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이 제 잘난 맛에 산다는 뜻은 애초 아니었을지라도, 그러나 부인하기 어려운 뿔심대 하나가
마치 엉덩이의 뭣처럼 늘 목 뒤에 굳게 박혀 있었음을 먼저 전제해야겠다. 남들의 눈에 좋게
보였기를 바라기에는 당연히 무리가 따르겠으나 세상의 일상적인 눈에는 그런대로 '인간적인'
일면이 전혀 없지야 않았을 터라고 애써 자위할 수는 있겠다. 우여곡절을 거친 끝에 이제 가
까스로 어느 계기의 터널 하나를 지나고 나서 돌아보니 차마 쑥스러운 반생의 자화상이 아닐
수 없다.

먼 얘기지만, 기인은 유년의 6.25 아수라장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실로 어처구니 없이 내게 강
요된 불공평한 운명을 그냥 곱단히 수용하기에는 '인간적으로' 너무나도 억울했고, 또 그런
극한적인 열악의 환경 속에서 짓밟혀 죽지 않으려고 이를 악물고 바둥거리기만 한 성장 과정을
통해 내 인간의 격은 많이도 비뚤어졌다. 정신분석을 하자면 갈 데 없는 반항심일 테고, 상투
포장을 하자면 '어떻게 살아온 난데-'하는 자존심의 뿔심대랄 수 있었으리라. 부디 상상하기
바란다.

무릇 모든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진리와 마찬가지로 어느 경우에도 결코 한 치의 틀림이
없으신 하나님의 정교 무비한 섭리를 외면한 채 그렇게도 비뚤게만 살아온 반편 인생의 악다구
니 행로가 어찌 순탄했기를 바라리요. 이미 예비된 말로 추슬러 정리하건대 그것은 다만 우왕
좌왕이었고, 갈 데 없는 좌충우돌이었으며, 동시에 그것은 수렁이 수렁을 파는 나락으로의 침잠
에 다름이 아니었던 것이다.

당연히, 나이 먹어 철이 들면서부터 슬슬 괴롭기 시작했다. 적어도 그것은 내가 선택한 사회적인
직능이나 현실적인 생업의 문제 따위와는 전혀 별개인 형체없는 괴로움이었기에 더욱 좌불안석
이었다. 어쩌면 그것은 지천명을 눈 앞에 둔 사람에게 능히 있을 법한 반생의 결산 본능과 그로
인한 허탈감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마침내 어렵사리 결심을 한 어느날의 기억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은근히 속으로만 오래 망설이던 일, 뭔가 앞 뒤 이빨이 맞지 않아 꼬이는 일이 생길듯만 싶어
망설이고 또 망설이던 일을 마침내 결행했던 것이다. 어인 일로 때맞춰 내게 다가와 준 고마운
이들의 인도에 따라 마음을 어렵사리 비우고, 그리고는 아직 친숙하지 않아 낯설기만 한 하나님
앞에 조그만 항복의 흰 깃발을 만들어 들고 쭈볏기리며 나아갔다.

1990년 4월 29일의 빛나는 주일 아침이 바로 그 첫날이다. 하나님의 성전에서 내가 받은 그 느낌
은 일차적으로 평온, 마음의 평온이었다. 그리고 굳게 닫힌 빗장을 풀어 온몸을 열어제끼고 바라본
그곳에 누구도 꼼짝못할 '사랑'이 있었음을 감히 증거하고 싶다. 이미 오래 전부터 탕아의 귀가를
기다려 오신 주님의 잔잔한 미소가 마치 전률의 혈액인 양 내 온몸을 감싸고 한없이 흘러내림을 느
꼈다. 게다가 목사님의 목화송이처럼 순하디 순한 표정과 가식없는 말씨에 내 불안정한 정서 감응의
스트링은 어느덧 조율당하고 있었다. 조율사의 등 뒤에 또 누군가 한 분이 분명히 계시는 듯한 느낌
을 나는 받았다. 그러지 않고서야 나이 먹은 인간이 어쩌면 저렇듯 목화송이 같을 수가 있나. 그분
은 누굴까? 그야 아무튼, 느끼기에 따라... 어찌 보면 그것은 한 고귀하신 분이 흉허물 하나 없는
허허로운 표정으로 내게 보내 주시는 윙크이기도 하였고, 느끼기에 따라 그것은 더없이 친숙한 어떤
손길의 따스함이기도 하였다.

목사님의 설교, 그 말씀의 구체적인 어휘는 오히려 중요한 게 아니었다. 말로 이루 형언할 수 없는
'느낌'의 무엇 때문에 내 몸은 마치 버터처럼 흐물흐물 녹아내리는 듯하였다. 하드펀쳐일수록 반드
시 한 번씩 겪는다고 하는 녹다운의 혼미가 혹 이런 게 아닐 지도 싶었다. 내게는 그야말로 난생
처음 겪는 경이었다. 전 같으면, "이거야 말로 우습지 않나, 이래뵈도 내가 누군데..."라고나 해야
할 국면이었다. 그날 온종일을 나는 줄 끊긴 풍선처럼 어찔어찔 붕붕 떠서 새로운 세상을 내려다
보며 하루를 보냈다. 그리고 많이, 많이도 생각했다.

세상 사람들은 믿지 않겠지만, 그날로부터 나는 또 하나의 새로운 주일 아침이 은근짜한 설레임으로
기다려지기 시작했고, 동시에 그날 밤부터 오랜 고질이던 불면증이 거짓말처럼 씻은 듯이 사라졌던
것이다. 나를 아는 누가 나의 이런 사실을 믿을 것인가. 그러나 얼마 후 나의 이 얘기를 들은 신앙
선배 한 분이 말했다. "하하하... 막 쪄낸 찐빵이구료. 바로 그때가 제일 따끈따끈 맛있는 법이죠."
선배의 말이 가슴에 와 닿았다. 나는 마침내 막 쪄낸 찐빵으로 새로 태어난 것이다. 쯧쯧, 교회에
몇 번 나간 죄로 이 나이에 찐빵이라... 어쩐지 찐빵은 카스테라보다 약간 품위가 떨어지는 듯싶기
도 했지만, 그 사실조차 나는 즐겁다. 무한히 즐겁다. 어쩐지 연세가 많아 치아가 신통치 않을 듯
싶은 하나님 드시기에 따끈따끈 부드러운 찐빵이라면, 그렇다. 카스테라가 아니면 어떻고, 불란서
케잌이 아니면 어떠랴 싶은 것이다. 그래도 찐빵은 국화빵보단 그 푼수가 넉넉하지 않던가.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비로소 내게도 믿거라 하는 구석이 생긴 것이다. 주님의 사랑보다 더 큰 빽이 세상천지 어디에
있을 것인가. 그 많고 많던 세상 걱정은 다 어디로 가버렸는가. 차마 수줍은 흰 깃발 들어 하나님
앞에 그렇게 항복해 버리기를 참 잘했다. 그래서 나는 지면을 빌어 계속 그 '찐빵'의 신기한 얘기
들을 하나씩 증거해 나갈 것이다. 필시 나보다 더 따끈거리고, 나보다 열 배는 더 맛있는 미지의
귀한 찐빵 후보생들을 위해...

- 카피라이터 이만재의 <막 쪄낸 찐빵>(두란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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