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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촌
 저자 : 강경애
 출판사 : -
 출판년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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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애 전집
저자 : 강경애 / 출판사 : 소명출판
교보문고  BCMall     

 
무애 양주동과 강경애의 만남
강경애는 식민지시대를 대표하는 여성작가임에도 불구하고 한국문학사에서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다. 이는 강경애가 여성작가라는 점과 민중의 현실을 소설화했음에도 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가 동맹(KAPF) 작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198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야 강경애의 삶과 문학은 제대로 평가되기 시작했다.
강경애의 문학적 특징을 요약한다면 "당시의 여성문제를 식민치하의 전체적인 사회구조의 모순과 계급문제와 연관시켜 파악함으로써 극단의 궁핍과 고통이 어떻게 현실변혁의 힘으로 전환될 수 있는지 모색했다"는 점이다. 일제강점기하에서의 궁핍은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민족구성원 전체의 문제였다. 강경애는 일제강점기 대부분의 지식인 소설가 작품에서 보이는, 경험이 부재한 조선의 궁핍상이 아닌 실제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 작품을 선보였다.
강경애의 문학적 성장에는 무애 양주동과의 만남과 간도체험이 배경으로 깔려 있다.
5살 때 아버지를 잃은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빈곤한 삶을 몸에 달고 다녔다. 의붓 형부의 도움으로 숭의여학교에 다니던 그녀는 1922년 평양의 숭의여학교에서 동맹휴업을 주도해 퇴학당했다. 어느날 강경애는 마을에서 있었던 양주동의 문학강연을 듣고 그 박식함에 반해 그를 찾아간다. 양주동은 당시 일본 와세다 대학 영문과 유학생이었으며 후에 시인이자 국문학자이며 영문학자로 명성을 날린다. 16살에 숭의여학교에서 퇴학당했던 그녀의 당돌한 행동은 양주동의 마음을 끌었고 강경애는 그의 애인이자 동반자가 된다. "선생님 나 영어좀 가르쳐 줘요! 그리고 시도, 문학도, 전 중학교 3년생, 아무 것도 아직 몰라요. 그러나 문학적 소질은 담뿍 가졌으니 좀 길러 주세요"
나의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그녀는 이어 자기 가정과 소질과 포부를 도도히 요설로 재깔여 나가는데, 그 똑똑하고, 야무지고, 앙큼한 품이 몹시 귀엽다. 그 참새같이 작은 몸, 빛나는 눈, 훤칠한 이마, 낭랑한 목소리-나는 일견 그녀가 '재원' 이상의 문학적 천분의 소질이 충분히 있음을 간파했다."

양주동이 그녀를 회고한 글에서 밝힌 글처럼 강경애는 숭의여학교 시절부터 당차고 야무진 면모를 보였던 것 같다. 양주동과 함께 서울 생활을 할 무렵 《근대문학 10강》 《근대사상 16강》을 공부했고 또 《자본론》과 《맹자》등 다양한 책을 읽었다. 양주동과의 동거는 1년만에 끝이 나는데 그 이유는 서로의 기질 탓이라고 한다. 양주동은 "어떤 뜻 아니한 불행한 일에 의하여 서로 갈라"졌다만 밝히고 있을 뿐이다. 다만 절충주의적 부르주아 지식인에 머물러 있던 그의 태도에 대한 반발과 강경애의 강경한 사고방식이 충돌했으리라는 추측이 있다.
양주동과의 만남은 강경애의 삶에서 중요한 전환기를 이룬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모두 여읜 강경애는 양주동을 통해 문학의 길로 접어들게 되고 후에 〈양주동 군의 신춘 평론 - 반박을 위한 반박〉 등을 쓰면서 자기 문학의 길을 확고하게 정립해 나간다.
식민지시대 여성문제를 인간문제로
1906년 황해도 송화에서 가난한 소작농의 딸로 태어난 강경애는, 1909년(3세)에 부친이 사망하고 다음 해개가한 어머니를 따라 황해도 장연으로 이주한다. 강경애는 의붓아버지 아래 성장하면서 이복형제들과 싸움을 자주하는 사이 어머니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게 되었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도토리 소설장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문학적 재능을 드러냈다.
1921년(15세)에 형부의 도움을 받아 평양 숭의여학교에 입학하지만 생활이 몹시 궁핍했고, 당시 평양의 진보적 학생들로 조직된 친목회 독서조 등에 망라되어 교양을 쌓았다. 1923년 학교 내 동맹휴학사건에 가담, 퇴학을 당하는데, 그후 당시 연애 중이던 동향인 양주동을 따라 상경, 동거하며 동덕여학교 3학년에 편입한다. 다음해 양주동과 헤어져 귀향한다.
고향에서 야학활동을 하다 1925년(19세) 11월 《조선문단》에 〈가을〉이란 시를 발표한다. 1920년대 후반 간도 용정으로 건너가 강사노릇도 하고 무직으로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다가 다시 장연으로 돌아온다. 이때의 생활체험을 바탕으로 한 것이 단편소설 〈그 여자〉이며, 이때 간도생활에서 얻은 병으로 강경애는 늘 고통받았다고 한다. 1929년(23세) 10월 《조선일보》에 독자투고 형식으로 〈염상섭씨의 논설 '명일의 길'을 읽고〉를 발표하는데, '근우회 장연지회' 회원임을 명기한 점, 그리고 조야한 형태로나마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을 드러낸 것으로 보아, 당시 강경애는 사회주의 사상에 적지 않은 영향을 받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1931년(25세) 1월 《조선일보》 부인문예란에 〈파금〉이란 단편소설을 독자투고로 발표했다. 이 작품은 한 지식인이 이념적인 번민 속에서 집안의 파산을 계기로 만주로 이주해 사상운동을 펼친다는 줄거리를 지니고 있다. 이때를 전후해 수원농림학교 출신으로 장연군청에 고원으로 부임한 장하일과 결혼하지만, 장하일 전처의 출현과 생활의 곤궁으로 장연을 떠나 인천에서 품팔이를 하면서 지내다 6월 경 간도로 이주한다. 이 시기 인천에서의 노동경험은 훗날 《인간문제》를 쓸 때 귀중한 자산이 되었을 것으로 짐작한다. 1931년 8월부터 1932년 12월까지 《혜성》지에 《어머니와 딸》을 연재하는데, 이것이 강경애의 실질적인 등단작이라 할 수 있다.
1932년 6월경 일본군의 간도 토벌과 중이염 때문에 용정을 떠나 서울에서 치료를 하다가 9월경 다시 간도로 간다. 8월과 10월 《동광》지에 발표된 소설 〈간도를 등지면서〉 〈간도야 잘 있거라〉에는 이때 간도를 떠나는 감회가 피력되어 있다. 그 해 9월 《삼천리》에 〈그 여자〉를 발표한다. 1933년 3월, 《제일선》에 고향 근처 몽금포의 어촌을 배경으로 한 〈부자〉와 간도를 배경으로 한 〈채전〉(《신가정》 9월)과 〈축구전〉(《신가정》 12월)을 발표하고, 1934년(28세)에는 일본군의 잔혹한 토벌을 묘사한 〈유무〉(《신가정》 2월), 간도에 이주한 조선인의 참혹한 삶과 그에 저항하는 무장투쟁 부대를 묘사한 중편 〈소금〉(《신가정》 5∼10월)과 〈동정〉(《청년조선》 10월)을 발표한다. 같은 해 8월부터 12월까지는 《동아일보》에 그의 대표작이자 식민지시대 최고의 리얼리즘 소설의 하나로 꼽히는 장편소설 《인간문제》를 120회 연재한다. 이 작품은 이후 1949년(평양), 1992년(서울)에서 단행본으로 출판되었으며, 소련에서도 1955년 러시아말로 번역되었다.
1935년에는 〈모자〉(《개벽》 1월), 〈원고료 이백원〉(《신가정》 2월), 〈해고〉(《신동아》 3월), 〈번뇌〉(《신가정》 6∼7월)을 발표하며 이듬해 《조선일보》에 자연주의적 묘사의 극치를 보여주는 〈지하촌〉을 발표한다. 한편 이때 간도 용정에서 안수길, 박영준 등과 함께 '북향'의 동인으로 가담했으나 건강 사정 때문에 적극적 활동은 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진다.
1937년(31세) 《여성》 1∼2월호에 간도공산당사건으로 사형을 당한 항일혁명운동가 가족의 고난과 과거 운동가의 전향을 그린 〈어둠〉을 발표한다. 이후 《동지》 11월호에 아편중독자인 남편에 의해 중국인의 첩으로 팔려 저항하다가 끝내 죽는 여성의 수난을 그린 〈마약〉을 발표한다. 이 작품들 또한 강경애 특유의 극단적인 비극성을 보여주는 자연주의적 묘사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1938년(33세) 〈검둥이〉(《삼천리》 5월, 미완)가 발표되는데, 이것이 강경애가 남긴 마지막 작품이다.
강경애는 1939년(33세)에 조선일보 간도 지국장을 역임하기도 하나 다음 해부터는 신병이 악화되어 남편 장하일과 함께 고향인 장연으로 돌아온다. 1944년(38세) 4월 26일 병이 악화되어 귀가 먹고 앞조차 보지 못하는 상태로 투병하다 숨진다.

▣ 내용을 간단히 말하자면                              
칠성이는 불구의 몸으로 동냥을 해서 집안 살림을 돕는다. 칠성이는 옆집에 사는 소경인 큰년이를 좋아한다. 과자나 사탕을 동냥해서 가족들보다는 큰년이에게 주는 것이 큰 기쁨이다. 이런 그의 마음을 아무도 모른다. 그러던 어느 날 큰년이네 어머니가 개똥이 어머니 등에 실려 나간다. 어머니는 오늘 같은 날 큰년이네 집에 큰손님이 찾아왔다고 한다. 그 손님은 큰년이의 혼담과 관련 있는 사람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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