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4년 헝가리의 시게라는 도시의 유대인들은 모두 체포되어 강제 수용소로 추방되었습니다. 소설가 엘리 비젤도 그들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대학살에서 살아남아 이십 년이 지난 후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그를 가장 고통스럽게 한 것은 시게 주민들이 그들의 기억 속에서 유대인들을 지워 버렸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시게 주민들이 이웃이었던 우리들을 쫓아내고 부인한 데 대해서 화가 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화가 난 것은 그들이 자신들의 어제의 이웃을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렇게도 빨리, 그렇게도 완벽하게 유대인들은 그 도시에서 쫓겨났을 뿐만 아니라 시간 속에서도 쫓겨난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의 죄악을 망각하는 것이 우리가 죄를 짓는 그 자체보다 더 큰 죄임을 암시합니다. 잊혀진 것은 치유받을 수도 없고 쉽게 치유받을 수 없는 것은 더 큰 악의 원인이 되기 때문입니다. 아우슈비츠에 대해 잊어버림으로써 히로시마 원폭을 낳았고, 히로시마를 잊음으로써 이 세상을 파괴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상한 기억들은 때로 우리 존재의 핵 속에 깊이 감추어져 있기 때문에 접근하기가 매우 어렵고 해부하려면 고통스럽습니다. 그래서 별로 좋지 않은 기억에 대해 가장 즉각적으로 취하는 반응은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어떤 고통스러운 일이 일어났을 때 우리는 재빨리 자신에게 또는 서로에게 말합니다. “잊어버리자. 그 일은 없던 걸로 하고 더 이상 이야기하지 말자.” 그것이 개인적이든, 공동체적이든 또는 국가적 고통이든지 잊어버리고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살기 원합니다. 그러나 그 잊혀진 기억들은 독자적인 힘을 갖고서 우리가 인간으로 기능을 발휘하는 일을 가로막습니다. 이런 일이 일어날 때 우리는 자기 자신에 대해 이방인이 됩니다.

그러므로 과거를 잊어버리는 일은 우리의 가장 친밀한 선생이 우리의 적이 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의 고통스런 기억들과 직면하려 하지 않음으로써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바꾸고 돌이키는 가운데 성숙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는 것입니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 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상처를 직면하는 자만이 치유가 가능하며 새로운 방식의 삶으로 들어갈 수 있음을 확증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의 상처 입은 기억들을 치료할 수 있을까요? 치유가 가능하도록 먼저 망각의 구석에서 기억들을 끄집어내고, 그 기억들을 우리 삶의 이야기의 한 부분으로 상기함으로써 치유될 수 있습니다. 상담 사역자의 첫 번째 임무는 과거의 상한 기억들에 접근하고 그런 기억들이 두려움 없이 빛 속으로 다시 나올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대부분의 감정은 단순히 우리 인생에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가보다는, 우리가 이런 일들을 어떻게 기억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과거에 일어난 일들을 우리의 존재 양식에 어떻게 통합하느냐에 따라 깊이 영향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억들이 두려움과 불안, 의혹과 같은 감정에 덮인 채로 있다면 하나님의 말씀이 열매를 맺을 수가 없습니다.

사역자의 사명은 인간의 이야기와 하나님의 이야기를 끊임없이 연결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 이야기를 유산으로 물려받았습니다. 우리는 이 이야기를 들을 때, 우리가 매일 듣는 많은 고통스러운 상처들이 그 고립 상태에서 풀려나 하나님과 우리 관계의 한 부분으로 드러나는, 그런 방식으로 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인간이 겪는 상처가 하나님이 직접 겪는 고통과 가장 밀접하게 연결되었음을 드러내 보이는 것이 바로 치유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생생하게 기억한다는 것은 우리의 작은 고통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겪으시는 엄청난 고통에 대한 이야기와 맥을 같이하고 있음을 밝힘으로써, 우리의 삶과 우리 안에 계시는 하나님의 삶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아 중심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은밀한 영역에서 우리의 고통스러운 잊혀진 기억들을 끄집어내심으로써 우리의 고통을 치유하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고통들을 모든 인류의 고통, 자신이 짊어지셔서 새롭게 바꿔놓으신 고통과 연결하십니다. 치유한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고통을 없애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고통이 더 큰 고통의 한 부분이고, 우리의 슬픔이 더 큰 슬픔의 한 부분이며, 우리의 경험이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라고 하신 그리스도의 더 큰 경험의 한 부분임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인간의 역사를 고난받는 종 그리스도의 역사와 연결함으로써 우리는 우리의 역사를 운명의 사슬에서 건져내고 우리의 시간을 크로노스에서 카이로스로, 우연 발생적인 사건과 사고를 우리의 인생 가운데서 하나님의 역사를 찾아내는 끊임없는 기회로 전환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생각나게 하는 사람’의 사역은 아주 구체적인 상황에서 사람들을 돕는 것입니다. 병든 사람들이나 슬퍼하는 사람들, 신체적 또는 정신적 장애를 가진 사람들, 가난과 억압에서 고통받는 사람들, 세상이나 종교 기관의 복잡한 망에 갇힌 사람들의 이야기를 이 세상에서 계속되는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의 한 부분으로 보고 경험하는 것입니다. 이런 통찰과 경험을 통한 치유는 아주 정확합니다. 왜냐하면 세상과 하나님 사이의 단절된 관계를 회복하여 전에는 단지 파괴적으로 보이던 기억들이 지금은 구원의 한 부분으로 되찾아지는, 그런 새로운 연합을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 『예수님을 생각나게 하는 사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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