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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평한 세상에서는 달라져야 한다
(토머스 L. 프리드먼 지음/창해/496쪽/26,000원)

최근 삼성전자가 합작 파트너인 독일 질트로니크사(社)와 함께 싱가포르에 최초로 반도체 공장을 짓기로 결정했다는 뉴스를 보고 참으로 답답하고도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당초 삼성전자는 이 공장을 한국에 세울 계획이었으나 질트로니크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혀 무산되었다고 한다. 질트로니크가 반대한 이유는 한국의 열악한 투자환경, 즉 강경노조를 비롯한 한국의 반(反)기업 정서와 외국기업 홀대 정책 등이 걸림돌로 지적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한편으로 싱가포르 정부와 싱가포르 공무원들이 보여 준 적극적인 자세 또한 공장 유치에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싱가포르 정부는 이 합작법인을 자국에 유치하기 위해 15년간 법인세 면제, 2,700만 달러의 정부 보조금 지원 및 연리 2%의 저금리로 4억 달러의 장기 융자, 저렴한 임대료로 공장 용지 60년 동안 임대 등 각종 파격적인 혜택을 제공했고 싱가포르의 공무원들은 헌신적인 자세로 업무처리에 임했다.

오늘날과 같은 글로벌 경제 하에서는 국가 역시 기업과 마찬가지로 치열한 생존경쟁에 직면해있고 오로지 새로운 가치 창출을 통한 고용증대와 국부 증대만이 국민의 행복과 안위를 보장할 수 있다. 불과 얼마 전 우리는 외환위기를 통해 국가가 경쟁력과 부를 상실할 때 국민들이 어떠한 고통을 겪게 되는 지 뼈저리게 경험했고 아직도 그 상처가 채 아물지 않았다. 새로운 가치 창출과 고용증대를 위해서는 기업가들이 창의적 사고를 갖고 자유롭게 이윤 추구활동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오늘날 세계는 그야말로 평평해지고 있다. 자본은 가장 수익성 높은 투자처를 찾아 이동하고 인도의 실리콘밸리라고 할 수 있는 방갈로르의 여공이 하버드 대학 졸업생의 일자리를 빼앗고 중국의 노동자들이 미국인들의 일자리를 대신하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뉴욕 타임스>의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그의 최근 저서 『세계는 평평하다』에서 세계는 지금 놀라운 속도로 평평해지고 있으며 개인이든 기업이든 국가든 시장에서 일어난 급격한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고 경고하고 있다.

오늘날 세계는 평평해졌고 글로벌 경쟁무대에서는 개인이든 기업이든 국가든 모두가 동일한 조건하에서 경쟁한다. 나는 흥분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낀다. 평평해진다는 건 지구상의 모든 지적 자산을 하나의 네트워크에 연결해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번영과 혁신이 가능한 시대를 열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세계가 평평해지고 그에 따른 압박감과 이전 시대와의 단절, 그리고 이에 따른 기회 등으로 사람들이 미래에 대해 불안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세계가 평평해지고 있는 지금의 변화에는 이전의 변화와 질적으로 다른 것이 있다. 그 속도와 범위 말이다. 지금 세계가 평평해지는 과정이 놀라운 속도로 진행되면서 지구상의 모든 인류에게 동시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난 수십 년간 세계가 평평해짐에 따라 시장에서 일어난 급격한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 하이테크 기업들의 경험은 이러한 변화에 직면한 모든 비즈니스, 제도, 국민, 국가에게 하나의 경고가 될 수 있다. 그들이 변화를 따라잡지 못한 까닭은 리더십, 유연성, 변화된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상상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어리석거나 이를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변화의 속도가 그들을 압도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 시대의 가장 큰 과제는 이러한 변화에 압도당하거나 뒤처지지 않도록 소화해내는 것이다.


얼마 전 막을 내린 독일 월드컵에서 세계의 모든 선수들이 조국의 명예를 걸고 그 동안 갈고 닦은 기량을 마음껏 겨루었다. 그라운드에 선 선수들은 모두 동일하고 평등한 조건 하에서 열심히 뛰었다. 온 국민들은 선수들이 어떠한 제약도 없이 최선을 다해 뛸 수 있도록 한 마음으로 선수들을 지지하고 뜨겁게 응원했다. 그리고 마침내 선수들이 골을 넣고 승리를 거두었을 때는 모두가 열광하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그보다 더 치열한 생존의 현장에서 전 세계 기업들을 상대로 매일매일 피말리는 사투를 벌여야 하는 기업들에 대한 우리의 시선은 차갑기 그지없다. 우리 국민의 생존과 행복에 결정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기업들에 대해서는 차가운 시선과 함께 수많은 장애물과 갖가지 규제와 제약이 따른다. 대화와 타협보다는 마치 투쟁자체가 목적인 듯 강경일변도의 강성노조, 권위주의와 복지부동으로 일관하는 공직자들, 대기업에 대한 국민들의 곱지 않은 시선, 이것은 마치 그라운드에 선 선수들이 다리에 모래주머니를 차고, 맞지도 않은 운동화를 신고 뛰라고 하는 것과 같다. 그리고 치열한 경쟁 속에서 어렵사리 승리를 거두었을 때도 자긍심과 함께 찬사를 보내기보다는 오히려 질시의 눈길을 보낸다. 물론 우리가 기업에 대해 이처럼 부정적인 시각을 갖게 된 것은 언론의 탓도 적지 않다. 정부나 공직자가 평평해진 세계에서 경쟁해야 하는 기업들의 입장을 이해하고 소신 있게 행동한다면 언론이나 시민단체로부터 자칫 특혜 시비나 대가성에 대한 의혹을 받기가 십상이다.

평평해진 세계에서 대기업은 물론 산간 벽지의 농민들까지도 월드컵 무대에서처럼 오로지 시장의 논리에 따라 행동할 수밖에 없다. 경기에서 심판의 오심 하나가 선수들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경기의 흐름 전체를 망쳐 놓듯이 변화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잘못된 규제나 우리의 차가운 시선이 기업의 투자 의욕과 활동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 갈수록 더욱 평평해지고 있는 세상에서 이제는 노조, 공직자, 언론, 그리고 우리 국민 모두가 달라져야만 한다.

- 최종옥, 북코스모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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