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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염
 저자 : 최서해
 출판사 : -
 출판년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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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서해의 작품 재조명
저자 : 문학사와비평학회 / 출판사 : 국학자료원
교보문고  BCMall     

 
이광수만 믿고 무작정 상경, 문학에 대한 열정으로 똘똘 뭉친 가난했던 사내
최서해는 외아들로 태어났지만 남처럼 따뜻한 가정에서 자라지 못했다. 어린 시절 그의 가정에 무슨 문제가 있었는지 정확히 기록된 것은 없지만, 그의 아버지는 1910년쯤 가족을 버리고 간도로 떠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아버지가 집을 떠난 것은 어머니와의 마찰 때문으로 추측되는데, 원만치 못한 부부의 불화 때문인지 최서해는 어려서 아버지의 심한 구박과 멸시를 받았다.
아버지가 간도로 떠난 뒤, 가장 없이 어머니 혼자 가계를 이끌어가기는 지극히 힘겨웠다. 그때부터 최서해는 극심한 가난에 시달렸다. 제대로 공부도 하지 못하고 어깨 너머로 글을 배우는 신세가 되었고, 조금 커서는 어머니와 함께 생계를 이어야 했다. 힘센 어른들이나 해낼 법한 노동인 제 키의 갑절이나 넘는 나뭇짐을 산에서 져다 소달구지에 옮겨 싣고, 장을 따라 떠돌던 나무 바리 장사를 했다. 또 꼭두 새벽녘부터 두부집에 들러 두부 목판을 등 지게에 지고 동네방네를 누비던 두부장수로 일했으며 국수집 삯일꾼도 마다하지 않는 밑바닥 인생의 뼈아픈 생활을 했다. 그러나 힘든 생활이었지만 모자간의 애정은 남달랐다. 최서해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이나 최서해의 어머니에 대한 효성은 지극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정 형편상 서해는 보통학교 3학년까지 밖에 못 다녔지만 배움에 대한 그의 열망은 대단했다. 12,3세가 되던 해, 그는 소설과 잡지를 즐겨 읽으면서 배움에 대한 열망을 문학에 대한 열망으로 구체화시켰다. 그가 한창 독서에 빠져들 무렵 발간된《학지광》과《청춘》등의 잡지, 그리고 당시 국내에서 발간된 신소설을 거의 읽으면서 소설가의 꿈을 키웠다. 특히 그는 이광수의《무정》을 읽고 깊은 감명을 받고 이광수에게 서신을 띄우기도 했다. 이광수는 벽지에 묻혀 있는 한 무명 청년이 보낸 편지와 함께 보내온 습작 소설들을 받아 보고서 가끔 평문을 써보내어 서해의 문학적 재능을 격려해 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광수는 느닷없이 자신의 집으로 불쑥 찾아온 최서해를 맞았다. 최서해는 작가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일가친척 하나 없는 서울로 무작정 상경했다. 체면불구하고 들이닥친 서해에게 이광수는 "그래 앞으로 숙식을 어쩔 셈인가?"라고 물었다. 이미 단단한 각오를 하고 왔을 서해의 입에서 나온 말은 "전 오직 한 분 선배님만을 태산같이 믿고 고향을 등졌습니다. 거두어 주시는 대로 저는 아무 일이나 열심히 해 나가겠습니다." 이미 단단한 각오를 하고 왔을 서해의 입에서 나온 말은 거의 생떼에 가까웠다. 그 무렵 이광수는 집안 사정이 복잡하여 최서해를 거둘 형편이 못됐다. 결국 이 엉뚱한 젊은이를 그 때 《조선문단》을 이끌어가던 방인근에게 떠맡겼다. 최서해는 상경 며칠 사이 방인근의 집(그 당시 방인근은 춘원의 집 사랑채에서 살림을 하고 있었다)으로 거처를 옮겨 이삿짐을 풀게 되고, 그가 경영하던《조선문단》의 편집과 영업을 도와주는 사람으로 채용됐다. 서해로서는 대단한 행운이었다.
그러나 몇 달 있다 최서해는 방인근의 집을 떠나 경기도 양주군 봉선사로 들어가 중이 됐다. 이것 역시 이광수의 소개를 통해서였다. 서해는 봉선사에서 불도보다는 문학 공부에 열중했다. 그 때문인지 봉선사의 주지 이학수와 심하게 다투었고 결국 다시 방인근의 집으로 돌아오게 됐다.
그 후 그는 오직 방에 틀어박혀 소설을 쓰고 고치고 또 고치기를 되풀이하더니 몇 달만에 완성한 것이 바로 최서해의 소설가로서의 위치를 굳건히 해준〈탈출기〉였다.
살았을 때 보다 죽은 뒤 더 빛나는 작가 최서해
최서해는 1901년 1월 21일 함북 성진군 임명에서 빈농의 외아들로 태어났으며 본명은 최학송이다. 그의 고향은 '해돋이'가 아름다운 포구였다. 서해와 가깝게 지냈던 박상엽은 서해의 아버지가 한의사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서해는 어려서 한의사였던 아버지에게서 한문 공부를 받았고, 그 때문에 남에게 뒤지지 않는 한문 실력을 지녔다. 이러한 사실은 그가 간도 방랑 이전 소년기에 발표한 작품들에 나타나는 '한문체의 말과 투'의 제목과 내용을 통해 익히 짐작해볼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는 최서해가 10살 무렵 처자를 돌보지 않고 집을 나갔다. 아버지가 집을 나가고 혼자된 어머니 밑에서 누이와 함께 자란 서해의 성장체험은 그의 문학을 이해하는 데 매우 유효한 단서가 된다. 예컨대 그의 작품이 여성편향이 심하다는 것, 아버지가 등장하는 작품에서 아버지는 처자를 괴롭히는 부정적인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는 것, 어머니는 한결같이 가족에게 헌신적이라는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는 것, 누이동생이 등장하는 작품은 있으나 남자형제들이 등장하는 작품은 단 한 편도 없는 것 등과 같은 사실이다.
아버지 없는 가정을 꾸려나가기 위해 어머니나 그가 겪었을 고생은 실로 대단했다. 그런 형편이었으니 학교공부는 엄두도 낼 수 없었던 처지였다. 그의 학력은 소학교(지금의 초등학교) 3년 중퇴다. 그러나 그는 틈틈이 독서를 통해 배움의 열망을 충족시켜 나갔다. 특히《청춘》,《학지광》등의 잡지와 그 당시 발간된 소설들을 읽으면서 서해는 문학청년으로 변모했다. 1917년 발표된 이광수의《무정》은 그를 문학의 길로 들어서게 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918년부터 그는 '서해'라는 필명으로《청춘》과《학지광》에 시와 수필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1919년에 서해의 가족은 간도로 이주하여 새롭게 살길을 모색해 보지만, 고향에서보다도 더욱 극심한 가난에 시달렸다. 결국 1922년 간도에서의 생활을 접고 고향으로 되돌아왔다. 귀향하여 회령역의 잡역부 일을 하며 근근이 생활을 꾸려나가면서도 그동안 중단했던 문학창작에 또다시 몰두하게 되고, 급기야는 무작정 상경하여 춘원에게 일신을 의탁했다.
이 땅에 프로문학(계급문학)이 처음으로 기치를 들고 일어설 즈음인 1924년에 최서해는〈토혈〉〈고국〉등의 작품을 발표하고 이어 1925년〈탈출기〉를 발표함으로서 서해는 "조선의 고리키"라는 평가를 받기에 이른다.
그러나 상경해서 소설가로 이름이 알려진 뒤에도 서해는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조선문단》의 편집일을 맡아보던 때와 《매일신보》기자로 있던 2년간을 제외하고 그는 언제나 '죽음 같은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러한 극빈한 생활 때문에 만년에는 밥을 얻기 위해 문학적 긴장력이 떨어지는 작품을 쓰기도 했으며,《현대평론》,《장한》등과 같이 질 낮은 잡지에 관계하는 등, 삼류문사의 역정을 걷기도 했다. 그러나 언제나 가난이란 체험은 그의 문학에 개성과 생명력을 불어넣는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어릴 적부터 앓던 위병과 불우한 가정생활은 그의 가난의 상징이기도 했다. 궁색한 형편 때문에 제대로 치료할 수 없었던 위장병은 굶주림과 폭음으로 인해 더욱 악화되었고, 가난 때문에 아내가 죽거나 도망가고 어린 자식이 죽는 불행이 되풀이됐다.
최서해의 결혼생활은 불행했다. 첫 번째 아내와는 이혼을 했고 두 번째 아내는 죽었으며 세 번째 부인은 자식과 부모를 버리고 가출을 했다. 그의 불행한 결혼생활이 무엇 때문인지 알려진 바는 없지만 아마도 지독한 가난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짐작할 수 있다.
최서해가 생애 내내 겪었을 육체적·정신적 고통은 그의 문학 속에서 자조·자학으로, 혹은 세상에 대한 저주와 울분으로 용해되어 나타난다. 그래서인지 전영택은 최서해를 가리켜 "서해는 글공부로 문인이 된 사람이 아니라 쓰라린 경험으로 문인이 됐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1932년 7월 서해는 위문협착증으로 수술을 받았으나 수술 후 출혈이 심해 사망에 이른다. 사실 최서해 만큼 생애가 불투명한 작가도 드물다. 문단에 등단하기 이전 그의 행적에 대해선 거의 명확하게 알려진 바가 없다. 7년 남짓한 짧은 기간의 문단생활을 통해 교류한 여러 문우들을 통해 그의 삶과 문학에 대한 이야기가 남아 있을 뿐이다. 다만 문우들의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서해는 호방하고, 소박하고, 가식 없고, 유머가 풍부하고, 신의가 있고, 의지적인 사람이었으며, 김동환의 말을 빌자면 '생전이 나쁘고 사후가 좋았던 사람' 이었다.


▣ 내용을 간단히 말하자면                              
서간도 한 귀퉁이에 있는 가난한 촌락 빼허(白河). 문 서방은 사위 인가(殷哥)가 사는 달리소로 향한다. 그는 죽어가는 아내가 인가에게 빼앗긴 딸 용례를 데려다 달라고 애원하던 것을 생각했다.
문 서방은 본래 경기도 어느 곳의 소작인이었다. 10여 년 소작인 생활에 지친 그는 남부여대(男負女戴)로 딸 하나를 앞세우고 서간도 빼허로 이주했다. 그러나 여기서의 생활도 나아진 것이 없었다. 중국인 지주인 인가의 소작인이 된 것이다. 겹친 흉년으로 인가에게 소작료를 납부하지 못하자, 인가는 그것을 빌미로 딸 용례를 욕심내었다. 결국 빚을 못 갚는 대신 딸을 빼앗긴 문 서방 내외는 절망에 빠졌고, 홧병으로 몸져누운 문 서방의 아내는 용례를 한번이라도 만나 보기를 원했다.
한겨울, 문 서방은 죽어가는 아내의 소원을 들어주고자 인가를 찾아가 사정 이야기를 하고 딸을 만나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그러나 인가는 용례를 보여주지 않고 돈 몇 장을 주며 야박하게 문 서방을 내쫓는다. 집에 돌아온 문서방은 용례를 부르다 피를 토하며 죽는 아내를 본다. 아내가 죽은 다음날 밤, 인가의 집 근처에 문 서방이 나타나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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