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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
 저자 : 김동인
 출판사 : -
 출판년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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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대표작선집 13) 감자
저자 : 김동인 / 출판사 : 문학사상사
교보문고  BCMall     
감자ㆍ배따라기
저자 : 김동인 / 출판사 : 을유문화사
교보문고  BCMall     

 
유미주의의 생활화, 기생 김옥엽과의 만남
평양 대부호의 아들로 태어나 거리낄 것 없이 자유롭고 풍요롭게 자라난 동인은 물질적으로 풍요로웠다. 그는 외국에 가는 일을 산보쯤으로 여기던 인물이었다. 그는 자아에 대한 의식이 강했고 그런 만큼 남에게 뒤지기를 싫어해서 늘상 남과는 다른 '그 무엇'을 추구하곤 했다. 그의 순문학 추구의식도 당시 민족의 문제를 생각하던 문단의 일반적 경향에서 벗어난 새로운 그 무엇이었던 것이다. 그런 그는 급기야 유미주의를 지향하면서 여인들과 더불어 방탕한 생활을 한다. 동인에게 있어 방탕은 유미주의의 생활화였다. 거기에는 자신의 욕구 자체가 곧 선이라는 신념이 뒷받침되고 있었다. 그의 방탕한 생활은 스물 여섯의 나이에 이미 파산상태에 들어설 만큼 대담하고 무모했다. 매사에 철저했던 동인은 방탕에도 철저했던 것이다.

그 첫 출발은 기생 김옥엽과의 만남이다. 동인은 서울 명월관에서 김옥엽을 처음 만난다. 그리고 평양으로 내려와서 동인은 보석 알렉산델을 사서 편지와 함께 옥엽에게 보낸다. 이렇게 해서 둘의 밀회는 시작된다. 이내 둘의 밀회현장이 아내에게 발각되고 만다. 동인은 아내에게 옥엽과의 관계를 청산하겠다는 약조를 한다. 그러나 동인은 타오른 열정을 이기지 못하고 옥엽과 함께 서울로 도망한다. 그는 낮에는 친구들과 만나 놀고 밤에는 청진동 집으로 찾아들어 옥엽과 보낸다. 둘은 경주로 신혼여행 같은 여행을 다녀오기도 한다. 그러나 그러한 생활은 오래가지 못한다. 동인은 결국 고향의 맏형과 어머니의 부름을 받고 내려가 그들에게 무릎을 꿇는다. 그래도 얻은 소득은 있다. 옥엽과의 첩실살이를 허락받은 것이다. 동인은 기뻐하며 서울로 올라가 옥엽에게 첩 살림 준비금을 쥐어 주고 이틀 뒤 평양에서 만나기로 한다. 그러나 옥엽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 뒤 동인은 친구 유지영으로부터 "자네가 내려간 날 밤 열두 시쯤 해서 우연히 옥엽의 집에를 갔더니 그 집 대청에 웬 모를 사람이…" 라는 내용의 편지를 받는다. 동인의 노여움은 하늘을 넘었다. 그는 그 순간부터 마음속에 있는 '옥엽'이란 뿌리를 칼로 잘라 버렸다. 그 뒤로도 동인은 옥엽과 놀았으나 오직 기생으로만 치부했다. 이렇게 시작된 동인의 방탕은 기생 황옥경, 기생 세미마루, 기생 노산홍 또 누구누구 등으로 이어진다. 계몽주의 문학을 넘어 순수 문학의 길을 연 열정의 작가
근대문학 초기의 거목 이광수를 향해 비판의 화살을 날렸던 작가, 김동인. 그는 이광수문학이 가지는 계몽주의를 청산하고 순문학의 세계를 열고자 애썼던 우리 근대문학 초기의 또 하나의 거장이다. 그는 빙허 현진건과 더불어 단편소설의 확립자라는 평가를 받는다.

김동인은 1900년 평양에서 양반부호의 둘째부인의 장남으로 태어난다. 동인은 만 14세 되던 해에 일본으로 건너가서 동경 메이지 학원에 입학한다. 1917년 졸업 후 가와바다 미술학교에 입학했으나 1919년에 자퇴한다. 화가 지망생의 꿈을 접은 것이다. 대신에 그는 문학의 길을 걷는다.
어려서부터 외국문학을 섭렵한 동인은 1919년 2월 주요한, 전영택 등과 함께 우리 나라 최초의 순문예지 「창조」를 창간한다. 이후 그는 자신의 막대한 사재를 털어 넣으면서까지 이 잡지를 이끌어간다. 동인은 1919년 「창조」에 「약한 자의 슬픔」을 발표하고 뒤이어 「마음이 옅은 자여」를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작가활동을 시작한다. 그러나 이들 두 작품은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다. 그가 작가로서의 뚜렷한 역량을 드러내기 시작한 작품은 「배따라기」이다. 이 작품에서 그는 강렬한 낭만주의적 색채를 드러낸다. 후에 나타나는 탐미주의적 경향의 시발점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후 김동인은 「감자」「명문」 등과 같은 작품을 통해 자연주의적 경향을 드러낸다. 그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기술하는 사실주의적 경향을 보이면서도 과학적 원리에 근거하여 삶의 국면을 관찰하고 해부하는 자연주의적 관점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감자」에서 복녀가 타락한 원인을 그녀가 처한 사회적 환경이 타락한 때문이라고 보고 있는 것은 그의 그러한 자연주의적 경향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후기작에 속하는 「김연실전」에서 주인공 연실이 정신적 육체적으로 타락하는 원인을 도덕적으로 문란했던 그녀의 가족환경에서 찾는 것도 역시 동인의 자연주의적 경향을 드러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1930년을 전후해서 동인의 작품은 탐미주의적 경향을 뚜렷이 보여준다. 「광화사」와 「광염소나타」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광기를 지닌 예술가의 생활을 다루고 있는 이들 작품들은 예술지상주의적 가치를 담았다. 그는 이들 작품 속에서 위대한 예술을 창조하기 위해서는 예술가가 사회적인 규범을 파괴해도 좋다는, 오히려 그러한 행위를 통해 위대한 예술이 창조될 수 있다는 의식을 강하게 내비쳤다.

또한 동인은 역사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붉은 산』 『운영궁의 봄』등은 그의 민족주의적 의식을 짙게 드러낸 작품들이다. 사실 그는 역사 소설가로서 많은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 『젊은 그들』 『수양대군』『해지는 지평선』등 다수의 작품들이 있다.

비평무용론자로서도 유명한 그는 역설적으로 상당히 의미 있는 평문을 여러 차례 썼다. 그의 「한국근대 소설고」나 「춘원연구」등은 훌륭한 평론가로서의 그의 면모를 보여 준다. 그밖에도 그는 우리 근대문학에서 구어체 문장을 확립한 작가로도 유명하다. 물론 이광수의 선구적인 업적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어쨌거나 그는 우리 문학이 문어체 문장을 탈피하고 언문일치를 이루는데 기여한 작가임에는 틀림없다.

오만불손하고 자존심이 강한 성격으로 알려진 동인이지만 그의 최후는 비참했다. 1951년 반신불수상태였던 동인은 피난을 가지 못하고 서울 신당동 자택에서 홀로 죽음을 맞았다고 한다. 오직 패기와 열정으로 자신의 전 생애를 문학에 받쳤던 작가 김동인의 삶은 그렇게 마감되었던 것이다.

▣ 내용을 간단히 말하자면
사농공상 제2위에 드는 계층이던 복녀 부처가 칠성문 밖 빈민굴로 밀려나오게 된다. 복녀는 가난은 하나마 정직한 농가에서 규칙 있게 자라난 처녀다. 그런 그녀가 열 다섯 살 나는 해에 동네 홀아비에게 팔십 원에 팔려 시집을 갔다. 그는 극도로 게으른 사람이었다. 그들은 결국 빈민굴로 쫓겨나오게 되었다. 빈민굴에서 복녀는 처음에는 거라지일(동냥질)에 나선다. 그러나 사람들은 젊은 그녀에게 동정을 베풀지 않았다. 그리하여 복녀 부처는 여전히 가난한 생활을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복녀는 평양부에서 기자묘 솔밭에 들끓는 송충이를 잡는 인부로 뽑혀가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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