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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질
 저자 : 박지원
 출판사 : -
 출판년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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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버지 박지원
저자 : 박종채 / 출판사 : 돌베개
교보문고  BCMall     

 
혼자 있기 무서워서 무서운 이야기를 즐긴 겁 많은 천재
"나는 어려서부터 담이 작고 겁이 많아서 혹시 낮에도 빈 방에 들어가거나 밤에 작은 등불을 보게 되면 머리털이 서고 맥박이 뛰었다. 올해 내 나이 마흔 네 살이건만 그 두려움 타는 성질은 어릴 때와 마찬가지다."
박지원이 청나라를 여행하고 쓴 《열하일기》에 겁 많은 자신의 성격을 실토한 부분이다. 실제로 어렸을 때 박지원은 겁이 많고 마음이 약한 아이였다. 다 성장해서도 마음이 약하고 예민해서 잔걱정이 많았다. 심지어 박지원은 새로 아이를 낳은 부인이 저녁에 피곤하게 자다가 만일 잠결에 젖이 아이의 입을 눌러 숨이 막히게 되면 어쩌나 염려해 갑자기 밤중에 일어나 걱정했다고 고백한다.
이렇게 심약하고 겁이 많은 성격이라 스무 살 즈음에는 우울증과 유사한 병에 걸렸는데, 밤낮으로 눈을 붙이지 못하고 삼사 일을 지내기도 했다. 박지원은 이 불면증을 견디기 위해 여러 친구들과 어울려 마을에서 유행하던 기이한 이야기를 즐겼다. 이것이 바로 이후에 박지원이 쓴 작품에 영감을 주게 되었다. 겁이 많았던 성격에 비해 박지원은 어려서 기억력이 좋고 다른 사람의 흉내를 잘 내서 종종 주변 사람들을 당황하게 했다. 다섯 살 때 전라도 관찰사가 된 할아버지를 따라갔는데 관아의 생김새와 칸 수를 한 번만 보고도 모두 기억해냈다. 또한 여덟 살 때는 큰누나 앞에 누워 매형의 어눌하고 정중한 말투를 흉내내 누이를 당황하게 했다. 이런 박지원의 남다른 자질은 모두 그의 문학수업에 긴요하게 쓰였다. 십대 후반에 벌써 〈이충무공전〉을 지어 사마천의 경지에 도달했다는 평을 받고, 열아홉 살에는 당시 문단에서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영민했다. 《박연암선생전》을 지은 김택영은 "연암은 우뚝한 얼굴에 뜻과 기상이 툭 트이고 작은 일에 얽매이지 않고 어려서부터 이미 평범한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고 적을 정도였다.
조선후기 아웃사이더가 가진 날카로운 풍자정신
박지원은 조선 영·정조 때의 실학자이자 소설가다. 자는 중미(仲美), 호는 연암이다.
대대로 문장을 잘하는 명문귀족 집안에서 아버지 박사유, 어머니 함평 이씨 사이의 2남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재주가 뛰어나 동네 아이들과 어울려 글공부를 하다가 16세에 이보천의 딸에게 장가를 들었고 이보천에게 《맹자》를, 처숙인 이양천에게 《사기》 등을 배웠다. 그 후 3, 4년 동안 문을 걸어잠그고 공부에 전념, 19세의 어린 나이에 당대 문단에 명성을 떨쳤다.
20세 전후에는 우울증으로 보이는 정신질환으로 오랫동안 고생하기도 했다. 박지원은 23세에 모친을, 31세에 부친을 여의는 등 불운을 맞았다. 집안이 본래부터 청빈했고, 가정의 법도가 엄격했을 뿐 아니라, 아버지가 벼슬을 전혀 하지 못했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궁핍한 가운데 부모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자랐다. 현숙한 형수가 연암을 주로 양육해 부모보다는 형과 형수에게 남다른 애정을 느꼈다. 이같은 성장환경으로 박지원은 재능은 있으나 세상에 쓰지 못하고 불우하게 살아가는 부류들과 사귀면서 지낸다. 그리고 이런 경험은 조선사회를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문제점을 비판하는 계기가 된다.
연암은 과거에 계속 낙방하여 장년이 되어도 벼슬을 하지 못했다. 연암이 과거에 입격하지 못한 것은 능력부족이라기보다는 과거시험 과목이 아닌 천문지리, 병학, 농경, 경세와 같은 다른 학문에 전념한 탓인 듯하다. 그는 35세 이후로는 과거에 응시하지 않고 홍대용 및 사가(四家: 유득공, 박제가, 이덕무, 이석우 등의 조선후기 시인들) 시인들과 스승이자 친구가 되어 제도의 모순, 농공의 이익과 폐단 및 초목, 조수 등을 이야기하면서 세상을 등지고 실학에 몰두했다. 이때 정조가 등극했는데, 정조는 즉위하자마자 세손 때부터 그를 지켜주던 홍국영으로 하여금 중요한 정사를 처리하게 했다. 홍국영은 이조판서인 홍낙영을 몰아내려고 음모를 꾸몄는데, 이때 홍낙영과 한 패로 몰린 박지원은 아예 황해도 연암협으로 들어가서 둔거했다. 그는 자신이 너무 굳세고 정직하여 칼자루를 너무 노출시켜서 이런 화를 당했다고 생각하고는 평범하게 행동하며 명예를 피하고 모든 것을 감출 뜻을 갖기도 했다.
연암협에서 둔거한 지 2년 후 홍국영이 정권에서 물러나자 연암은 한성으로 돌아왔다. 그때 박제가의 삼종형인 박명원이 청나라 고종의 70세 탄신일[수경(壽慶)]을 축하하는 사신으로 가게 되었는데, 그를 수행하여 열하(지금의 중국 승덕지방)를 기행했다. 그로서는 단순한 중국 유람이 아니어서 청나라의 선진문물제도와 새로운 사회상에 자극받고 크게 감동했다.
그는 귀국 후 《열하일기》 25편을 저술했다. 연암은 이 책을 통해 청나라 문화를 소개하고, 조선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각 방면에 걸쳐 비판하고 개혁을 논했다. 폐쇄적이던 조선의 유학자들에게 실학과 북학사상이라는 새로운 실사구시와 이용후생 사상을 일깨워 주었다. 그는 50세에 비로소 한성부 판관과 면천군수, 안성현감 등의 벼슬에 올랐다.
안성현감으로 재임할 때 남공철이 《열하일기》의 문체가 경서와 고문을 본받지 않아 기이하다는 글을 정조에게 올린다. 정조는 고문과 경서를 본받은 글을 올려 속죄의 뜻을 표시하라는 명을 내린다. 연암 소설의 두드러진 특징은 풍자와 사실주의적 표현이다. 봉건사회가 무너져가고, 그 속에서 새로운 사회의 움직임이 태동하는 격변기를 살면서 연암은 그 모든 추이를 풍자를 통해 직시하며 비판했다. 또 한편 그는 평민들의 삶의 세계로 의식을 확장하면서 당대 서민층의 삶과 모습을 생생하게 표현했다. 박지원은 고문을 반박하고, 참다운 문학의 길은 화석화한 옛말과 경험의 답습이 아니라, 그 진정한 의미를 음미하면서 자신의 시대와 경험에 충실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의 대표적인 저서에는 《열하일기》와 문집《연암집》이 있고,〈허생전〉,〈호질〉,〈예덕선생전〉,〈광문전〉,〈양반전〉 등의 작품이 있다.

▣ 내용을 간단히 말하자면                              
범은 천하에 대적할 자가 없는 동물인데 비위나 죽우, 추이 등의 짐승들에게 잡아먹히기도 한다. 범이 사람을 먹으면 사람들은 굴각, 이올, 육혼 등의 {w:창귀}가 되어서 범에게 붙어살면서 범에게 먹을 것을 구해주고 범을 위험에서 구해준다. 하루는 창귀들과 범이 무엇을 먹을까 의논하는데, 창귀들이 의사를 권하자 범은 의심스러운 자라고 먹지 않고, 무당을 권하자 속이는 자라고 먹지 않고, 선비를 권하자 그 고기가 잡되고 딱딱할 것이라고 먹지 않았다.
이때 정이라는 고을에 도덕군자로 소문난 북곽선생과 동리자란 절개 높은 과부가 살았다. 동리자는 사실은 성이 각기 다른 다섯 아들이 있다. 어느날 이들이 동리자의 방에서 나오는 말소리를 들으니 꼭 북곽선생 같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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