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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레방아
 저자 : 나도향
 출판사 : -
 출판년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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벙어리 삼룡이ㆍ물레방아 외
저자 : 나도향 / 출판사 : NULL
교보문고  BCMall     

 
의사의 길을 버리고 문학청년이 되다
도향의 집안은 할아버지 때부터 의업에 종사해왔다. 한의사였던 할아버지는 한의로서의 명성도 얻고 상당한 재산도 모았다. 도향의 아버지도 부친인 도향의 할아버지의 권유로 경성의전을 졸업하고 다시 동경제대 의학부 외과를 졸업했다, 그리고 그도 외과의사 노릇을 한다. 그러한 집안 분위기에 힘입어 도향 역시 배재고보를 졸업하고 경성의전에 입학한다.
그러나 사실 도향의 뜻은 의사의 길에 있지 않았다. 그가 경성의전을 간 것은 그의 뜻에 의한 것이 아니라 집안의 실질적인 가장이었던 할아버지의 뜻을 따른 것이었을 뿐이다. 도향은 배재고보 상급반에 다닐 때부터 교우지의 편집에 참가하는 등 문학청년가다운 기질을 보였다. 그의 배재고보 동창인 회월 박영희는 도향이 학교 뒤뜰 노송 밑에 앉아서 어느 때나 백점이라고 쓴 작문지를 내보이며 자랑했다고 한다. 그런 그는 경성의전에 들어가서도 의학공부는 게을리하고 밤새워 소설과 시집을 읽고 변변치 못한 습작을 신문에 투고하곤 하면서 문학에 대한 뜻을 키웠다. 내성적이고 감상적인 성격의 그로서는 의사의 길보다는 문학청년의 길이 더 잘 어울리기도 했다.
그가 문학의 길로 들어서게 된 데에는 그의 아버지의 영향도 컸다. 도향의 아버지 역시 자신의 부친의 뜻에 따라 의학을 공부하기는 했지만, 개업에는 뜻을 두지 않았던 인물이다. 그는 개업을 미루며 은둔자를 자처하면서 독서에 열중하거나 종이에 무언가를 끄적거리는 것만을 능사로 삼았다. 그러한 아버지의 몽상가적인 태도가 어린 도향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던 것이다.
도향이 문학에 뜻을 둔 정도는 할아버지 몰래 일본으로 건너갔던 사건에서 잘 드러난다. 경성의전에 적을 둔 채 일년을 허송한 도향은 이듬해 봄 조부의 장롱에서 노자를 훔쳐 일본으로 도망을 한다. 그 날이 마침 고종의 인산날인 동시에 거족적인 독립만세 운동이 일어났던 1919년 3월 1일이었다. 조부가 인산에 참례하러 간 사이 곧 3·1 운동의 함성이 종로 네거리에 울려 퍼질 무렵 도향은 일본으로 가는 배를 타기 위해 제물포 항구로 향했다. 그것은 문학에 대한 창작 열기를 꽃피우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물론 도향은 일본으로 건너간 지 몇 달이 채 못되어 다시 돌아오고 만다. 할아버지가 학비를 보내주지 않아 당장 먹고 자는 문제조차 해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학에 대한 열정만은 그대로 간직한 채 돌아와 1920년대 우리 근대문학 형성에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작가가 되었다.
낭만적 열정, 채 못 다 피우고 떠난 작가
나도향은 1902년 서울에서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난다. 그의 본명은 경손이다. 경사스럽게 태어난 손자라는 의미이다. 그러한 의미를 가진 자신의 이름을 좋아하지 않았던 그에게 월탄 박종화가 '은은한 벼향기'라는 의미의 아호 도향을 지어주었다. 필명은 빈이다.
공옥보통학교를 거처 1918년 배제고보를 졸업하고 경성의전에 진학하기까지 그의 성장기는 비교적 순탄했다. 경제적으로 무능한, 문학청년 기질을 지닌 아버지와 가부장적 권위를 지닌 할아버지 사이의 갈등이 도향에게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기는 했다.
아버지의 영향과 더불어 당대 춘원과 육당을 중심으로 한 신문예 운동의 열기가 도향의 문학적 감수성을 자극하면서 그는 문학의 길로 들어선다. 1919년 일본을 다녀온 후 안동의 보통학교에서 약 1년간 교편생활을 하다가 상경하여 박영희, 현진건, 홍사용, 이상화 등과 함게 《백조》동인으로 참가한다. 1922년《백조》창간호에 처녀작〈젊은이의 시절〉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문단생활을 시작한다.〈젊은이의 시절〉은 감상적이고 몽환적인 성향이 짙은 작품인데, 이러한 경향은 이후의 도향의 작품 경향을 이룬다. 이 시절 도향은 《백조》동인들과 함께 어울리며 화려한 문단생활을 하는데, 내성적이고 감상벽이 있는 도향이지만 주량과 노래 솜씨는 대적할 만한 상대가 없었을 정도였다.
그가 문단에서 널리 이름을 알리게 된 것은 장편 《환희》를 동아일보에 연재하면서부터이다. 당시 장안의 종이값을 올릴 만큼 대단한 반응을 불러 일으켰다는 이 작품은 남녀간의 삼각관계가 빚어내는 비극적 테마를 다룬 장편이다. 비관주의 또는 냉소주의를 강하게 표출하고 있는 이 작품은 현실 패배적인 경향을 강하게 드러내지만, 식민치하에서의 시대적 울분과 함께 인간의 갈등과 거기서의 해방을 염원하는 의식을 담은 작품이기도 하다.
도향은 이후 계속해서 〈옛날 꿈은 창백하더이다〉 〈추억〉 〈은화 백동화〉등 낭만적 경향의 작품들을 발표하다가, 점차 감정의 노출을 줄이고 현실을 직시하는 경향의 작품들을 쓰기 시작한다.〈여이발사〉 〈행랑자식〉 〈자기를 찾기 전〉등이 그것들이다. 이러한 도향의 작품경향들은 그의 후기작에 해당되는 〈벙어리 삼룡이〉 〈물레방아〉 〈뽕〉 등에 이르러 보다 원숙한 미를 발휘한다. 그 작품들은 사회적 현실에 주목하면서도 인간의 본능적 욕망을 놓치지 않은 작가적 역량을 집약적으로 드러낸, 그의 대표작들로 꼽힌다.
1925년 도향은 문학을 공부하기 위해서 다시 일본으로 건너간다. 당시 절친했던 동료작가들에 비해 도향의 문학수업은 그리 탄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 도향은 경제적으로 매우 힘들었던 상태였고 또한 몸도 많이 병약해진 상태여서 실질적인 문학수업을 받지는 못했다. 극도의 빈곤과 병마에 시달리다 이듬해 1926년 도향은 다시 귀국한다. 이때 도향의 몰골은 거지와 같았다고 한다. 1926년 8월 그는 결국 폐결핵으로 요절한다. 그의 나이 겨우 스물 넷. 신문학사상 가장 어린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그의 문단생활은 불과 5년. 그가 가졌던 문학적 열정과 역량을 충분히 발휘하지도 못한 채 그는 그렇게 떠났다.



▣ 내용을 간단히 말하자면                              
덜컹덜컹 홈통이 들었다가 다시 쏟아져 흐르는 물이 육중한 물레방가가 돌고 있는 마을. 이 마을엔 마을의 가장 부자요, 세력가인 신치규가 살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집 행랑에는 방원이가 아내와 더불어 막실살이를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가을밤 물레방앗간 옆에서 어떤 여자와 어떤 남자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신치규와 방원의 아내였다. 신치규가 후사를 낳아달라는 핑계로 방원의 아내를 달래고 있었던 것이다. 이지적인 동시에 창부형인 방원의 아내는 신치규에게 다짐을 받으며 그의 청을 받아들이고는 물레방앗간 안으로 들어간다.
며칠 후 신치규에게 불려가 행랑을 비워달라는 이야기를 듣고 답답해진 방원은 아내에게 주인 마님께 사정을 해보라고 하지만 방원의 아내는 도리어 화를 낸다. 결국 두 사람은 싸움을 한다. 그날 저녁 방원은 술이 얼근히 취한 채 아내의 품을 그리며 돌아온다. 그러나 아내는 집에 없었다. 아까 머리 단장을 하고 방아께로 가더라는 이웃 내외을 말을 듣고 방원은 물레방앗간을 향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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