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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저자 : 이광수
 출판사 : -
 출판년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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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나의 생명', 운명의 여인 허영숙과 함께한 사랑의 도피
이광수는 유년시절부터 고아와 가난이라는 멍에를 쓴 채 외롭게 살아갔지만 25세에 삶을 송두리째 변화시킨 운명의 여인 허영숙을 만난다. 이광수의 절친한 친구였던 주요한의 말에 의하면 그는 신문연재소설《무정》을 집필하던 어느날 계속되는 과로와 평소 앓고 있던 결핵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하는 수 없이 병원을 찾았지만 수중에 가진 돈이라고는 60전밖에 없었고, 그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돌아서야만 했다. 그때 마침 이 딱한 사실을 안 의과대학생 허영숙은 이광수에게 다가가 치료비를 빌려주고 진찰을 받을 수 있게 도와주었다.
진찰 결과는 폐병 2기, 중병이었다. 하지만 그는 연재중인 원고 쓰는 일을 중단할 수 없었다. 다시 초라한 하숙방으로 돌아가 원고집필에 몰두했다. 당연히 무리를 할 수밖에 없었다. 한 번은 심한 각혈로 인해 세숫대야 하나 가득 피를 토했다. 그는 본능적으로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하숙집 주인을 통해 허영숙을 불러달라고 했다. 소식을 듣고 뛰어온 허영숙은 이 광경에 너무나 놀랐고 다다미방에 쏟아진 피를 닦아내고 정성껏 그를 간호했다. 하지만 처녀의 몸으로 그를 계속 간호할 순 없었다. 어느날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허영숙이 이상한 예감이 들어 이광수의 하숙집으로 찾아갔는데 온통 연기가 꽉 차 질식할 정도였다. 겨우 발견한 이광수를 보니 피를 토하고 쓰러져 있었다. 아래층에서 밥 짓는 장작연기에 질식한 것이었다. 이광수는 극적으로 자신의 생명을 구해준 허영숙에게 자기의 사랑을 고백했다. '당신은 바로 나의 생명'이라고.
물론 이광수와 허영숙이 어떻게 만났는지는 확실치 않다.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게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의 연애사건은 당시 장안의 화젯거리였다. 이광수는 이미 아내와 자식이 있는 몸이었고 허영숙은 부잣집 딸로 의학전문학교에 다니는 처녀였다. 허영숙의 집안에선 앞날이 창창한 딸의 미래를 망칠 수 없었고 이광수는 비록 사랑은 없지만 홀로 두고 온 아내와 자식에 대한 책임감을 떨쳐버리기 힘들었다. 그러나 사랑이란 어떠한 장벽도 뛰어넘는다고 했던가, 이광수는 아내 백혜순과 결국 이혼을 했다. 그렇다고 허영숙 집안에서 쉽게 결혼 승낙을 할 리 없었다. 그들은 결국 1918년 10월 둘만의 사랑을 위해 북경으로 사랑여행을 떠났다.
계몽주의자의 비극적인 생애
1892년 평북 정주에서 출생한 춘원 이광수는 5세 때 한글을 비롯하여 천자문을 깨우치고 외할머니에게 《소대성전》《장풍운전》을 읽어 줄 정도로 명석했다. 8세 때는 동리 글방에서 《사략》《대학》《중용》《맹자》《고문진보》등을 읽었고, 한시백일장에서 장원하여 인근동리에 신동으로 소문날 정도로 천재적인 아이였다. 그러나 11세 때인 1902년 콜레라로 부모를 여의고 그는 고아로서 가난과 고통의 삶을 살아야 했다. 이듬해 동학에 입도하여 천도교 박찬명 대령 집에서 기숙하며 서기일을 맡아보았다. 1905년 일진회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일본에 가 대성중학에 입학했으나 학비를 제대로 마련하지 못해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이듬해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메이지 학원 중학부 3학년에 편입했다.
이 무렵 안창호가 미국으로부터 귀국하던 중 도쿄에 들러 행한 연설을 듣고 그는 크게 감동을 받았으며, 메이지 학원의 분위기에 따라 청교도적 생활을 흠모하여 기독교로 개종했다. 1910년 중학교를 졸업하고 귀국하여 정주 오산학교 교원이 되었으며, 이해 언문일치로 된 단편 <무정>을 발표했다. 7월에 백혜순과 중매로 혼인하지만, 날이 갈수록 애정 없는 혼인을 후회하며 실망의 나날을 보냈다.
오산학교 재직 시에는 학생들에게 생물진화론을 가르쳤다 하여 교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1915년 김성수의 후원으로 재차 도일하여 와세다 대학 고등문예과에 편입한 뒤 이듬해 동 대학 철학과에 입학, 광범위한 독서를 체험하게 됐다. 그해 계몽적 논설을 《매일신보》에 연재해 문필을 날리고 이듬해인 1917년 최초의 근대적 장편소설인 《무정》을 연재했다. 두번째 장편소설 《개척자》로 청년들로부터 호평을 받지만 고질적인 폐결핵이 재발해 고생하던 중 허영숙의 헌신적인 간호로 건강을 회복하면서, 허영숙에 대한 애정을 싹 틔웠다.
1918년 백혜순과 이혼하고 허영숙과 베이징으로 애정의 도피행각을 벌렸다. 이후 일본에서 '2·8독립선언서'를 기초하고 상해로 탈출, 대한민국임시정부 기관지인 《독립신문》의 주간으로 활동했다. 1921년 단신으로 상하이에서 귀국, 선천에서 일본경찰에게 체포되었다가 불기소처분으로 풀려난 뒤 변절자란 비난을 받았다. 1923년 동아일보사 객원이 되어 언론과 관계를 맺었다. 다음해에는 《조선문단》을 이끌며 문단활동을 재개했다. 1926년《동아일보》편집국장에 취임했다가 1933년 사임했다. 이후《조선일보》 부사장으로 취임하여 브나로드 운동을 확산하는데 힘쓰는 한편, 농촌계몽운동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장편《흙》을 발표했다. 1934년 《조선일보》를 그만두고 이후 《법화경》에 몰두했으며, 1937년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피검되어 안창호와 함께 수감됐다. 1939년 조선문인협회 회장으로 선출되어 이른바 '복지항군위문'에 협력하는 친일행위를 하는 오점을 남겼으며, 1940년에는 카야마 미츠로(香山光郞)로 개명하고 학병권유차 도쿄에 다녀왔다. 광복이 되어서는, 친일파로 지목되어 곤욕을 당했다.
1949년 반민특위법으로 수감되었으나 곧 병으로 인해 석방되었고, 한국전쟁 중 병상에서 북한인민군에 납북되어 그해 10월 북한에서 병사했다. 그의 생애에 대해 1970년까지 생존했다는 설이 있었으나, 미국에 살고 있는 셋째아들 이영근이 1991년 북한에 가서 아버지의 묘소를 찾아 1950년 사망했음을 확인해, 그의 생애에 대한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

▣ 내용을 간단히 말하자면                              
전문학교를 졸업하고 교원생활을 하던 석순옥은 안빈박사의 저서에 감명을 받아 그 병원의 간호부로 자원해 들어간다. 안빈은 예수와 석가여래의 사상을 몸소 실천하는 이상주의자로, 그의 아내 옥남도 이런 안빈을 하늘처럼 믿는다. 이들 가정에 느닷없이 틈입한 순옥은 안빈을 사모하지만, 안빈은 자신을 사모하는 순옥의 손목 한번 잡아주지 않고, 순옥도 안빈 곁에 있는 것만으로 무한히 행복했다.
아내인 옥남이 폐병으로 죽고 난 뒤, 순옥은 주위 사람들의 눈치를 의식해 안빈에서 피해를 주지않게 하기 위해 자신을 짝사랑하는 허영과 결혼을 한다. 허영은 순옥의 착한 마음에도 불구하고 재산을 탕진하였을 뿐만 아니라, 안빈과 순옥과의 관계를 의심하고, 그것도 모자라 '귀득'이라는 여자와 관계를 맺어 섭이라는 아이까지 갖는다.
순옥은 처음에는 남편의 모든 잘못을 용서하지만, 허영이 자신 몰래 귀득과의 관계를 계속하자, 마침내 이혼을 한다. 이혼을 하고 나서도 순옥은 허영을 위해 매월 백원씩을 보내고, 허영과 귀득을 결혼까지 시킨다. 그런데 귀득이 죽고 허영마저 병에 걸리자 또다시 허영의 간호를 되맡는다.
의사가 된 순옥은 병든 남편과 시어머니를 간호하기 위해 북간도로 이사를 하지만 시어머니와 남편의 폐악은 날로 거세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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