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1 경제포털
뉴스  ·  증권  ·  부동산  ·  금융  ·  자동차  ·  창업  ·  교육  ·  세무  ·  헬스  ·  BOOK  ·  블로그   
등록예정 2023년 3월 등록예정 도서요약
북다이제스트
        
아이디/패스워드 찾기
회원가입
도서요약전체

미래를 위한준비
도서상세정보
태평천하
 저자 : 채만식
 출판사 : -
 출판년도 :


a4용지 10매내외 핵심요약전문
워드파일 보기및받기 한글파일 보기및 받기 pdf파일 보기및 받기
태평천하
저자 : 채만식 / 출판사 : 하서출판사
교보문고  BCMall     
태평천하 (창비교양문고 7)
저자 : 채만식 / 출판사 : 창작과비평사
교보문고  BCMall     
태평천하 (한국문학대표작선집 14)
저자 : 채만식 / 출판사 : 문학사상사
교보문고  BCMall     
태평천하
저자 : 채만식 / 출판사 : 청동거울
교보문고  BCMall     

 
'백퍼센트의 신경질'이라 불렸던 완벽주의자
채만식은 유년시절 평탄하고 유복한 삶을 살았다. 근검한 아버지 덕분에 제법 중농 소리를 듣는 소지주의 아들이었다. 그에게는 특별한 버릇이 있었는데, 평소 음식과 잠자리에 까다로운 결벽증이 그것이다. 남의 집에 가서도 밥을 먹을 때는 숟가락을 닦아 사용하거나 앉아서 얘기하는 도중에 몇 번이고 엉덩이 밑을 쓰다듬어 먼지를 털고 몸매를 추스르곤 했다. 이러한 결벽증은 이후 문학적 결벽성으로까지 이어져 창작활동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는 모든 작품을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만들고서야 만족했다. 이런 그를 가리켜 안회남은 '백퍼센트의 신경질'이라 불렀을 정도다.
어린 시절, 그는 집에 독서당을 만들고 형들과 한문을 배울 만큼 부족함 없는 생활을 했다. 유달리 옛날 이야기를 좋아했고 독서광이었기에 〈춘향전〉이나〈구운몽〉〈수호전〉〈삼국지〉등 고전소설은 물론, 〈추월색〉이나〈장한몽〉같은 신소설들도 빼놓지 않고 읽었다. 그가 소설가의 길을 가게 된 것도 이러한 독서체험이 바탕이 된다.
그러나 중앙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고 이듬해 부모의 강권으로 은선흥과 결혼하면서, 그의 평탄한 삶은 깨지기 시작했다. 애정이 없는 결혼은 오래지 않아 금이 갔고 평생을 이혼도 하지 않은 채 별거생활을 했다. 인습과 전통을 거역하지 못하면서도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고픈 욕망 사이에서 갈등했던 작가, 그는 자신의 삶의 경험을 고스란히 문학작품에 표출했다. 그가 작품활동을 시작할 무렵 집안도 동시에 몰락하기 시작했다. 수리조합이 생긴다는 소문을 믿고 헐값에 논과 밭을 넘긴 아버지의 뒤이은 사업과 잇따른 실패, 또 맏형의 방탕한 생활로 가산은 밑바닥 나고 만다. 이후 그는 가난으로부터 한번도 벗어나지 못했다. 채만식은 1924년 강화의 사립학교 교원으로 직장생활을 시작하지만, 이듬해 《동아일보》로 직장을 옮긴다. 그렇지만 그것도 1년만에 그만두고 1931년 개벽사에 입사할 때까지 실직자 생활을 계속했다. 그는, 이때의 생활을 "뻣뻣하고 물기 없는 생활"이었으며, "물질의 안정과 정의 위무(慰撫)에서 버림받은" 시기였다고 말한다.
그는 1936년에 숙명여고를 나온 신여성 김영숙과 결혼식도 올리지 못하고 동거를 시작한다. 부인과 이혼을 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지만, 어쨌든 안정된 가정을 꾸미려 했다. 하지만 친구에게 돈을 빌려 광산사업을 했던 형이 실패함으로써 그는 안양과 고향 임피 등으로 잦은 이사를 다녀야만 했다. 원고료 수입만으로 자신의 가족은 물론 형의 식구들까지 책임져야만 했기 때문에 생활은 가난을 면치 못했으며, 이로 인해 그는 건강까지 악화되어 결국 죽음에 이른다.
뛰어난 현실 묘사와 풍자의 작가
채만식의 호는 백릉(白菱) 또는 채옹(采翁), 1902년 전북 옥구군 임피면에서 태어났다. 부족함이 없는 유복한 유년기와 수학기를 보냈지만, 그가 작품활동을 시작하던 때부터 가난은 수족처럼 붙어다녔다. 중앙고보를 졸업한 그는 일본에 건너가 와세다 대학 부속고등학원 문과에 입학했고 축구선수로 활약하는 등 적극적인 학교생활을 보내지만, 동경 대지진으로 조선인학살이 이루어지자, 학업을 중도에 포기하고 귀국해야만 했다.
귀국 후 그는 1924년 이광수의 추천을 받아 《조선문단》 3호에〈세 길로〉를 발표하면서 문단에 첫발을 내민다. 그렇지만 이 작품이 처녀작은 아니다. 이보다 앞서 중편 분량의 〈과도기〉를 썼는데, 한성도서에 출판을 의뢰했으나 나오지 못하고 1973년 유작으로 발표됐다. 등단 이후 그는 부지런히 창작활동을 했으나, 이 시기의 작품은 대체로 단순한 이야기 수준의 작품에 머문다. 그러나 그 뒤,〈화물자동차〉등의 현실비판 의식이 들어있는 일련의 작품들을 발표하면서, 카프 작가들로부터 '동반자 작가'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함일돈이〈산동이〉〈앙탈〉 등을 부르주아적인 작품으로 평가하면서부터 벌어진 현인 이갑기 등과의 논쟁을 통해 자신의 독자적인 문학태도를 분명히 한다.
그는 1930년대 중반 이후부터 탁월한 작가적 역량을 발휘한다.〈레디메이드인생〉〈치숙〉《천하태평춘》을 《조광》에 발표하는 등 일련의 풍자소설을 발표하는 한편,《탁류》와 같은 당시대의 현실을 잘 드러낸 작품들을 써 문단의 주목을 받는다. 일제의 탄압이 가중되던 1930년대 후반의 상황하에서 그만큼 현실에 대한 관심과 비판을 보여준 작가는 드물다. 그러나 1938년 불온사상혐의를 받고 일경에 피검되었다가 조선문인협회에 협조한다는 묵계 아래 가까스로 풀려난 후, 비록 생계를 잇기 위한 방편이었다고는 하지만 친일적인 글을 써서 작가로서의 오점을 남겼다. 해방 후 그는 이때의 사실들을 〈민족의 죄인〉이라는 글을 써서 반성하고 있다.
해방 후에도 그의 창작열은 식지 않았다. 〈미스터 방〉을 비롯하여, 중편 〈도야지〉, 〈논 이야기〉 등의 작품을 통해 그는 당시의 혼란한 사회상을 풍자하고 야유한다. 하지만 그의 평생을 따라다닌 가난은 여전했고, 몸을 돌보지 않는 창작생활로 결국 건강을 크게 해쳐 49세의 젊은 나이로 폐결핵에 걸려 병사한다. 그의 개성이 드러나는 수필을 보면 지독한 가난으로 늘 힘든 생활을 했지만 어떤 경우에도 웃음을 잃지 않는 뛰어난 유머감각의 소유자이며 풍자문학의 대가임을 알 수 있다.

▣ 내용을 간단히 말하자면                                
윤 직원(윤두섭) 영감은 춘심이와 명창대회에 갔다오는 길에 자신을 태우고 집까지 온 인력거꾼과 인력거 삯을 두고 시비가 붙는다. 그는 천하에 둘도 없는 수전노다. 그 좋은 풍신이 아깝게 공짜로 버스를 타고, 그가 좋아하는 명창대회에 가서도 하등표를 사고도 상등석에 앉아 구경을 한다. 또 체신 없이 아무에게나 걸판진 욕이 튀어나온다. 그의 집안은 싸움이 그칠 새 없다. 며느리 고씨와도 한판 붙는다. 윤 직원은 자신의 변변찮은 문벌을 빛나게 할 네 가지 방책을 추린다. 우선 '족보에다 도금'을 하듯 가짜 족보를 만들고, 돈을 써 자신이 향교의 직원 벼슬을 얻었다. 그리고 양반 혼인으로 사위와 손주며느리를 얻었다. 마지막으로 남은 일은 손자 둘을 군수와 경찰서장으로 만드는 것이다. 맏손자 종수는 군서기로 술과 계집질로 돈을 쓰는 게 만만찮다. 자신이 가장 믿는 둘째 손자는 동경에서 대학의 법과를 다니고 있는데...
단체회원가입안내
독서퀴즈이벤트
나도작가 신청안내
무료체험
1분독서영상
한국독서능력검정 신청
모바일 북다이제스트 이용안내

인재채용 | 광고안내 | 구독신청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용약관 | 서비스문의 이용문의:mkmaster@mk.co.kr
회원문의:usrmaster@mk.co.kr
매경닷컴은 회원의 허락없이 개인정보를 수집, 공개, 유출을 하지 않으며 회원정보의 보호를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