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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생기
 저자 : 이상
 출판사 : -
 출판년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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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상문학전집2)
저자 : 김윤식 편 / 출판사 : 문학사상사
교보문고  BCMall     

 
이상에 걸맞은 이상의 여인 금홍과 변동림
이상의 작품에는 이상이 20대를 함께 보낸 여인들이 빈번히 등장한다. 이들 중 특히 두 명의 여인이 우리의 흥미를 자극하는데, 그 첫번째가 〈날개〉 〈동해〉 〈봉별기〉에 등장하는 '금홍'이다.
이상은 지병인 폐병으로 건강이 악화되어가면서도 건강을 돌보지 않고 약값으로 술을 먹는 생활을 계속하다가, 1933년 출장나갔던 공사장에서 피를 토한 이후 총독부 기사라는 직장생활을 청산하게 된다. 한약을 다려 먹으며 집안에서 요양을 하던 이상은 구본웅과 함께 요양을 하기 위해 백천 온천으로 떠나는데, 그곳에서 술집 능라정의 작부 금홍을 만나게 되고, 같이 간 구본웅이 정색을 하고 말릴 만큼 이상은 복약과섭생을 다 집어치우고 진지하게 금홍과의 관계에 깊이 빠져든다. 금홍은 어린 나이 때부터 술집 작부가되어 이리저리 팔려 다녔으며, 열일곱에 낳은 딸아이는 죽어버리고, 산전수전을 다 겪으며 돌아다니다가 이상을 만난 것이 나이 20살을 갓 지난 때였다.금홍은 신학문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백치였지만, 모두가한번 껴안아보고 싶을 만큼 좋았으며, 당차고 매운 구석이 있는 여자였다. 이상은 금홍과 함께 상경하여 다방 〈제비〉를 개업하고 동거를 시작한다. 이상은 금홍을 친구들에게 권하기도 하고 금홍에 대한 좋지않은 소문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금홍과의 파격적이고 일탈적인 관계와는 달리 변동림은 이상이 정식으로 결혼을 한 여인이었다. 늘 시니컬하고 위트어린 언변으로 좌중을 휘어잡던 평소의 모습과는 달리 이상은 변동림 앞에서는 수줍어하며 말도 잘 못 하였다. 뛰어난 미모의 변동림은 이화여전을 졸업하고 작품발표 기회도 가진 적이 있는 신진 여류문인으로, 구본웅의 서모의 동생이며 〈낙랑〉 다방에서 디스크 플레이어를 맡던 인텔리겐차 변동욱의 동생이었으며 자유연애사상을 가진 여인이었다. 둘은 1936년 6월 초여름, 신흥사에서 신랑 신부 둘만 있는 결혼식을 올리고 황금정의 셋방에서 아무도 모르게 살림을 차렸다. 그러나 이상의 행동을 수상히 여긴 박태원이 어느날 미행을 하여 둘의 신접살림은 친구들에게 알려지게 된다. 둘의 결혼 생활은 3개월 후 이상이 도쿄로 떠나면서 자연스럽게 막을 내리는데, 이상과 결혼 한 후에도 변동림은 카페의 여급으로 나가며 다른 남자와 연애를 하는 등 둘의 결혼생활은 원만하지 못했다. 〈종생기〉 〈단발〉 〈실화〉 등에 변동림과의 생활이 묘사되어 있다.
화가가 되고 싶었던 소설가
이상(李箱)의 본명은 김해경(金海卿)이다. 1910년 9월 23일 새벽 6시경, 사직동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김연창은 소심하긴 하지만 법 없이도 살 만큼 조용한 성품이었고, 어머니 박세창은 친정조차 없는 고아출신으로 결혼하던 해에 시아주버니에게 이름을 지어받아 호적에 올렸다. 이상은 첫아들이었는데,큰아버지가 해경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이상의 집안은 증조부가 고종 당시의 정3품에 해당하는 도정(都正) 벼슬까지 지낸 양반가문이었으나,이상의 할아버지에 이르러 몰락해 가난해졌다. 이상의 큰아버지인 김연필은 실리적인 개명사상을 받아들여 총독부 상공과의 기술관리에 올라 집안을 다시 일으켰다. 연필은 아이가 하나 딸린 김영숙과 혼인했는데,자신의 소생을 낳지 못했다. 이상의 부모가 계속되는 사업실패로 가난하게 되자 손이 귀한 가계의 장남인이상은 3살 때 통인동 본가의 큰 아버지 댁에 양자로 들어간다. 이곳에서 이상은 큰아버지가 죽던 해,그의 나이 스물세 살이 될 때까지 할머니와 큰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살았다.
이상의 교육은 신문화에 대한 이해가 빨랐던 큰아버지가 맡았다. 8살 때에 신명학교(新明學校)에 입학했는데, 그림에 남다른 재주가 있어 졸업반인 4학년 때는'칼표'담배 껍질을 실물과 흡사하게 그려 주위를 놀라게 했다. 열두 살 때에 신명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불교재단의 동광학교(東光學校)에 입학, 중학생이 됐다. 이즈음에 큰아버지의 사업이 잘 안 풀려 가세가 기울어 현미빵을 팔며 고학해야 했는데, 그러면서도 줄곧 우등생이었으며, 그림에 몰두하여 상당한 실력을 보였다. 이상은 화가가 되고 싶었으나, 기술관리가 되기를 바라는 큰아버지의 강권으로 열일곱 살에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에 입학했다.당시 건축과 합격자는 12명으로 한국인은 3명이었으나, 2학년 진급시 다른 한국인은 모두 낙제해서 이상은 유일한 한국인 학생이 되었다. 이상은 건축 실기실습이나 수학 등을 좋아했으며, 일본어 구사력이 뛰어나 줄곧 1등을차지했다. 이 당시 이상은 밤새 번역소설들을 읽었으며, 열여덟 살에 경성공고 문예지 〈난파선〉 편집을 주도, 삽화도 그리고 시도 발표했다. 열아홉 살 때 실습공사장의 인부가 이상을 李씨로 잘못 알고 '이 상(李 さん)'이라 부른 것을 계기로 스스로 '李箱'이라고 칭하게 되었으며, 졸업앨범에도 '이상'이라는 필명을 썼다.
이상의 마지막 말 "레몬 향기가 맡고 싶소"
20살에 경성고등공업학교를 졸업하면서 큰아버지의 알선으로 조선총독부 내무국 건축과 기수로 취직하게 되는데, 일본인 과장이 자신이 부서를 옮길 때 이상을 데려갈 정도로 신임을 받았다. 이 당시《조선과 건축》 표지도안 현상모집에 응모하여 1등과 3등으로 당선되었으며, 이 인연으로 이 잡지 7월호에 일어로 된 시〈이상한 가역반응〉 외 6편을 처녀작으로 발표했다. 이후 8월호에 〈조감도〉, 10월호에 〈3차각설계도〉 등을 계속 발표했다.
스물네 살에 건강이 악화되어 총독부 기사직을 사직하고 화가 구본웅과 백천 온천으로 요양차 떠났다가정지용을 만났으며, 그의 주선으로 《가톨릭 청년》 7월호에〈一九三三. 六. 一〉,〈꽃나무〉,<이런 詩〉,<거울〉 등 국문으로 된 시 네 편을 발표했다. 이때가 이상의 본격적인 문단 진출이 예기되기 시작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그 이전까지 이상의 시는 하나의 가능형에 지나지 않았으나, 이들 작품에서 다다의 차원을 극복하면서 구인회의 회원들에게 인정받는 기틀을 마련한다. 이 당시 발표된 이상의 시에 대해 한 편에서는 '말더듬이'내지 '한 때 동경 문단에서 여름에 맥고모자처럼 흔한 심리주의 소설의 아류'라는 비판이 가해지기도 했다.
이상은 이 무렵 구인회에 가입하여 그들의 비호를 받으며 〈오감도〉 〈지주회시〉 〈날개〉를 발표했다. 《조선중앙일보》에 7월 24일부터 8월 8월까지 연재된〈오감도〉는 당시 중앙일보 학예부에 있던 이태준에게 지용이 강력히 부탁하여 발표하게 된 시로, 이태준은 사표를 가지고 다녀야 할 만큼 위험부담을 감수하면서 이상의 시를 연재하도록 주선했다. 결국 "무슨 미친 수작이냐" "정신병자의 잡문이다" "장안의 시선을 모아보려는 야비한 수작"등의 끊임없는 독자의 항의 때문에 중단되고 말았다. 그러나 이 사건으로 이상은 문단의 열화같은 찬반양론의 관심의 주인공이 되었다. 〈오감도〉의 중단에 격분한 이상은 미발표된 〈오감도 작자의 말〉에서 〈오감도〉는 2천점에서 30점을 힘들게 고른 작품들이며 쥐꼬랑지도 못달고 그만두어 서운하다고 하면서 남보다 수십년씩 떨어져도 마음놓고 지내는 국내 문단현실을 개탄했다.
이상은 계속해서 《중앙》에 〈소영위제(素榮爲題)〉를 발표했고, 〈혈서삼태(血書三態)〉,〈지팡이역사(轢死)〉〈산책의 가을〉등의 수필을, 《신여성》,《月刊每申》,《신동아》 등에 게재했는데, 이들 작품 모두 기존의 문학과는 다른 낯선 형식의 것들이어서 이상의 문학은 이단과 자의의 대명사처럼 지목되어 요란한 물의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1936년도에 접어들면서 이상은 〈지주회시〉,〈날개〉,〈봉별기〉 등 그의 이름을 떨친 작품을 잇달아발표했는데 대개가 그 소재를 비정상적인 부부관계에서 취하는 것들이었다. 이 무렵〈동해〉(《조광》, 1939.2),〈종생기〉(《조광》 1937.3),〈환시기〉(《청색지》 1936.6) 등의 소설과 〈지비(紙碑)〉 등의 몇 편의 시를 《중앙》,《조선일보》,《청색지》등에 발표하고, 〈산촌여정〉 (《매일신보》1935.9~10),<권태〉(《조선일보》1937.5.4~11) 등의 수필을 썼는데, 이들 작품에 대한 평가는 아주 좋았다. 이해 10월 이상은 "고맹에 든 이 문학병을 --이 익애의 이 도취의……이 굴레를 제발 좀 벗고 표현할 수 있는 제법 근량나가는 인간이 되고싶어" 도쿄로 떠나게 되는데, 그곳에서 그는 오히려 실망과 환멸만을 느낀다. 그 당시 결핵이 아주 악화된 상태에 있던 이상은 단골 노파의 오뎅집에서 식사를 하던 중 경찰에 체포되어 한 달 여를 감옥에서 지내다 병보석으로 석방되었으나 이미 폐가 녹아버린 상태로 회생가망이 없었다. 4월 17일 새벽 4시, 황급히 도쿄로 건너온 부인 변동림과 김소운 등이 지켜보는 가운데, "레몬 향기가 맡고 싶소"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동경제대 병원에서 숨을 거두고 만다. 이때 이상의 나이 28살이었다.

▣ 내용을 간단히 말하자면                              
천하의 눈 있는 선비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할 종생기를 쓰고 싶어 끙끙 앓고 있는 내게 어느날 아침 소녀정희로부터 속달편지가 온다. 그 편지에는 정절을 바치겠으며, 이미 R이나 S와의 관계는 정리를 했고,나의 전유물이 되고 싶다며 만나달라는 정희의 간곡한 요청이 담겨 있다. 나는 정희가 속이고 있는 줄을알면서도 속아주기로 하고 얼굴과 복장을 말끔히 꾸미고 약속장소로 나간다. 정희와 만나 말 한 마디행동 하나에도 조심하며, 정희와의 교합을 시도하지만 결국 정희에 대한 접근이 실패하자, 나는 주란(酒亂)과 토사(吐瀉)를 무기로 공격하고, 그것도 여의치 않자 급기야는 자살을 시도한다. 이를 만류하던정희와 옥신각신하던 중 그녀의 스커트에서 S로부터 온 속달 편지가 떨어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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