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투르니에 지음 / CUP / 301쪽)

언젠가 한 친구가 내게 “우리는 왜 책을 읽어야 하는가?” 하고 물었다. 요지인즉슨 상당수의 책에서 말하는 내용이 대부분 우리가 알고 있는 빤한 내용이고 또한 책에서 말하는 내용들을 실천에 옮기는 것도 쉽지 않으니 결국 책을 읽어봤자 소용이 없는 것 아니냐 하는 것이었다.

필자는 인생의 후반기인 쉰으로 접어들면서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균형’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에 따라 책을 읽는 목적도 ‘삶의 균형을 이루기 위한 것’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책 한 권 한 권은 마치 퍼즐조각과 같다. 모든 조각이 제자리에 맞춰질 때 완전한 하나의 그림이 되듯이, 저마다의 책 속에 들어 있는 갖가지 생각과 이야기들이 내 안에서 통합될 때 비로소 균형 잡힌 사고를 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아무리 보잘것없고 진부해 보이는 책이라도 주의 깊게 읽다 보면 없어서는 안 될 한 조각 퍼즐조각임을 발견한다.

여러 책들을 통해 삶의 균형을 잡아 가노라면 삶이 참으로 단순해짐을 느낀다. 조각조각 떨어져 있을 때는 그리도 복잡해 보이던 퍼즐이 하나의 큰 그림으로 맞춰지기 시작하면 더 이상 복잡하지 않다. 물론 그 그림은 내가 죽을 때까지 미완성인 채이겠지만, 오늘 읽는 책 한 권으로 또 한 조각의 퍼즐을 맞추게 될 것을 생각하면, 단 하루도 손에서 책을 놓을 수 없다.

삶이 단순해지면서 가장 소중하게 여겨지는 가치는 사랑과 겸손이다. 스캇 펙 박사는 사랑이란 ‘자신과 타인의 정신적, 영적 성숙을 위해 자신을 최대한 넓혀 가려는 의지’라고 정의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사랑하기 위해 책을 읽어야 한다. 또한 책을 읽다 보면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에 열심히 귀를 기울이게 되는데, 그러한 경청은 내 안에 겸손이라는 덕목을 심어준다. 그러므로 우리는 겸손하기 위해 책을 읽는다.

최근 출간된 폴 투르니에의 『치유』라는 책에서 읽었던 한 구절은 우리가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가장 적절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나의 한 친구는 내가 책을 감탄하며 열심히 인용하는 것이 내가 너무 순진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나는 책을 읽을 때 언제나 정열적으로 읽는다. 책 때문에 실망해 본 적이 별로 없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그 친구는 책을 읽고 거의 마지막 페이지에 이르면 언제나 한결같이 환멸을 느끼며 ‘이 책에서 말하는 새로운 생각은 진실이 아니며, 이 책에서 진실인 것은 전혀 새롭지 않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이러한 태도의 차이가 생기는 근본 원인을 찾다가 깨달은 것은, 나는 책을 읽을 때 저자가 기록한 것만 읽는 것이 아니라, 저자의 글이 내 마음에 일으켜 주는 모든 사상의 줄거리와 심상들을 아울러 읽는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동의하지 않는 부분이나 논쟁거리가 될 만한 부분은 나의 흥미를 더욱 자극시킨다. 아마도 그런 호기심 때문에 책에 대한 불만보다는 책을 통한 기쁨이 더 크게 느껴지는 것 같다. 내가 읽는 모든 책을 통해 하나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신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진리를 거스르는 일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려고 노력한다.”

이처럼 책을 통해 만들어진 경청의 습관은 실제 생활에서도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하는 습관으로 이어지는 것 같다. 인격의학의 대가이기도 한 폴 투르니에는 경청을 통한 치유를 추구해온 의사로서 자신의 경험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나의 환자들은 종종 나에게 ‘선생님께서 제가 하는 말이 무엇이든 경청해주시는 그 인내심에 감복했답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나에게 경청은 인내심이 아니고 흥미로움이다. 나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이해하려고 하는 일에 너무 무관심하다는 것을 발견할 때 늘 놀랍다. 사물의 의미를 찾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열중할 만한 흥미로운 대상이다. 만일 우리가 이러한 호기심으로 삶을 채운다면,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을 통해서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평범한 일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근본적으로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의 삶과 모든 상황 속에 인간이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가 존재한다.”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이 책을 통해 균형 잡힌 시각을 키우고 자신과 타인을 사랑하고 치유하는 멋진 삶을 이루어 나가길 소망한다.

- 최종옥, 북코스모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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