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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 하
 저자 : 김남천
 출판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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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
저자 : 김남천 / 출판사 : 신원문화사
교보문고  BCMall     

 
만나면 좌충우돌, 팽팽한 라이벌인 김남천과 임화
만나면 사건이 터지는 두 사람, 엎치락뒤치락 누가 이길지 감 잡을 수 없는 두 사람, 숙명의 라이벌. 우리 문학사에 임화와 김남천 만큼 문제를 많이 몰고 다닌 인물도 흔치 않다. 식민지 시대 프로문학을 앞에서 이끌었던 두 사람의 삶은 마치 운명처럼 얽혀있었다. 나이와 출신성분, 의식의 지향점까지, 그들은 서로 팽팽한 줄다리기로 우리 문단을 긴장시켰다.
김남천은 1911년 평남 성천 군청공무원의 아들로 태어났고 임화는 1908년 서울의 소시민 출신이다. 서로 다른 곳에서 태어난 이들이 처음 만난 것은 1927년 7월 어느 저녁 서울역 대합실이다. 김남천은 동료 문인인 안막, 한재덕의 소개로 임화를 만났는데, 처음 본 임화는 작가라기 보다는 영화배우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임화는 불그스레한 모자를 쓰고 빌로드 저고리에 회색 바지를 입고 앞이 뾰족한 구두를 신은 세련된 신사였다.
김남천 또한 만만치 않았다. 그는 당시 '모던보이' 같이 부잣집 외아들 같은 차림으로 임화와는 달리 점잖은 취향을 가진 멋쟁이였다. 외모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둘은 언제나 만나면 서로 논쟁을 벌였다. 그들은 신념과 사상의 동반자였지만 항상 논쟁을 통해 대립과 화합을 이루었다.
그들이 더욱 가깝게 된 것은 1930년, 평양에서 열린 신간회 강연 발표에서는 김남천이 임화의 시를 낭독하고, 이후 일본유학을 통해 더욱 친숙해졌다. 함께 공산주의 연구 및 실천을 지도하기 위한 '무산자연구회'를 조직하여 합숙을 하였는데, 이때 서로 긴밀한 인간관계를 다져 나갔다.
그들은 함께 카프의 핵심멤버로 활약을 하다가 1931년 10월 카프검거 선풍에 휘말려 들어갔으며, 1935년 카프의 해산계를 경찰부에 제출하는 비극을 맛보기도 한다. 해방을 맞으면서 곧바로 의기투합해 '조선문학가동맹'을 조직하고 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해 나갔고, 1947년 가을 함께 월북했다. 6.25때 종로에서 선무활동을 지도하기도 했지만, 휴전이 되자 남로당 숙청사건에 관련되어 함께 숙청을 당하는 불행의 종말을 맞았다.
김남천과 임화의 논쟁 중 가장 화제거리가 된 것은 이른바 '물논쟁'이다. '물논쟁'이란 1933년 김남천이 그 옥살이 체험을 바탕으로 단편〈물〉을 썼는데, 임화가 이 작품을 '경험주의적인 오류'라는 비판적인 평가를 가하자 김남천이 작품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작가의 실천문제를 거론하면서 반론을 제기한 것이다. 임화는〈물〉을 작가의 실천에 관점을 두기보다는 유물론적으로 평가했던 것인데, 이 논쟁을 통해 두 사람은 모두 자기반성의 기회를 가지면서 창작방법에 대한 재조명을 시도해 나갔다.
김남천의 내면풍경을 비추는 거울은 임화이며, 임화를 비추는 거울은 김남천임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다. 이들은 운명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끈처럼 서로간에 깊은 신뢰와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였다.
삶의 문학을 전개해 나간 리얼리스트
김남천의 본명은 효식(孝植)이며, 아호는 파붕(巴朋)이다. 1911년 3월 6일 평남 성천에서 태어났다. 그가 문학소년으로 꿈을 지닌 것은 중학시절이다. 그는 이때 세계문학전집과 근대극전집 등을 독파했는데, 졸업할 때쯤 해서는 동경에서《문예전선》이나 정치서적을 구해 탐독하면서 창작의 열정을 보이기도 한다. 한재덕 등 문학에 취미를 가진 친구 6.7명과 펴낸《월성》이 그 성과이다.
김남천은 평양고보를 졸업하던 1929년, 나이 열아홉 살 봄에 일본유학을 갔는데, 이때 인생의 전환기를 맞는다. 동경 호세이대(법정대)를 다니면서 〈독서회 및 적색스포츠〉단 활동을 하였는데, 그곳이 사회주의 운동에 뛰어드는 계기가 되었다. 그해 여름 한재덕을 통해서 카프(KAPF)의 동경지부와 관련을 맺었고, 이때 소속 극단이 조선공연을 갈 때 안막 등과 동행을 하면서 카프활동을 시작하였다. 이를 계기로 임화와 구카프계 인사들과 인연이 이루어지면서 평론 활동을 본격적으로 하였으며, 카프의 동경지부인 무산자사가 발행한 《무산자》란 동인지에 임화, 안막, 이북만 등과 함께 참여하였다.
이 당시 김남천은 주로 무산자사의 핵심 맴버인 고경흠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김남천이 볼셰비키화론 시기에서 해방직후까지 조직문제에 집착하는 것은 고경흠의 영향에 의해서 라고 생각된다. 김남천은 고경흠의 주도 아래 한재덕과 함께 평양지역을 중심으로 노동자들의 조직 사업에 측면적으로 지원해서 평양 고무공장의 파업을 도왔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훗날 〈공장신문〉과〈공우회〉를 썼다.
1931년 10월 카프 1차 검거에 김남천은 실형을 받아 옥살이를 하는 중, 그의 첫째 부인이 딸 둘을 남겨두고 세상을 떠나고 만다. 김남천은 수감 후 사상전환을 한다. 출옥 후 감옥의 체험을〈물〉이라는 작품을 통해 발표하여 임화와 그 유명한 '물논쟁'을 벌이기도 하지만, 사회운동과는 직접적인 관련을 맺지 않고 일상으로 복귀하거나 소시민의 고발을 주장하는 문학적 실천만을 강조한다. 김남천의 사상 전환에 대해서는 출옥 후 보호감찰의 감시와 또한 부인의 죽음이 그 원인이 되었으리라고 추정되고 있다. 김남천의 사상 전향에 대한 심리적인 배경에 대해서는 소설〈경영〉(1940)과 〈맥〉(1941)에 잘 나타나 있다. 1933년《조선중앙일보》기자로 활약하다가 신문사가 간행정지가 되자 그만 두었으며, 이후 1939년 최재서가 창간한《인문평론》에 편집장으로 취임해서 장편《대하》를 비롯하여 평론〈발자크론〉을 발표했다. 해방이 되자 김남천은 임화와 함께〈조선문화건설본부〉를 설립했고,〈조선프롤레타리아동맹〉과 통합하여〈조선문학가동맹〉을 만들었다. 김남천은 이 단체의 중앙집행위원회의 서기장이 되었다. 김남천은 1947년경 남한에서 공산주의자들에 대한 탄압이 심해지자 월북했다. 처음에는 북한의 외무 국장이던 이강국을 따라 외무국에서 정보 사업을 취급하였고 이후〈북한문학예술총동맹〉에서 서기장으로 취임해서 남로당 숙청사건으로 실형을 받기 전까지 활동을 한다. 1955년 8월 처형당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 내용을 간단히 말하자면                              
박성권은 20년 전 이 고을로 흘러 들어온 근본도 알 수 없는 사람이다. 동학난의 혼란한 시기를 틈타 갖은 방법으로 재산을 축적하고는, 고향을 버리고 이 마을로 와서 터를 잡아 살고 있다. 큰집과 작은집을 갈라 두 집 살림을 하면서 행세를 하고 있는 박성권은 마을 사람들의 부러움은 말할 것도 없고, 자칭 이 고을 토착양반이라고 하는 박이균 형제의 시기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정착한지 얼마 되지 않아 마을 사람들은 그를 박성권이라 부르지 않고 박참봉이라고 존대해서 불러준다. 이에 박성권은 참봉의 격에 맞게 아이들의 이름도 큰놈, 은산놈, 셋째놈 이라고 부르던 것을 항렬을 넣어 '형준' '형선' '형걸' '형식' 등으로 지어 불렀고, 또한 혼사에도 신경을 써서 양반혼인을 하였다. 큰아들 형준은 경주 김씨와 혼인하였고, 둘째 아들 형선은 벼슬도 높고 재산도 상당한 연일 정보부와 혼사를 추진했다. 원래 이 혼사는 박성권의 첩인 윤씨가 아들 형걸을 위해 계획하고 있었던 것인데, 박성권이 신랑이 서자면 혹시 혼사가 깨어질까 우려하여 형걸 대신 적자인 형선 쪽으로 밀어 부쳐서 성사가 되었던 것이다. 형걸은 이미 정보부와의 혼삿말을 어머니를 통해 듣고 있은 터라 그 혼사가 형선과 맺어진 것에 은근히 화가 나 단발을 하고, 종 쌍네에게 욕정을 쏟아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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