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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 정
 저자 : 이광수
 출판사 : -
 출판년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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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정
저자 : 이광수 / 출판사 : 춘원문화사
교보문고  BCMall     

 
부모를 여의고 동가식 서가숙하던 어린 시절
흔히 이광수의 문학을 이야기할 때 그 출발선을 고아의식에 둔다. 그것은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고아로 자란 이광수의 개인사와 국권을 잃고 식민지 지배를 받아야 했던 민족사가 비유적으로 일치되면서 논의의 실마리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이광수가 부모를 여읜 것은 열 살 때이다. 콜레라로 아버지와 어머니를 차례로 잃는다. 아버지가 먼저 콜레라로 숨을 거두었다. 8일 후 어머니도 마저 세상을 등졌다. 아버지가 숨을 거두었을 때 그의 어머니는 막내 젖먹이 애란을 등에 업고, 아버지를 타고 넘는 특이한 행동을 했는데, 그가 그 연유를 묻자 어머니는 "이렇게 해야 내가 네 아버지를 따라 저 세상으로 갈 수 있고, 그래야 네가 잘될 수 있다"고 대답했다. 그때 어머니의 눈빛은 엄숙하기까지 했다. 아들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이광수는 그런 부모님을 잃은 것이다.
그때부터 이광수의 고생은 말이 아니었다. 졸지에 양친을 잃은 이광수는 혼자 모든 것을 해결해야 했다. 그러면서 그는 세상이 '무정'한 것을 뼈에 사무치게 느껴야 했다. 그것은 일종의 한이었다. 그 한을 아버지가 죽은 그 순간부터 느껴야 했는데, 아버지가 콜레라로 죽자 동네에서는 어는 누구도 돌아보지 않았다. 가까스로 그는 한 사람에게 부탁하여 거적에 말아 집 앞에 아무렇게나 가매장을 할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마저 돌아가셨을 때는 당장 아래 여동생 둘이 문제가 되어 어쩔 수 없이 둘째 애경이는 조부의 집에 맡기고, 막내 애란이는 갓난아이인데도 남의 집 민며느리로 들여보냈다. 그때 소년 이광수의 마음은 찢어질 듯이 아팠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은 매일 아침 240리 길인 정주에서 평양을 왔다 갔다 하면서 담배장사를 하는 등 억척스러운 삶을 살았다.
무엇보다도 그를 어렵게 한 것은 당장 기거할 집조차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친척집을 떠돌며 동가식 서가숙 하는 생활을 했다. 그런데 생활이 안정되지 못한 채 이곳저곳을 떠돌아야 했던 그에게는 항상 이가 많았다. 그런 그를 친척집에서 반길 리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거처를 옮길 때마다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산등성이 양지쪽에서 옷을 벗어 이를 잡고는 다른 집으로 옮겨가곤 했다. 어렸을 때부터 자존심이 강하고 신동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똑똑했던 이광수로서는 그러한 생활이 더욱 어려웠다.
그렇게 그는 의지할 곳 없는 고아로서의 서럽고 힘겨운 삶을 살아야 했고, 그런 경험들이 식민지의 민족 현실과 서로 같은 의미를 형성하면서 그의 문학적 자양분이 되었던 것이다.
민족계몽과 친일행각의 역설적인 인생여정
이광수는 1892년 평북 정주에서 전주 이씨 가문의 5대 장손으로 태어난다. 아명은 보경이고 아호는 고주, 춘원 등이다. 원래 그는 가난한 태생은 아니었으나 아버지가 도박에 정신을 파는 바람에 가세가 급격히 기울어서 가난한 유년기를 보낸다.
10세가 되던 해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되어 생활은 더욱 어려워졌다. 11세 때 동학도 박찬명 대령의 집에서 기거하면서 서기 노릇을 하다가 13세 때 동학이 탄압을 받으면서 수배인물이 되어 서울로 도망한다. 그리고는 일진회의 유학생으로 선발되어 일본으로 건너간다. 그곳에서 홍명희·문일평 등을 만난다. 또한 이 시기에 톨스토이의 문학작품에 깊이 빠져들면서 무저항주의·반전사상·인도주의적 입장을 갖는다. 1910년 조부가 위독하다는 전보를 받고 귀국해, 남강 이승훈의 초정으로 오산학원의 교사가 되고 아버지 친구의 딸인 백혜순과 애정 없는 결혼을 한다. 1914년 교사로 있던 오산학원을 그만두고 1916년 김성수의 도움으로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와세다 대학에 입학한다. 도쿄에 유학하면서 그는 과감하고 도전적인 논설을 써서 젊은이들에게 많은 호응을 얻는다. 1917년 그는 매일신보에서 청탁을 받고 최초의 근대장편소설인《무정》을 연재한다.《무정》에 담겨진 자유연애사상은 당시의 젊은이들을 열광시킨다. 이 글을 연재하는 가운데 이광수는 지병인 폐병에 시달리게 되는데 이것이 계기가 되어 그의 평생의 반려가 되는 허영숙을 만난다. 이후 아내와 이혼하고 그녀와 다시 결혼한다.
1919년 2·8 독립선언문을 기초하고 상해에 망명한 뒤 《독립신문》에 관계하다가, 상해까지 찾아온 허영숙과 귀국한 후 친일파로 전향했다는 의심을 받는다. 그로 인해 오래도록 문단의 전면에 나서지 못한다. 그러다가 1923년 송진우와 김성수의 도움으로 《동아일보》객원으로 나서게 되면서부터 상황이 호전된다. 그의 문학은 1924년에 중요한 전환점을 맞는다. 《영대》《조선문단》의 간행에 관여하면서 《재생》을 발표하는데, 이 작품에 표명된 기독교적 인생관은 그의 종교적 전환을 시사해준다. 또한 〈마의태자(1927)〉, 〈단종애사(1928)〉 등을 발표하여 역사소설 장르를 개척한다. 1930년대에 들어서도 그의 문학적 주조는 민족주의 ·이상주의를 바탕으로 전개된다. 1930년 장편 〈군상〉 3부작을 발표, 민족주의를 바탕으로 당대 현실의 비극성과 지향성을 제시하고, 장편《흙》을 발표, 민족주의적 이상주의를 표현했다. 그는 37년 수양동우회사건으로 투옥되었다가 병보석으로 출감한다. 그러한 가운데서도 그의 창작생활은 지칠 줄 모르고 계속된다. 1939년에 발표한《사랑》에서는《유정》에서처럼 정신적 사랑의 가치를 역설한다. 1939년 카야마(香山光郞)로 창씨 개명을 한 이광수는 이후 일련의 친일행각으로 사회적 지탄을 받는다. 그해 대표작의 하나인 《무명》을 발표하기도 하지만, 소위 '북지황군위문단'에 협력, 이로부터 변절자로 낙인이 찍힌다. 이어 친일단체인 〈조선문인협회〉 회장이 되고, 41년에는 태평양전쟁 발발 후 일제의 강요로 각지를 순회하며 친일연설을 한다. 43년에는 조선총독부의 강권으로 한국인 학생의 학병권유차 최남선과 함께 도일한다.
1945년 해방 후 그는 친일파로 지목되어 극심한 비난을 받는다. 반민법이 제정되면서 친일파라는 이유로 구속되기도 하는데, 병보석으로 풀려난다. 이후 6·25가 발발하면서 납북되었다.

▣ 내용을 간단히 말하자면                               
경성학교 영어교사 이형식은 김장로의 딸 선형에게 영어를 개인지도하기 위해 그녀의 집으로 찾아간다. 선형의 미국유학을 위해 영어를 준비시키고자 그녀의 아버지 김장로가 그를 초빙한 것이다. 그러나 김장로의 본 뜻은 형식을 사위감으로 생각하고 그와 자신의 딸을 만나게 해 주려는 것이었다. 두 사람의 의견을 존중하는 신식혼인을 치르겠다는 것이다.
선형과 공부를 마치고 형식은 자신의 하숙집으로 돌아오는데, 주인집 노파가 웬 여학생 차림을 한 사람이 그를 찾아왔다가 갔다면서 아무래도 기생같더라고 덧붙인다. 영문을 알 수 없는 형식은 난감해하다가 저녁 때 다시 찾아온 그녀를 만난다. 그녀는 바로 십여 년 전 자신이 몸을 의탁하였던 박진사의 딸 영채였다. 자신과 암묵적으로 혼약을 한 사이였던 그녀가 칠 년만에 그를 찾아온 것이다. 서로를 알아본 두 사람은 눈물짓는다. 그리고 영채는 그간 자신이 살아온 이력을 형식에게 들려주기 시작한다. 형식은 이야기를 들으면서 조금 전 만나고 온 선형과 영채를 비교해 본다. 그리고는 지금의 영채의 상황에 동정을 보내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갈등하는 마음을 보이기도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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