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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상 임상옥의 목숨을 건 한판 승부
- 최인호 『상도』(여백 미디어) 중에서

조선후기 최고의 거상 임상옥은 당대 최고의 세도가였던 박종경에게 적심(赤心; 조금도 거
짓이 없는 참되고 충성스러운 마음, 丹心)을 주고 인삼교역권을 얻었다. 1809년 순조 5년 10
월 그는 중국으로 떠나는 사신들을 따라 5천근의 인삼(홍삼)을 마차에 싣고 연경을 향해 출
발했다. 2개월간의 긴 여행 끝에 마침내 조선의 인삼왕 임상옥이 5천근의 질 좋은 홍삼을
가지고 연경에 도착했다는 소식이 퍼지자 약재상들이 임상옥 일행이 머무는 여인숙 회동관
으로 몰려들었다. 견본을 본 약재상들은 이번에 온 인삼이 극상품임을 알아보고 인삼값을
마음속으로 가늠해보았다.

조선에서 건너온 인삼은 개별적으로 거래되지 않고 공시가로 정해져 일괄 거래되었다. 다음
날 아침 한 약재상 앞에 내걸린 인삼의 공시가를 본 중국 약재상들은 모두 자신의 눈을 의
심했다.

인삼 1근당 은자 40냥

중국상인들은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지금까지의 가격 1근당 은자 25냥에 비해 터무니없
이 비싼 가격이었기 때문이었다. 지난 2백년간 인삼 가격은 25냥으로 고정되어 불변이었다.
조선의 입장에서 보면 그 동안 인삼거래가 대부분 역관과 만상들에 의한 사무역에 의존하고
있었기 때문에 인삼가격을 담합할 만한 조직력도 없었고 자본이 영세해 중국상인들과 장기
전을 벌일 만한 여력도 없었다. 따라서 조선 상인들은 2백여 년 동안 울며겨자먹기로 고정
가격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조정이 인삼교역권을 공표함으로써 개별적인 사무
역은 불법이되고 거의 모든 인삼 교역은 임상옥에게로 단일 창구화되었던 것이다.

이제 오랜 관행을 깨뜨릴 때라고 생각한 임상옥은 지난해 인삼의 흉작으로 연경 일원에서
인삼의 씨가 말라 있음을 꿰뚫어 보고 마침내 건곤일척의 승부를 벌이기로 결심했다. 임상
옥이 극상품 인삼 5천근을 한꺼번에 가지고 온 것도 중국 상인들과의 단판승부에서 유리한
선제공격을 가하기 위한 치밀한 계산 때문이었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공시가로 내건 인삼 1근당 은자 40냥은 당시 중국상인들에게 던진 선전포
고와 같은 것이었다. 이 선전포고는 그가 상인으로서 죽느냐 아니면 천하 제일의 상인이 되
느냐는 명운이 걸린 한판의 진검 승부였다.

임상옥의 이러한 선전포고에 대해 중국 약재상들은 불매운동으로 맞섰다. 과거에는 인삼 가
격이 공시된 후 2-3일이면 전량이 판매되는 것이 보통이었다. 임상옥이 연경에 도착한 것이
동지 무렵인 12월 22일이었으니 여느 때같았으면 그 해가 가기 전에 인삼이 다 팔려나갔을
것이다. 해를 넘겨 새해가 되면 중국인들은 먹고 마시며 거의 한 달 동안을 명절 연휴로 보
낸다. 그리고 2월초면 환국(還國)하는 사신들과 함께 임상옥도 조선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중국 상인들의 요구는 간단했다. 임상옥에게 공시가를 정정하여 종전 값을 받으라는 것이었
다. 그것은 무조건 항복을 요구하는 일방적 통고와 같은 것이었다. 만일 그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일체의 거래를 중지함으로써 인삼을 그대로 갖고 가게 하겠다는 것이었다. 그
것은 연경의 상계에서 추방하겠다는 의미이며 그렇게 되면 임상옥은 다시는 연경 상계에서
발을 붙이지 못하는 금치산자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임상옥은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는
사면초가에 빠져버린 셈이었다.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중국 상인들의 요구대로 공시가를 종전의 값으로 낮추거나 아니
면 인삼을 그대로 갖고 돌아가는 방법뿐이었다. 그러나 두 가지 모두 임상옥에게는 파산을
의미했다. 공시가를 종전대로 내리면 인삼은 모두 팔 수 있겠지만 그것은 굴욕을 의미하는
것이며 앞으로 연경 상인들과의 거래에 있어서 그는 칼자루를 쥐지 못하고 칼날을 쥐게 될
것이다. 그리고 조선의 인삼값은 영원히 25냥으로 굳어지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인삼을 조
선으로 가지고 돌아간다면 자존심은 지킬 수 있을지 모르지만 농부와 사상들에게 인삼 대금
을 치르고 나면 임상옥은 완전히 빈털터리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진퇴양난, 이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임상옥은 석숭 큰스님의 뇌성과 같은 목소리가 떠올
랐다.

"이 죽을 사(死) 자가 너를 첫 번째 위기에서 살려줄 것이다. 다른 방법은 없다. 오직 이 죽
을 사 자, 한 자뿐이다"

그러나 임상옥은 죽을 사 자가 어떻게 자신이 처한 현재의 위기를 벗어나게 해줄 수 있는
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러한 임상옥의 고민에 해답을 내려준 사람이 바로 추사 김정희였다.
임상옥의 이야기를 들은 김정희는 필사즉생 생즉필사(반드시 죽기를 각오하면 살 것이오,
반드시 살기를 꾀하면 죽을 것이다.)라는 이순신 장군의 글을 설명하고 백척간두에서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한 발자국 더 나아가는 길뿐이라고 말했다. 순간 임상옥은 석숭 큰스님이
써주신 죽을 사 자의 의미를 이해하고 큰소리로 웃고나서 김정희 앞에 세 번 무릎을 꿇고
절했다.

다음날 임상옥은 인삼 가격을 새로 조정하여 공시했다.
인삼의 새 가격이 공시된다는 소식을 들은 중국 상인들은 마침내 임상옥이 자신들의 요구대
로 인삼가격을 낮췄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환호성을 올리며 동인당 앞으로 몰려들었다.

그러나 새로 공시된 인삼가격을 본 중국상인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인삼 1근당 은자 45냥

중국 상인들은 침을 뱉으며 임상옥에게 꾸에즈(귀신같은 사람), 토우(도둑) 등의 욕을 퍼
부었다. 그러나 새로운 최고가의 공시 가격을 내붙이고 난 임상옥은 장사일에 대해 전혀 신
경을 쓰지 않고 김정희를 따라 학계의 거목들을 찾아다니며 시간을 보냈다.

2월 2일 마침내 임상옥이 중국 상인들과 건곤일척의 상전을 벌여야 할 결전의 날이 다가왔
다. 다음날인 2월 3일은 조선의 사신들이 환국을 위해 연경을 출발하는 날이었기 때문이었
다. 연경의 상인들은 그간 사람을 풀어 은밀히 임상옥의 일거수 일투족을 염탐하고 있었고
내일이면 임상옥이 사신들과 함께 연경을 떠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있었다. 5천근의 인삼
바리는 어떻게 될 것인가? 임상옥의 인삼은 연경에서 팔지 못하면 다른 곳에서는 팔 데가
없을 것이다.

마침내 귀국할 모든 채비가 끝나자 임상옥은 인삼을 모두 여인숙 마당에 쌓게 했다. 5천근
의 인삼이 쌓이자 임상옥은 한켠에 쌓아 놓은 장작더미에 불을 붙이게 했다. 갑자기 대낮에
장작을 태우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화광이 충천하자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인삼을 불속에 집어 넣게." 임상옥이 단숨에 말하였다.

곧 인삼의 독특한 향이 매캐한 연기에 섞여 번져 나갔다. 때아닌 불놀이를 구경하던 사람들
은 순간 경악을 금치 못했다. 임상옥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던 거간꾼들은 혼비백산
하여 중국 약재상들에게 자신들이 목격한 내용을 낱낱이 고했다. 어쩌면 도라지를 태우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여인숙으로 달려온 중국 상인들은 사포닌에서 나오는 인삼 특
유의 냄새를 맡고 인삼이 타오르고 있음을 눈으로 직접 확인했다. 그들은 상상을 초월한 임
상옥의 광기에 기가 질렸다. 그리고 분노하기 시작했다. 인삼은 조선의 무역상들에게만이 아
니라, 연경의 약재상들에게 있어서도 생명 그 자체였다. 천하의 명약인 인삼을 불속에 태워
버리는 임상옥의 태도에 연경의 약재상들은 분노를 느꼈다. 이제 다급해진 것은 연경 상인
들이었다. 인삼이 불에 타 모두 사라져 버리면 임상옥 뿐만 아니라 자신들도 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임 대인, 제발 불을 끄시오."
"...당신들은 내 인삼이 필요치 않다고 불매운동을 맺지 않았소이까. 필요치 않은 인삼을 남
겨 무엇을 하겠소이까 그대로 가져간들 소용없고 남겨두어 버림받아 쓸 일도 없으니 자연
태울 수밖에."
"아이구, 임대인 우리가 졌습니다. 일단 불을 끄고 말을 하도록 합시다."

불을 껐을 때는 5천근 중 반이 이미 불길 속에 사라져버리고 난 후였다. 그러나 임상옥은 2
월 2일 단 하루 만에 새로 공시한 1근당 45냥의 가격에 남은 인삼을 모두 팔아 치울 수 있
었다.

임상옥은 단 한번의 상전을 통해 우리 나라 역사상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있었던 연경 상인
들의 불매운동을 통쾌하게 물리치고 조선 최대의 무역왕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기회는 이처럼 위기 속에 있는 법이니 정치, 경제, 예술을 막론하고 모든 인간사는 자신을
버리고 반드시 자아포기의 죽음이란 무(無)를 통해야만 생명의 기쁨인 존재의 유(有)를 비
로소 깨닫게 되는 것이다.

- 최인호 『상도』(여백 미디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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