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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밀꽃 필 무렵
 저자 : 이효석
 출판사 : -
 출판년도 :


a4용지 10매내외 핵심요약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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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밀꽃 필 무렵
저자 : 이효석 / 출판사 : 청동거울
교보문고  BCMall     
메밀꽃 필 무렵
저자 : 이효석 / 출판사 : 도로시
교보문고  BCMall     
어린이를 위한 메밀꽃 필 무렵
저자 : 이효석 / 출판사 : 문학세계사
교보문고  BCMall     
이효석단편집
저자 : 이효석 / 출판사 : 글송이
교보문고  BCMall     
한국단편소설
저자 : 이효석 / 출판사 : 홍신문화사
교보문고  BCMall     

 
여자는 '넥타이'와 같은 것
스마트한 옷에 나비 모양의 장식을 단 구두를 신고, 최신식 중절모에 핼쑥한 얼굴로 우수가 깃든 눈빛으로 거리를 걷는 남자, 이효석. 그는 분명 '여자 같은 남자'였다. 그는 외모에서 풍기는 인상뿐 아니라 성미 또한 매우 까다로운 편이며, 매사에 소심하고 섬세했다.
대학을 나온 뒤 효석은 일자리를 구할 수가 없어, 총독부 경무국 검열계에 근무한 적이 있었다. 당시의 작가들은 거의 모두가 창작물을 무자비하게 검열하는 경무국 직원들과 적대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이효석은 당연히 변절자로 혹독한 지탄을 받게 됐다. 민족과 문학을 배반한다는 양심의 가책에 괴로워하면서 한 열흘 출근을 하였을 때였다. 퇴근길에 광화문을 내려오는데, 어떤 청년이 효석의 앞을 가로막으며 "너도 개가 다 됐구나." 하고 욕지거리를 막 퍼부었다. 그 말을 들은 효석은 그 자리에서 졸도하고 말았다. 효석은 당장 그 일을 그만두었다.
그 뒤 그는 실업자가 되어 몹시 궁핍한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때가 효석의 일생에서 가장 큰 시련기였는데, 그때의 생활은 말이 아니었다. 노동자들이 사먹는 밥집에서 싸구려 밥을 사먹으면서 효석은 10전 짜리 밥을 사먹는 것이 계면쩍어 밥도 제대로 못먹었다. '이런 밥을 먹는 것을 누가 보면 어쩌나', '이런 밥을 먹는 걸 아는 사람이 보면 어쩌나' 그저 걱정에 떨고 있었던 것이다.
1931년 효석은 경성 태생의 열여덟 살 처녀 이경원과 결혼했으나 신혼생활에 열중하지 않았다. 수송동에서 큰 방을 두 칸으로 나누어서 한쪽을 거실 겸 침실로 쓰며 시작한 신혼생활이었으나, 평소 여자에 대한 눈이 높아서인지 아내를 그리 탐탁하게 여기지는 않았던 것 같다.
효석이 그리는 여인은 '연애적 모험성이 있고, 눈자위에 윤택이 흐르고 응시하는 초점이 확실하지 못하여 나를 노리는지 혹은 내 등뒤 죽은 석고조상을 바라보는지 분간할 수 없는 그런 여인, 루날의 뿌랑슈급의 여인'이었다.
그리고 실은 데이트하는 멋쟁이 아가씨도 있었다. 언젠가 최정희 여사가 효석의 집을 방문했을 때, 경원씨는 친정에 가고 없었다. 그런데 어떤 한 여자가 부엌에서 도마질을 하다가 숨어 있던 것을 발견하고 여사가 효석을 비난했더니 그는 "그 여자는 내게 색채 좋은 넥타이 정도일 뿐"이라고 변명했다. 좋은 색채의 넥타이를 매고 거리를 걸으면 사람들이 선망의 눈으로 보는 것처럼 이 여자와 거리를 함께 걸으면 사람들의 시선이 자기에게 쏠린다는 것이다.
깔끔한 외모와 자상하고 섬세한 기질로 깊이 파고드는 타입이었기 때문에 여자들은 효석에게 많은 매력을 느꼈다. 진일부 우체국장의 딸인 일본여자 마이코는 평양에 있는 이효석에게 끈질기게 연애편지를 보냈고, 1941년 상처한 후, 평양에 있는 '방가로' 다방마담이면서 방송에 출연했던 여인 옥수복은 효석에게 정성을 바쳤다고 한다.
심미주의에 빠진 로맨티스트
이효석은 1907년 2월 23일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 남안동 681번지에서 진부면장을 지낸 이시후와 강원도 홍천군 기린면 진동리 출신인 강홍경 사이에서 1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호는 가산. 필명으로 아세아(亞細兒)란 이름을 쓴 적도 있다. 어려서는 서당에서 공부를 했는데, 신동이라는 소리도 들을 정도로 영민했다.
1920년 평창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경성제일고보에 무시험으로 입학하는데, 4~5학년 무렵부터 체호프에 열중했고, 토마스 만과 맨스필드 및 아일랜드의 심미적 작품, 그리고 사샤 기트리의 희곡집 등을 즐겨 읽었다.
경성제대를 졸업한 효석은 잠시 총독부 경무국에서 문학작품을 검열하는 일을 하지만 그만둔다. 1932년 함북 경성에 간 효석은 영어교사로 취직해 생활의 안정을 찾았다. 거기서 그는 문학세계의 주된 가닥을 이루게 될 생활 속의 심미주의에 매료돼 자연과 인간의 합일이라는 지고지순한 경지를 추구한다. 이효석은 프롤레타리아 문학에서 요구하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행하기에는 너무나 여린 정감과 예리한 감수성을 갖추었다. 그렇기 때문에 초기에는 좌익이념을 작품 속에 부각시키기 위해 고심했지만, 이내 이를 탈피하느라 많은 시간을 허비해야만 했다.
1936년 효석은 평양 숭실전문학교 문과 교수로 옮겨오게 되는데, 이때에는 이미 좌익이념을 완전히 탈피하고 그 대신 '자연과 성'이라고 하는 새로운 경지를 본격적으로 문학에 심는다. 이때 나온 것이 〈메밀꽃 필 무렵〉인데(발표 당시에는 제목이 〈모밀꽃 필 무렵〉이었다), 이 작품은 '좌익 이데올로기'나 '심미주의 경도'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면모를 보여준다. 즉, 이 작품은 이데올로기와 예술, 그 어느 쪽으로도 편향되지 않는 중도적 작품으로 평가된다.
이후 효석은 일제말기 전쟁의 위협이 더 절박해질수록 더욱 자기만의 세계로 침잠하면서 각박한 현실을 애써 외면한 채 서구세계를 지향하는 꿈을 키웠다. 이때 그는 현실도피의 길인 심미주의에 깊이 매료되었고, 거기에 심취한 나머지 그의 작품들을 비도덕성, 병적 감수성 및 변태성의 무분별한 퇴폐주의에 물들게 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나라를 잃은 이 땅에 태어나서 더러 시류에 순응했으나 대체로는 자기만의 고독한 세계에서 유폐된 채 살던 한 지식인 작가는 1942년 이 세상에서의 여로를 끝내고 서른 다섯의 많지 않은 나이에 생을 마쳤다. 그는 고향인 평창군 진부면 하진부리에 매장되었다. 지금은 관광지로 개발되어 효석을 그리워하는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 내용을 간단히 말하자면                              
허생원은 나이가 들수록 집도 가족도 없이 허구헌 날 늙은 나귀를 몰고 장에서 장으로 찾아다니는 떠돌이 신세를 면치 못한다. 20여 년이 지나도록 진부, 대화, 봉평장을 빠뜨리지 않고 찾아다니는 것은 젊은 날 봉평에서 잊을 수 없었던 기억 때문이다. 무덥고 달 밝던 그날 밤, 목욕을 하기 위해 옷을 벗으러 물방앗간에 들어갔다가 뜻밖에 마주친 성서방네 처녀와 살을 섞었던 단 한 번의 추억 때문이었다.
허생원은 동업자인 조선달과 같이 장사를 시작한 지 아직 그리 오래되지 않은 동이라는 청년과 함께 다음 장을 찾아 밤길을 걷고 있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었다. 막 피기 시작한 꽃은 소금을 뿌린 듯 아름다웠고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것만 같았다. 허생원은 그날도 이런 밤이었음을 생각하고 20년 전의 그 일을 동이에게 이야기하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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