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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진회
 저자 : 안국선
 출판사 : -
 출판년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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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표 신소설. 상>
저자 : "우한용,박인기,정병헌,최병우 공저" / 출판사 : 빛샘
교보문고  BCMall     
<한국 대표 신소설. 하>
저자 : "우한용,박인기,정병헌,최병우 공저" / 출판사 : 빛샘
교보문고  BCMall     

 
사형언도, 그리고 구원의 손길인 아펜젤러와의 만남
1899년, 동경전문학교 정치과를 졸업하고 귀국한 안국선은 독립협회 사건에 연루되어 투옥되었다. 1897년 결성된 독립협회가《독립신문》을 발간하고 만민공동회를 개최하는 등 승승장구하다가 돌연 해산 명령을 받았던 것이 1898년 11월이었고, 해산 당시 먼저 이승만이 체포된 후 1899년에는 이상재·유성준 등까지 체포되었는데, 안국선은 바로 이때 함께 투옥되었다.
말 그대로 만민(萬民)이 모이는 집회를 시내에서 며칠이고 열어 '외세 근절'과 '문명 개화'를 촉구하던 독립협회였으니, 이토록 큰 파장을 진압하기 위해서는 방법 또한 가혹할 수밖에 없었다. 독립협회 연루자들은 재판에서 대개 극형(極刑)을 선고받았다. 안국선 또한 예외가 아니어서, 그가 법정에서 선고받은 형은 참형(斬刑)이었다.
언제 선고대로 목숨을 잃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안국선은 불안하고 힘든 감옥 생활을 해 나가고 있었다. 이 때는 면회마저 쉽지 않아 가족 얼굴 보기도 어려운 처지였다. 하지만 안국선을 만나러 꾸준히 감옥을 찾아오는 이들이 있었다. 서양에서 온 기독교 선교사들이었다. 선교사들은 특별한 신분 때문에 별 제약 없이 감옥을 드나들면서 수감자들에게 전교(傳敎)를 할 수 있었다.
죽음을 눈앞에 둔 상황, 고난에 찬 감옥 생활― 이 속에서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위안이 서양 선교사들이었다. 아펜젤러와 벙커 등이 특히 자주 찾아오는 가운데, 안국선은 마침내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이게 됐다. 감옥 안에서 새로운 신을 만난 것이다. 이후 안국선은 평생을 독실한 기독교도로서 살아갔다. 다행히 참형 선고 또한 유배형으로 감형되었다. 가까스로 죽음의 운명에서 벗어난 안국선은 유배지 진도로 떠나, 몇 년 간을 그곳에서 살았다. 결혼하여 가정을 이룬 것도 그곳에서였다. 안국선이 언론인으로서, 작가로서 활발한 활동을 하게 된 것은 이 유배지에서 벗어난 이후였다.
정치학, 계몽과 입신출세라는 양면
안국선은 1878년 12월 5일 경기도 안성군 고삼면 월향리 171번지에서 안직수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1895년, 나이 17세 때 제 1차 관비유학생이 되어 일본으로 건너갔다. 일본으로 가게 된 것은 같은 죽산 안씨 문중이자 안국선의 양부(養父)이기도 했던 안경수가 주선한 일이였다. 당시에는 친부모가 있더라도 자식 없는 문중 어른의 집에 양자 가는 것이 흔한 일이었는데, 안국선을 양자로 맞은 안경수는 군국기무처 의원·탁지부 협판 등을 거쳐 군부대신의 자리에까지 오른 바 있는 친일 정객(政客)이었다.
안국선은 이러한 양부의 후원을 받아 일본에 유학, 동경에서 경응의숙 보통과를 마친 후 동경전문학교에서 정치학을 전공했다. 당시 가장 인기 있는 전공이 정치학과 법률학이기도 했지만, 안국선은 이를 넘어 정치에 깊은 관심을 기울였던 것 같다. 지금은 주로 《금수회의록》의 저자로 기억되고 있지만, 안국선이 처음 펴 냈던 책은《외교통의(外交通義)》《정치원론》《연설법방(演說法方)》등이었으며 잡지에 기고했던 글도 〈응용 경제〉〈민법과 상법〉〈정치가〉〈정치학〉등 정치·경제에 관련된 것이었다.
그러나 안국선은 1899년, 귀국하자마자 크나큰 난관에 봉착할 수밖에 없었다. 양부 안경수가 고종의 양위(讓位)를 획책했다 하여 수배되었고, 일본으로 망명했다가, 1900년 다시 입국했을 때 처형당했기 때문이었다.
국사범(國事犯)으로 처형당한 아버지를 둔 셈이었으니, 안국선이 직접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은 좁을 수밖에 없었다. 지난 날 받았던 든든한 후원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무슨 일을 하든 살얼음판 위를 걷듯 조심해야 할 상황이었다. 그렇지만 신중에 신중을 기했음에도 불구하고 불운(不運)은 어김없이 닥쳐왔다. 관계 맺고 있던 독립협회 간부들이 잇달아 투옥되면서, 안국선 역시 체포되고 만 것이다. 독립협회가 만민공동회를 개최하는 등 세력을 떨치면서 왕의 승인을 얻는 듯했다가 돌연 해산 명령을 받은 후의 일이었다. 감옥에 갇힌 안국선은 양부와 마찬가지로 사형을 선고받았다. 정치학을 공부하면서 꿈꾼 포부가 모두 물거품으로 돌아갈 순간이었다. 다행히 독립협회 관계자들의 경우 대개 감형(減刑) 조치가 내려졌다. 안국선 역시 사형에서 유배로 감형되어 전라남도 진도에서 오랫동안 유배 생활을 하였다. 이씨와 결혼을 한 것도 유배지에서였다고 알려져 있다.
1904년경, 유배에서 풀려나 서울로 올라온 안국선은 여기저기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한편 여러 학회에 가담하여 활동을 시작했다. 대한협회나 기호흥학회 등의 발기인(發起人) 명단에 그의 이름이 보이며, 그밖에 잡지에 쓴 글이 여럿 눈에 띄기도 한다.
안국선이 자기 이름으로 책을 펴 내기 시작한 것은 《외교통의》를 낸 1907년부터였다. 그는 이 해에 《외교통의》외에 《정치원론》·《연설법방》·《비율빈 전사》까지 도합 네 권의 책을 내는 왕성한 필력을 과시했다. 《외교통의》가 외교의 논리와 실제를, 《정치원론》이 정치 문제를 이론적으로 다룬 책이었다면, 《연설법방》은 연설하는 요령과 방법을 실제적으로 다룬 책이었다. 연설회와 토론회가 성행했던 당시의 분위기를 반영한 책이기도 했다.《비율빈 전사》는 비율빈(필리핀)이 미국에 점령당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책이었다. 외국책을 번역하면서도 흔히 자기 이름으로 책을 냈던 당시 풍토를 생각한다면 1907년에 낸 네 권의 책을 모두 안국선이 직접 집필했는지 단언하기는 어려우나, 어쨌든 이 때부터 안국선의 본격적인 집필 활동이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어 1908년에는 유명한《금수회의록》을 냈다. 온갖 짐승이 모여 차례로 연설을 하면서 인간의 부정적인 행태를 비판한다는 내용의 이 책은 현실을 통렬하게 풍자한 책으로 관심을 끌었으며, 1910년 일제에 의해 판매 금지 처분을 받기도 했다. 이처럼 활발하게 저술 활동을 하면서도 안국선은 다른 한편 관계(官界) 진출을 계속 모색했던 것으로 보인다.
《금수회의록》을 발행하고 얼마 후, 1908년 7월 안국선은 탁지부 서기관에 임명되는데, 이후 대한협회나 기호흥학회 등 사회 단체와의 연관을 끊어버렸고, 사회비판적인 글 역시 더 이상 발표하지 않았다고 알려져 있다. 이상적인 정치를 꿈꾸는 한편 현실 정치 안에서 입신출세할 것을 꿈꾸다가, 입신출세의 길이 마련되자마자 이상에의 꿈을 접은 것이라고도 상상해 볼 수 있겠다.
안국선이 쓴 글로 이후에 남긴《공진회》는 단순한 흥미 위주에 가까우며, 유실(遺失)된 《발섭기》·《조염라전》 역시 그러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관직으로는 탁지부 이재국(理財局) 과장을 거쳐 경상북도 청도에서 군수 생활을 한 후 1913년 퇴직했다. 이후 서울로 올라와 대동전문학교 등에서 정치와 경제를 강의했고, 1916년 고향인 경기도 안성군으로 낙향하여 몇 년을 지냈지만 1920년 다시 상경하여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생활하다가 1926년 세상을 떴다. 소설가 안회남(본명 필승)이 그의 장남이다.

▣ 내용을 간단히 말하자면                              
기생으로 이름난 땅 진주에는 그 중에도 이름 높은 기생 향운개가 있다. 향운개는 인물이 빼어나고 성품이 얌전한데다 남자의 손길을 일체 허락하지 않았던 까닭에, 뭇 남자들의 표적이 되었다. 그렇지만 향운개의 마음은 동할 줄 모른다. 어린 시절 소꿉친구 유만을 자기 남편으로 생각하고, 평생 정절을 지키리라고 결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향운개의 어머니 추월의 생각은 다르다. 추월은 향운개의 어여쁜 용모를 이용해 한 밑천 장만할 궁리에 골몰할 뿐인데, 안성맞춤으로 돈 많은 김부자가 향운개에게 마음을 빼앗겨 자기 첩으로 삼으려 한다. 향운개는 쌀쌀맞게 김부자를 거절하지만 어머니는 아랑곳없이 향운개를 첩으로 넘길 계약을 맺고, 더구나 서울로 유학 간 유만이 죽었다는 소식까지 전해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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