은 단맛을 내는 요리, 아랫면은 풍미 있는 요리에 사용되기 때문에 두 명이 함께 온 손님은 두 가지 메뉴를 시켜보라는 것이다. 번의 위와 아래를 먹어보기를 제안하는 요긴한 팁이다. 번은 항상 반쪽만 나오기 때문에 두 가지 메뉴를 시켜야만 번 한 개를 제대로 먹을 수 있다는 것. 이곳의 영업은 오전 10시 아침 식사를 시작으로 점심 식사, 전통 애프터눈 티, 그리고 오후 5시부터는 저녁 식사로 이어진다. 촛불이 켜진 낭만적인 저녁 식사를 즐기려면 미리 예약을 해야 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아흔이 넘은 한 할머니는 식당 한편에 장식된 골동품 인형을 보고 자신이 어릴 때 갖고 놀던 것과 똑같다며 인형을 보러 자주 와서 식사를 즐겼다고 한다. 사람들은 샐리 런에서 그들의 추억을 다시 꺼내 본다. 오래된 손님들 대부분은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했던 추억을 찾아오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샐리 런의 집에서 추억을 되새기고 그것을 그리워하는 사람들. 지금의 샐리 런은 또 얼마나 긴 세월로 이어질까. 이 추억은 절대 다른 빵이 따라 할 수 없는 맛일 것이다.

Tip!
Sally Lunn’s House
주 소: 4 North Parade Passage, Bath, BA1 1NX
전 화: [+44] 01225-461634
웹사이트: www.sallylunns.co.uk
매장 오픈: 주중 10:00a.m~9:30p.m
금, 토요일 10:00a.m~10:00p.m
일요일 11:00a.m~9:00p.m

- 『떠나고 맛보고 행복하다』 중에서
(장완정 지음 / BnCworld / 304쪽 / 1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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