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1 경제포털
뉴스  ·  증권  ·  부동산  ·  금융  ·  자동차  ·  창업  ·  교육  ·  세무  ·  헬스  ·  BOOK  ·  블로그   
등록예정 2023년 2월 등록예정 도서요약
북다이제스트
        
아이디/패스워드 찾기
회원가입
도서요약전체

미래를 위한준비
도서상세정보
 저자 : 이광수
 출판사 : -
 출판년도 :


a4용지 10매내외 핵심요약전문
워드파일 보기및받기 한글파일 보기및 받기 pdf파일 보기및 받기
(현대판 신파극장)단종애사
저자 : 이광수 / 출판사 : 문공사
교보문고  BCMall     
어린이를 위한 흙
저자 : 이광수 / 출판사 : 문학세계사
교보문고  BCMall     
한국단편소설1
저자 : 이광수 등 / 출판사 : 홍신문화사
교보문고  BCMall     

 
' 당신은 바로 나의 생명', 운명의 여인 허영숙과 북경으로 사랑의 도피
이광수는 유년시절부터 고아와 가난이라는 멍에를 쓴 채 외롭게 살아갔지만 25세에 삶을 송두리채 변화시킨 운명의 여인 허영숙을 만나게 됐다. 이광수의 절친한 친구였던 주요한의 말에 의하면 그는 신문연재 소설《무정》을 집필하던 어느 날 계속되는 과로와 평소 앓고 있던 결핵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하는 수 없이 병원을 찾았지만 수중에 가진 돈이라고는 60전 밖에 없었고, 그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돌아서야만 했다. 그때 마침 공교롭게도 이 딱한 사실을 안 의과대학생인 허영숙은 이광수에게 다다가 치료비를 빌려주고 진찰을 받을 수 있게 도움을 주었다.
진찰 결과는 폐병 2기, 중병이었다. 하지만 그는 연재중인 원고 쓰는 일을 중단할 수 없었다. 다시 초라한 하숙방으로 돌아가 원고집필에 몰두했다. 당연히 무리를 하다보니 한 번은 심한 각혈로 인해 세숫대야 하나 가득 피를 토했다. 그는 본능적으로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하숙집 주인을 통해 허영숙을 불러달라고 했다. 놀라 뛰어온 허영숙은 이 광경에 너무나 놀랐고 손수 다다미방에 쏟아 놓은 피를 닦아내고 정성껏 그를 간호했다. 하지만 처녀의 몸으로 그를 계속 간호할 순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이상한 예감이 들어 이광수의 하숙집으로 찾아갔는데 온통 연기가 꽉 차 질식할 정도였다. 겨우 발견한 이광수를 보니 피를 토하고 쓰러져 있었다. 아래층에서 밥 짓는 장작 연기에 질식한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이광수는 극적으로 생명을 구하게 되고 비로소 허영숙에게 자기의 사랑을 고백했다. '당신은 바로 나의 생명이라고' 물론 이광수와 허영숙이 어떻게 만나게 됐는지는 확실치 않다.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게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의 연애사건은 당시 센세이션한 연애사건이었다. 이광수는 이미 아내와 자식이 있는 몸이었고 허영숙은 부잣집 딸로 의학전문학교에 다니는 처녀였기 때문이다. 허영숙의 집안에선 장래가 밝은 딸의 미래를 망칠 수 없었고 이광수는 비록 사랑은 없지만 홀로 두고 온 아내와 자식에 대한 책임감을 떨쳐 버리기 힘들었다. 그러나 사랑이란 어떠한 장벽도 뛰어넘는다고 했던가 이광수는 아내 백혜순과 결국 이혼을 했다. 그러나 허영숙 집안에서의 쉽게 결혼 승낙이 떨어질리 만무였다. 그들은 결국 1918년 10월 둘만의 사랑을 위해 북경으로 애정도피를 떠났다.


계몽주의자의 비극적인 생애
1892년 평북 정주에서 출생한 춘원 이광수는 5세 때 한글을 비롯하여 천자문을 깨우치고 외할머니에게 《소대성전》《장풍운전》을 읽어 줄 정도로 명석했다. 8세 때는 동리 글방에서 《사략》《대학》《중용》《맹자》《고문진보》등을 읽었고, 한시 백일장에서 장원하여 인근동리에 신동으로 소문날 정도로 천재적인 아이였다. 그러나 11세 때인 1902년 콜레라로 부모를 여의고 그는 고아로서 가난과 고통의 삶을 살아야 했다. 이듬해 동학에 입도하여 천도교 박찬명 대령 집에서 기숙하며 서기일을 맡아보았다. 1905년 일진회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도일하여 대성중학에 입학하였으나 학비곤란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이듬해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메이지학원 중학부 3학년에 편입했다.
이 무렵 안창호가 미국으로부터 귀국하던 중 도쿄에 들려 행한 애국연설을 듣고 그는 크게 감동을 받았으며, 메이지학원의 분위기에 따라 청교도적 생활을 흠모하여 기독교로 개종을 했다. 1910년 중학교를 졸업하고 귀국하여 정주 오산학교 교원이 되었으며, 이해 언문일치로 된 단편 <무정>을 발표했다. 7월에 백혜순과 중매로 혼인하지만, 날이 갈수록 애정 없는 혼인을 후회하며 실망의 나날을 보냈다.
오산학교 재직 시에는 학생들에게 생물진화론을 가르쳤다 하여 교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1915년 김성수의 후원으로 재차 도일하여 와세다대학 고등문예과에 편입한 뒤 이듬해 동 대학 철학과에 입학 광범위한 독서를 체험하게 됐다. 그해 계몽적 논설을 《매일신보》에 연재하여 문필을 날리고 이듬해인 1917년 최초의 근대적 장편소설인 《무정》을 연재했다. 두 번째 장편소설 《개척자》로 청년층들부터 호평을 받았지만 고질적인 폐결핵이 재발되어 고생하던 중 여의사 허영숙의 헌신적인 간호로 위기에서 소생하며, 허영숙에 대한 애정을 싹 틔웠다.
1918년 백혜순과 이혼하고 허영숙과 베이징으로 애정의 도피행각을 벌렸다. 이후 일본에서 '2·8독립선언서'를 기초하고 상해로 탈출, 대한민국임시정부 기관지인 《독립신문》의 주관으로 활동하다, 1921년 단신으로 상하이에서 귀국, 선천에서 일본경찰에게 체포되었다가 불기소처분으로 풀려난 뒤 변절자란 비난을 받았다. 1923년 동아일보사 객원이 되어 언론에 관계하기 시작했고 그해 《조선문단》주재로 옮겨 문단활동을 재개했다. 1926년《동아일보》편집국장에 취임했다가 1933년 사임했다. 이후《조선일보》 부사장으로 취임하여 브나로드 운동이 확산에 힘쓰는 한편, 농촌계몽운동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장편《흙》을 발표했다. 1934년 《조선일보》를 그만두고 이후 《법화경》에 몰두했으며, 1937년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피검되어 안창호와 함께 수감됐다. 1939년 조선문인협회 회장으로 선출되어 이른바 '복지항군위문'에 협력하는 친일행위를 하는 오점을 남겼으며, 1940년에는 카야마 미츠로(香山光郞)로 개명하고 학병권유차 도쿄에 다녀왔다. 광복이 되자, 친일파로 지목되어 곤욕을 당했다.
1949년 반민특위법으로 수감되었으나 곧 병으로 인해 석방되었고, 한국전쟁 중 병상에서 북한인민군에 납북되어 그해 10월 북한에서 병사했다. 그의 생애에 대해 1970년까지 생존했다는 설이 있었으나, 미국에 살고 있는 셋째아들 이영근이 1991년 북한에 가서 아버지의 묘소를 찾아 1950년 사망했음을 확인해, 그의 생애에 대한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

▣ 내용을 간단히 말하자면                             
보성전문학교 법과를 다니는 허숭은 여름방학 때 고향인 살여울에 들어가 야학을 열고 아낙네들을 가르친다. 그러던 중 유순이라는 처녀에게 마음이 끌린다. 방학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자, 서울 굴지의 갑부인 윤참판이 그의 무남독녀인 정선과 혼인을 하라고 권유한다. 변호사가 된 허숭은 마침내 정선과 결혼을 했으나 농촌계몽사업에 대한 의욕과 유순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가시지 않았다.
정선과 결혼한 허숭을 못 잊어 하던 유순은 어느 날, 농업기수에게 뺨을 맞게 되는데, 이를 본 한갑이 농업기수를 두들겨 팬 일이 발생하여 사건이 커지게 된다. 한편 허숭은 허영과 사치를 좋아하고 행실마저 바르지 않은 정선과의 불화로 정선을 떠나 농촌계몽에 헌신하기 위해 살여울로 돌아올 결심을 하는데……
단체회원가입안내
독서퀴즈이벤트
나도작가 신청안내
무료체험
1분독서영상
한국독서능력검정 신청
모바일 북다이제스트 이용안내

인재채용 | 광고안내 | 구독신청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용약관 | 서비스문의 이용문의:mkmaster@mk.co.kr
회원문의:usrmaster@mk.co.kr
매경닷컴은 회원의 허락없이 개인정보를 수집, 공개, 유출을 하지 않으며 회원정보의 보호를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