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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미 너무 많은 것을 가졌습니다
(포토에세이 사람 제작팀 지음/중앙M&B/296쪽/10,000원)

한국에 온 지 13년이나 된 한 외국인 신부가 있습니다. 겉모습은 곱슬곱슬한 밤색 머리칼에 높은 콧대를 가진 서양인이지만 이제는 김치찌개와 된장찌개가 가장 자신 있다는, 한국 사람이 다 된 김하종 신부님. 사람들은 그를 노숙자의 대부, 밥하는 신부라고 부릅니다.

그의 하루는 길 위에서 시작됩니다. 아직 채 동이 트지 않은 새벽, 그는 작은 봉고차를 끌고 가락시장으로 갑니다. 아직 문을 열지 않은 시장 한구석에서 그를 기다리는 것은 바로 시장 사람들이 모아 둔 식료품입니다. "오늘은 별로 많지 않네요, 신부님." "아뇨, 이 정도면 많아요."

더 많이 주지 못해 안타까운 시장 사람들의 마음이 그의 손수레에 함께 실려 갑니다. 시장 한 바퀴 돌아 장을 보고 짐을 차에 모두 싣고 떠나려니 벌써 11시. 아직 아침도 못 먹었지만 차 속을 가득 채운 찬거리들이 그의 배고픔을 까맣게 잊게 합니다.

신부님의 봉고차가 도착한 곳은 그의 한국 생활이 온전히 녹아 있는 '안나의 집'입니다. 그가 노숙자들을 위해 만들고, 지금껏 지켜 온 곳. 원래는 다른 곳에서 노숙자들을 위한 조그만 점심 급식소로 출발했습니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늘어나는 노숙자들과 주변 상가의 반대로 몇 번의 이전을 거듭하다가 우여곡절 끝에 다시 지금의 자리에 문을 연 것이 3년 전. 성남의 한 성당 뒷마당에다 컨테이너로 만든 초라한 이층짜리 가건물이지만 신부님은 이마저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처음 무료 급식소를 한다고 했을 때 그들에게 밥을 주면 더 게을러질 것이라 질타하는 목소리가 그는 가장 마음이 아팠다고 합니다. 물론 신부님도 압니다. 진정으로 노숙자를 위하는 길은 노숙자들이 다시 재기하여 사회의 일원으로, 한 가정의 가장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돕는 데 있음을 말입니다. 하지만 신부님은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그저 길바닥에 누워만 있는 노숙자들에게 당장 시급한 것은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최소한의 힘을 주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신부님은 주위의 질타에도 불구하고 4명의 봉사자와 함께 안나의 집에서 무료 급식을 강행했습니다. 이제는 그의 뜻에 공감하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안나의 집은 무료 급식뿐 아니라 의류 지원, 무료 의료 서비스, 실업 상담소 역할까지 하고 있습니다. 비로소 노숙자들을 진정으로 위하는 도움까지 주게 된 것입니다.

그런 신부님이 절대로 빠뜨리지 않는 게 하나 있습니다. 한 달에 한 번 노숙자들의 생일잔치를 여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사랑을 받아 본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베풀 수 있다는 것을 믿기 때문에 신부님은 이 행사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주방이 저녁 준비로 분주해지기 전, 신부님은 또 어디론가 바쁘게 갈 채비를 합니다. 아침나절 찬거리를 가득 싣고 왔던 그의 봉고차에, 이번에는 빈 플라스틱 음식통을 싣고 출발합니다. 그가 가는 곳은 급식을 하는 학교들입니다. 급식 후 남은 음식들을 음식통에 받아 오는 것이지요.

신부님은 이렇게 많은 사람의 도움으로 안나의 집이 하루하루 운영되는 걸 기적이라고 말합니다. 그가 하는 일은 사람들의 마음을 거둬 노숙자들에게 전달하는 것뿐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매일 제공할 수 있는 음식이 모이고, 또 그걸 나눠줄 수 있는 봉사자들이 모여 이 모든 것을 이뤄 냅니다.

"저는 행복한 사람이에요.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어서 기쁘고, 이렇게 도와주는 사람이 많아서 기쁘고...., 그래서 행복해요."

저녁 시간이 다가오고 노숙자들의 낮은 웅성거림이 식당으로 흘러 들어오면 주방의 손길은 바빠집니다. 문 밖에는 벌써 노숙자들의 줄이 끝도 없이 늘어서 있습니다. 그는 그가 준비하는 저녁 식사가 노숙자들의 고픈 배만 채우는 것이 아니길 바랍니다. 밥 냄새가 식당을 가득 메우듯 살아갈 힘을 잃은 그들 가슴이 살아갈 용기로 가득 채워지길 바랍니다. 그래서 신부님은 한끼, 한끼 준비할 때마다 그런 마음까지 정성스럽게 담습니다.

신부님은 알고 있습니다. 열 명 중 아홉이 행복하고 단 한 명이 불행하다면 이것은 모두 불행한 것이라고. 처음부터 그가 가진 것은 없었습니다. 이미 가졌던 것도 사실은 그의 것이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배고픈 적도 없고, 잘 곳이 없어 떠돈 적도 없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미 너무 많은 것을 가지고 누렸기 때문에 이제부터라도 받은 모든 것을 돌려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앞으로도 가질 것은 단 하나, 움직일 수 있는 건강한 몸뿐. 그것만으로 그는 돌아갈 곳이 없는 사람들, 잠잘 곳이 없는 사람들이 스스로 일어설 때까지 평범한 이웃이 되어 그들 곁을 지켜 주리라 다짐합니다.

이탈리아에서 온 밥하는 신부, 보르도 빈첸시오. 그의 한국 이름은 '하나님의 종'이라는 뜻의 김하종입니다. 그래서 그는 그를 찾는 모든 이의 종입니다. 그를 원하는 이가 하나라도 있다면 언제까지고 그의 종이 되어 곁을 지킬 것입니다.


- 『MBC-TV 포토에세이 '사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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