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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저자 : 현진건
 출판사 : -
 출판년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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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식여성에게서 행복을 발견한 작가
근대문학 초기의 문인들은 모두가 그 시대를 대표하는 지식인들이었다. 일본이나 중국을 통해 신문물과 신지식을 선도적으로 접한 그들은 과거의 삶의 양식을 벗었다. 특히 그들은 조혼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에 대한 반동으로 그들은 구식여성이 아닌 신여성에 대한 동경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일찍이 구식여성들과 결혼한 문인들의 이혼이나 그들의 신여성과의 연애는 그리 낯선 사건만은 아니었다. 그러나 빙허만큼은 그러한 경향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다. 빙허 역시 일찍이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에서 중학을 마쳤고, 다시 형이 독립운동을 하는 상해로 찾아가 그곳 대학에서 공부한 지식인이었지만, 1915년 열여섯의 나이에 결혼한, 구식여성인 아내를 끝까지 저버리지 않고 사랑했다. 그의 작품 〈술 권하는 사회〉에서 구식여성과 결혼한 지식인이 아내의 몰이해를 답답해하는 장면에서 시사되듯이 그 역시 구식여성에 대한 부정적 의식을 전적으로 떨쳐냈던 것은 아니나, 또 다른 한편으로 구식여성이 가지는 미덕을 알아볼 줄도 아는 인물이었다. 그의 또 다른 작품 〈빈처〉에서 그의 의식의 일단이 확인된다.

내가 외국으로 다닐 때에 소위 신풍조에 띄어 까닭없이 구식여자가 싫어졌다. 그래서 나의 일찍이 장가 간 것을 후회하였다. 어떤 남학생과 여학생이 새로 연애를 주고받고 한다는 이야기를 들을 적마다 공연히 가슴이 뛰놀며 부럽기도 하고 비감스럽기도 하였다. 그러나, 낫살이 들어갈수록 그런 생각도 없어지고, 집에 들어와 아내를 겪어보니, 의외에 그에게 따뜻한 맛과 순결한 맛을 발견하였다. 그의 사랑이야말로 이기적 사랑이 아니고, 헌신적 사랑이었다. 이런 줄을 점점 깨닫게 되었을 때에 내 마음이 얼마나 행복스러우랴! 그리하여 그는 평생에 여자 문제로 인한 잡음을 만들지 않았던 문인이었다.
생생한 현실묘사, 단편소설 미학의 완성
현진건은 우리 근대문학사에서 단편소설의 미학을 완성하는데 기여한 작가로 평가받는다. 특히 그는 '한국의 모파상'이라 불릴 만큼 기교가 뛰어난 작가였다. 그가 남긴 작품들은 한국 리얼리즘 문학의 기틀을 마련했다. 또한 그는 〈술 권하는 사회〉에서도 드러나듯이 술과 더불어 식민지 상황에 대한 울분을 토하면서 투철한 역사의식을 가지고 살아간 작가이기도 하다.
빙허 현진건은 1900년 대구에서 현경운의 넷째 아들로 태어난다. 당시 그의 집안은 출중한 사람을 많이 배출한 명문가였다. 그의 소년시절은 다복하고 평탄했다. 그는 귀공자풍의 예쁘장한 미남이었다고 하는데, 그의 그러한 기품은 다복하고 평탄했던 그의 소년 시절에 형성된 것이다.
그는 1912년 일본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중학을 마치고 동경 독일어 전수학원에서 수학하다 1917년 집안의 경제적 몰락으로 귀국한다. 그러나 다시 1918년 상해에서 독립운동을 하고 있는 숙형을 찾아가 그곳 대학에서 독일어과를 수학하다 1919년에 귀국한다. 동경 유학과 중국 대륙에서의 방랑은 후에 그의 문학의 밑거름이 된다.
고국으로 돌아온 현진건은 이상화 등과 함께 작문지 〈거화〉를 만들면서 문학에 뜻을 두기 시작한다. 이 시절 그는 양부의 재산과 처가의 힘에 의지해 "보수 없는 독서와 가치 없는 창작"으로 해가 지고 날이 새는지 쌀이 있는지 나무가 있는지 모르면서 살았다고 한다. 이때의 경험은 그의 출세작인 〈빈처〉에 잘 나타나 있다. 그런 그는 1920년 11월에 〈희생화〉를 《개벽》에 발표하면서 창작활동을 시작한다. 그는 〈빈처〉를 발표하면서 문단의 호평을 받고, 1922년 1월에 박종화, 홍사용, 이상화, 나도향 등과 함께 《백조》를 창간, 그 동인으로 활동한다.
빙허의 초기작에 해당하는 〈빈처〉나 〈술 권하는 사회〉 〈타락자〉 등은 자신의 경험을 담은 신변소설적인 특징을 갖는다. 이들 작품에서 빙허는 식민지하에서 어디에도 뿌리를 내릴 수 없는 젊은 지식인의 절망적인 모습들을 그리곤 했다. 빙허가 이러한 신변소설에서 벗어나 인생을 있는 그대로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그것을 여실하게 소설화하면서 어두운 현실사회를 재현하기 시작한 것은 1923년 〈지새는 안개〉와 〈할머니의 죽음〉을 발표하면서부터이다. 이후 발표한 〈운수 좋은 날〉 〈불〉 등에서는 리얼리즘 문학의 절정을 보여준다. 김동인은 자신의 《한국근대소설고》에서 그러한 빙허의 작품들을 놓고 "조화의 극치, 묘사의 절미, 과연 기교의 절정이다"라는 찬사를 보냈다.
이후 빙허는 〈B사감과 러브레터〉와 같이 현실을 희화하는 작품을 보여주다가 독립운동을 하던 숙형이 체포되어 감옥에서 옥사하고 이어 형수가 그 뒤를 따른 사건이 있고부터는 창작을 중단하고 신문사 일에만 전념하면서 술로 나날을 보낸다. 그러다 1939년에 다시 창작활동을 시작, 장편소설 《적도》와《무영탑》등을 발표한다. 이들 작품 역시 당시의 사회적 현실을 염두에 둔, 그의 역사의식을 담아낸 작품들이다. 1936년에 손기정 선수가 베를린 올림픽에서 우승을 하자 손기정 선수의 유니폼에서 일장기를 지운 사진이 동아일보 신문에 실리는, 일장기말소사건이 생기면서 당시 동아일보 사회부장으로 있던 현진건은 일경에 체포되어 1년간 수감생활을 한다. 이러한 사건을 통해 현진건의 역사의식의 일단을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직접적인 투쟁은 하지 않았으나 반일사상의 가문을 지켰던 것이다.
출옥 후 생계를 위해 양계를 시작하고 미두에도 손을 대지만 모두 실패하고 생활의 곤란을 겪게 된다. 그리하여 1943년 장결핵으로 사망할 때까지 그는 어려운 살림을 산다. 빙허는 화장을 하라는 유언을 남기고 숨을 거두었는데, 이후 문우이며 사돈이기도 한 박종화가 그의 유언대로 그의 유골을 세골하여 한강에 띄워 보냈다.

▣ 내용을 간단히 말하자면                              
대구에서 서울로 올라가는 기차에서 '나'는 동양 삼국(조선, 중국, 일본)의 옷을 한 몸에 걸친, 기묘한 차림의 한 남자를 만난다. 그는 자신의 옆에 앉은 일사람이나 중국 사람에게 일본말이나 중국말로 뭐라 말을 시키면서 주적댄다. 그러나 그들의 반응은 시큰둥할 뿐이다. 이윽고 그는 '나'에게도 말을 걸어온다. 어디까지 가는가, 서울에 가면 자신과 같은 막벌이꾼들이 머물 합숙소는 있는가 등을 물어대는 것이었다. '나'는 처음에는 그 주적대는 꼴이 밉살스러워 쌀쌀맞은 태도를 취하다가 웃기보다는 울기에 적당한 듯한 그의 신산스러운 얼굴 표정에 이끌려 그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한다. 내가 어디서 오는 길인가를 묻자 그는 고향에서 오는 길이라 답한다. 그러면서 그는 '휘-'하는 한숨과 더불어 신세타령을 시작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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