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절정경영』(박인순 지음/베스트셀러) 중에서

장호원에 있는 동부전자 반도체 공장 설립을 할 때, 우리 회사 제품을 공급하면서 있었던 일이다. 원래 동부전자는 IMF 직전인 1997년 초에 공장을 세우려고 모든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도면 작업이 끝나고 필요 설비를 발주하는 단계에서 그들은 우리 회사의 제품을 선택했다. 우리는 제품의 완성과 운송 기간을 충분히 고려하여 계약을 맺었고, 납품 기간은 그로부터 상당한 여유가 있었다.

그러나 갑자기 IMF 사태가 시작되었고, 800원 대이던 원/달러 환율이 2,000원에 육박하게 되면서 모든 계획이 중단되는 상황까지 치달았다. 공장 설립 자체가 백지화되고, 계약 자체는 무효화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회사 역시 계약서는 보관했지만 더 이상의 진행을 하지 못했다. 공장 설립은 전혀 움직임이 없었고, 계약한 제품에 대해서도 최소한의 운송 기간을 가져야 할 마지막 발주 시기가 되었음에도 동부에서는 아무런 연락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한국 경제가 안정이 되어가면서 외국인 투자가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더니, 동부전자도 IBM의 외자 유치를 받아서 반도체 공장을 다시 세우기로 전격 결정을 내렸다. 갑작스런 결정이었던 만큼, 각종 설비 자재들에 대한 납기 일정이 촉박하게 돌아가고 있었고, 우리 회사도 거기에서 예외가 아니었다. 발주 시기는 이미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동부에서는 계약서에 명시된 납품일자를 지켜달라는 요청을 해왔다.

동부전자에 납품할 제품은 우리와 전략적 관계에 있는 핀란드의 P사로부터 공급이 되는데, 제품의 무게가 자그만치 약 10톤에 이르렀다. 납기일을 지키기로 한다면 해상 운송은 도저히 불가능한 것이었다. 우리는 결국 내부 조정회의를 거쳐 비행기로 운송하기로 결정했다. 비록 회계상의 손실은 발생하더라도 고객과의 한번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따른 것이다. 운송비는 1,500만 원이었다.

비행기로 호강을 한 그 제품은 납기일을 지키고 동부전자에 무사히 안착했다. 이 사건은 우리의 이미지를 고객에게 확실히 심어주는 계기가 되었다. 결국 그 날의 비행기 비용 손실 1,500만원은 회사 장부에 빨간 글씨로 기록되었지만 직원들에게는 회사가 고객과의 약속을 철저히 지킨다는 이념을 실제로 실현한 매우 상징적인 사례로 남았으며, 동부전자에게는 믿고 맡겨도 좋은 회사라는 신뢰를 쌓은 것이다. 다시 말해, 고객가치 모형 이론에 적용시킨다면, 1,500만원 투자에 수십 배가 넘는 정신적인 가치를 얻은 것이다.

오전(五錢)을 보고 오리를 간다는 개성 상인의 말이 있다. 이것은 개성 상인들의 철저한 장사 원칙이었지만, 요즘 기업들에게는 낭비로 비칠 것이다. 요즘 이론에 적용시켜 보면, 오리를 걸어가는 동안 발생하는 비용이 오전을 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런 우둔한 일을 자청한다.

- 『절정경영』(박인순 지음/베스트셀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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