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비스 매니지먼트 인스티튜트 지음/21세기북스/351쪽/15,000원)

일본에서도 도시은행(시중은행) 간의 경쟁이 점점 격화되어 가던 1986년, 관서지방의 스미토모은행은 동경의 헤이와상호은행을 매수하여 그토록 바랐던 수도권 점포망을 확충했다. 102개에 이르는 헤이와상호은행의 지점은 수도권 영업을 강화할 수 있는 거점 망을 보유하고 있어 다른 은행들에도 충분히 매력적인 은행이었다. 하지만 헤이와상호은행은 계열사에 무조건 대출을 해주어 거액의 불량채권을 안고 있었다. 이런 이유로 다른 은행들은 헤이와상호은행의 인수합병을 쉽사리 결정하지 못했다. 하지만 스미토모은행은 마침내 헤이와상호은행을 인수했고 이를 통해 기존에 있던 107개의 수도권 점포망을 거의 두 배로 늘림으로써 도쿄의 상위 은행에 필적하는 영업 거점 망을 확보했다.

이때 같은 관서지방의 산와은행은 상당한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산와은행 역시 헤이와 상호은행의 매수를 긍정적으로 검토했으나 불량채권의 실태가 드러나자 결론을 내지 못하고 망설이는 사이에 스미토모은행에 선수를 빼앗기고 말았다.

당시 산와은행은 특유의 도전정신과 상하 간의 의사소통이 원활한 조직 문화를 바탕으로 업계 상위권에서 건투하고 있었다. 하지만 재벌계 은행이 아니고 도쿄에 비해 시장 규모가 작고 성장률이 높지 않은 오사카에 기반을 두고 있는 점이 약점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이로 인해 중요한 점포망이 관서지방에 편중되어 있는 상태에서는 앞으로 가속될 금융자유화의 흐름을 따라갈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도시은행으로서 입지를 높이기 힘들었다.

이듬해인 1987년, 산와은행의 가와카츠 행장은 대담한 결정을 내렸다. 중기경영계획을 UP90(유니버설 프로젝트 90)으로 명명하고, 유니버설 뱅크(Universal Bank, 은행업과 증권업을 동시에 경영하는 종합금융기관)로 변모할 계획을 발표했다. 그는 이 계획을 자신의 후계자인 와타나베 부행장에게 맡겼다. 사실 가와카츠 행장의 이러한 결단은 와타나베 부행장이 전무 시절부터 내세워온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다.

1984년, 와타나베는 미국 시찰 중에 금리자유화 이후 금융계의 변화를 보고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위기감을 느낀 그는 일본으로 돌아와 은행 내에 경종을 울렸다, 와타나베 부행장은 UP90계획을 발표함과 동시에 본부제를 도입했다. 그리고 투자은행 업무의 확립과 정보기능 강화, 시장(법인, 개인, 해외)별로 차별화된 영업을 위한 조직 변경 등 금융자유화에 대비해 국내의 기반을 강화하고 해외의 유니버설 뱅킹을 서둘렀다. 업계에서는 산와은행의 대담한 계획을 두고 허풍에 불과하다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1988년에 행장으로 취임한 와타나베는 우선 국내 기반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수도권의 리테일 뱅킹을 단기간에 늘려야 한다고 판단했다. 수도권에서 개인 및 중소기업 시장 공략의 인프라가 되는 지점의 수가 다른 은행에 비해 적었기 때문이다. 와타나베 행장은 지점을 순차적으로 늘리기에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므로 한꺼번에 무인지점, 즉 현금자동입출금기(ATM) 네트워크를 구축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는 다른 은행이 뒤쫓아오지 못할 만큼 빠른 속도로 300개의 무인지점을 신설하는 신 ATM프로젝트를 비밀리에 추진했다.

와타나베 행장은 지점을 확보하기 위해 각 지점에서 가장 우수한 영업사원을 선발하여 시스템이나 마케팅 관련 부서가 그것을 지원하도록 과감히 결정했다. 산와은행은 우선 수도권 30킬로미터 이내에 있는 약 300개의 JR역과 사철역 그리고 지하철역 앞에 8평 정도의 점포를 임대해 ATM을 설치하고 산와은행 간판을 달았다. 1990년 말에 이미 250개의 점포를 확보했고, 그 후에도 계속 점포를 늘려나가 유인지점을 포함해 전국에 1,000개가 넘는 점포망을 구축했다. 그리고 마침내 수도권에서도 1위의 도시은행으로 올라섰다.

한편 다른 은행들이 산와은행의 전략적 의도를 알아차리고 이에 대처하려 하였을 때는 이미 너무 늦었다. 게다가 수도권 전철역 앞의 입지 좋은 곳에 점포가 있었지만 산와은행과 같이 ATM네트워크를 구축하기에는 장소가 마땅치 않았다. 산와은행은 다른 은행이 눈치 채기 전에 더 많은 점포를 확보하는 데 주력했다.

그는 입지 좋은 장소를 확보하기 위해 영업력이 뛰어난 인재를 선발했고, 점포망을 늘리는 일 또한 최대한 빨리 그리고 비밀리에 추진하라고 엄명했다. 한편 네트워크를 운영하기 위한 운영혁신도 한몫을 했다. 예를 들어 ATM기기에 보유해 두는 현금의 적정 재고를 컨트롤하는 시스템을 갖추었다. ATM기기의 현금이 바닥나면 고객이 불편을 겪게 되지만 한편으로, 기기 안의 현금은 자금운용에 활용할 수 없기 때문에 회사에서도 그만큼 기회손실을 초래한다. 따라서 ATM이 많을수록 보유 금액도 커지기 때문에 적정 재고를 유지하는 시스템이 필요했다. 또한 계좌 개설과 같이 무인지점에서는 할 수 없는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업계 최초로 텔레마케팅과 연계한 메일 오더제도(인터넷을 이용한 계좌 신청)를 도입했다.

신 ATM프로젝트는 금융자유화 이후의 경쟁에 대비하기 위해 기획된 리테일 전략의 핵심이었다. 사람이 직접 예금을 유치하는 방식은 더 이상 채산이 맞지 않았고, 금리자유화 이후에 각 은행이 앞다투어 금리를 올리기라도 하면 은행 자체가 위기에 빠질 수 있었다. 이러한 모든 상황을 고려할 때 산와은행의 ATM 네트워크 구축은 대 성공이었다.

산와은행의 개혁은 전략을 실행하는 데 그치지 않고, 업무 환경을 개선하고 조직의 분위기를 쇄신하는 데도 힘을 쏟았다. 와타나베 행장은 변혁의 목표를 강점(Strength), 전략(Strategy), 전문성(Speciality)의 머리글자를 따서 3S라고 칭했다. 이제 산와은행의 목표는 탑 클래스에 진입하는 것이 아니라 탑이 되는 것이었다.

※ 산와은행은 도카이은행등과 합병하여 UFJ은행으로 바뀌었고 지금은 도쿄미츠비시은행과 합병을 앞두고 있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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