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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 이효석
 출판사 : -
 출판년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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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석 단편집 : 메밀꽃 필 무렵
저자 : 이효석 / 출판사 : 글송이
교보문고  BCMall     

 
호사적 취향의 낭만적 생활
효석이 대학을 졸업한 1930년은 식민지의 내외적 상황에 의해 지식인층의 실업자가 격증한 시기였다. 어려서부터 꼬마 천재로 불리며 최고 학부를 마친 효석이지만, 그 역시 그러한 상황에서 예외일 수 없었다. 그리하여 효석은 한때 현실적인 실의와 창작에 대한 열의를 가지고 룸펜 생활을 보낸다.
그러나 효석이 숭실전문학교와 그 후신인 대동공업전문학교 교수로 재직했던 시절은 식민지시대의 어려운 상황을 감안한다면 호화판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여유롭고 풍요로운 생활이었다. 그것은 그의 심미주의적이고 낭만적인 기질과 맞닿아 있으며 그런 기질은 다시 그의 문학세계의 한 축을 형성하기도 했다. 그가 경성 생활을 청산하고 평양으로 이사한 집은 현관에 담쟁이 넝쿨이 무성하고 화초밭이 갖추어진 양옥이었다. 그의 화초 키우는 취미를 충족시켜 줄 만한 집이었다. 그는 특히 장미꽃을 사랑했고, 화원엔 즐겨 푸록스, 프리믈라, 카카리아 등의 희귀한 화초를 가꾸었다. 피아노를 한 대 사놓고 식구들이 번갈아가면서 건반을 눌렀다. 축음기도 장만하여 현관에서 노크하는 학생 내객들은 흔히 모차르트의 바이올린 소나타의 멜로디를 들을 수 있었다. 쇼팽의 연습곡을 손수 치는 일도 있었다.
학교에서 퇴근하는 길이면 '세르팡'이라는 다방에 들러 음악에 귀를 기울이기도 하고 '낙랑'에 들러 커피맛을 보다가 30분 되는 귀로를 건강법 삼아 일부러 걸어다녔다. 한참 들어오기 시작한 유럽 영화는 빠짐없이 구경했다. 두 번씩 영화관을 찾아 재관람하는 경우도 있었다. 한 달에 영화구경이 7·8회 되는 달이 있다고 당시 잡지설문에 답한 적도 있다.
양식을 좋아해서 집에는 버터나 통조림이 떨어지는 날이 없었다. 일요일에는 온 식구가 외식으로 양식을 즐기기도 했다. 겨울이면 대동강에서 스케이팅을 하기도 했고, 여름방학이 되면 온 집안 식구가 주을 온천으로 피서를 갔다. 평양 생활 후기에는 학교의 동료와 등산구락부를 만들어 여름부터 가을 동안 배낭을 지고 스타킹을 두른 채 동룡굴을 뚫고 묘향산을 답파했다. 장수산을 정복하고 대성산을 밟고 일요일이면 가까운 사동이나 주암산을 돌았다.
후에 아내와 차남을 잃고 만주와 중국으로 떠돌기도 했고 갑작스러운 와병으로 불행한 죽음을 맞이하기는 했지만 그렇게 되기 전까지 그는 심미적이고 낭만적인 취향을 드러내는 호사스러운 생활을 누렸다. 그의 작품 중에 이국적인 취향을 담은 혹은 이국에 대한 낭만적 동경을 드러낸 작품들이 한 계열을 이루고 있는 것도 이러한 일면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동반자적 의식에서 관능적 감각의 세계로
이효석은 1907년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에서 이시후의 맏아들로 태어난다. 딸만 낳아서 아들이 소원인 그의 어머니는 용꿈을 꾼 한 아낙네의 태몽을 논 몇 마지기를 떼어 주고 산 이튿날 잉태하여 효석을 낳았다. 그는 네 살 때 서울로 갔다가 다시 여섯 살 때 평창으로 내려와 서당을 다녔다. 워낙 영민해 신동이라는 평판을 얻었다. 열네 살에 평창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무시험으로 경성제일고보에 입학, 상경한다. 평창에서의 어린 시절은 후에 그의 문학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경성제일고보 1학년, 영어 교사가 수업 시간마다 소설을 읽지 않는 건 바보같은 일이라고 해서 효석의 머릿속에 소설이 귀중한 것이라는 생각이 박혔다고 한다. 그는 시 습작과 콩트 습작을 하면서 열아홉 살 되던 해 1월, 시〈봄〉을 매일신보에 발표하고 2월에는 역시 매일신보에 콩트〈여인〉을 발표한다. 효석은 문학소년적 열의도 대단했지만 학업성적도 뛰어나 1925년에 경성제일고보를 우등으로 졸업했다. 같은 해 경성대학 예과에 입학한다. 경성제일고보 선배인 유진오의 권유로 동인 클럽인 문우회에 가입, 동인지에 우리말과 일본어로 작품을 발표한다. 문학을 일생의 업으로 작정하고 2년간의 예과 시절을 거쳐 학부에 진학할 때 법과에서 영문학부로 전과한다. 이 시절 러시아 문학에 경도되어 있었다. 효석의 대학 생활은 크게 여유 있는 편은 못 되었으나 그렇다고 밖으로 궁상을 내보이는 법은 없었다. 기질적인 낭만주의를 마음껏 발휘하고 생활의 귀족은 못되어도 정신의 귀족은 돼야 한다고 생각하며 생활했다. 1928년 잡지 《조선지광》에 단편〈도시와 유령〉을 발표한다. 계급의식과 사회적 각성을 시사한 이 작품으로 효석은 문단의 주목을 받는다. 이후〈기우〉와〈행진곡〉등을 발표하는데, 이들 작품들도 계층의 분화, 부의 불균형을 다룬 동반자작가로서의 효석의 면모를 보여준다.
1930년 대학을 졸업한 효석은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룸펜 생활을 하다가 다음 해 제일고보 스승의 소개로 조선총독부 경무국 검열계에서 일하게 된다. 그러나 작가로서 그러한 자리에서 일하는 것에 대한 주위의 비판의 소리가 높았다. 결국 한 달이 채 못되어 효석은 검열계를 뛰쳐나와 처가가 있는 함경북도 경성으로 낙향한다. 이듬해 그곳에서 영어교사로 취직, 경제적 안정을 찾는다.
1933년 효석은 구인회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이후〈돈〉,〈수탉〉,〈분녀〉,〈산〉,〈들〉,〈메밀꽃 필 무렵〉 등과 같은 작품들을 발표한다. 효석은 이들 작품들을 통해 향토를 무대로 성 모럴이나 관능적인 감각 혹은 신비적인 생명감 등을 다룸으로써 우리 근대 문학사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거기에 수필을 쓰는 듯한 효석의 서정적 문체가 덧붙여지면서 서정소설이라고 하는 새로운 장르가 구축된다. 효석 문학의 근원은 이전의 동반자적 경향의 작품들보다는 향토적이고 서정적인 작품들에서 찾을 수 있다. 경성으로 낙향했던 효석은 1934년 평양으로 거처를 옮긴다. 이후 숭실전문학교와 그 후신인 대동공업전문학교 교수로 생활하면서 지속적인 창작활동을 한다. 1939년 장편 《화분》과 창작집《해바라기》와《성화》가 출간된다. 1940년, 아내와 아이를 연속적으로 잃게 되자 효석은 만주와 중국으로 방랑길에 나서기도 하는데 곧 귀국하여 일상을 꾸려간다.
1942년 5월 3일 평일처럼 출근했던 효석은 병세를 이기지 못하고 귀가, 병원에 입원했으나 회복하지 못하고 36세의 나이로 사망한다. 병명은 결핵성 뇌막염이었다.

▣ 내용을 간단히 말하자면                              
꽃다지, 질경이, 나생이……, 흙빛보다 찬란하고 눈빛보다 복잡한 초록들의 정경이 펼쳐진다. 그것은 우주의 신비이기도 하다. 초록풀에 덮인 땅 속의 뜻은 초록의 옷을 입은 여자의 마음과도 같이 엿볼 수 없는 저 건너의 세상, 신비의 세상이다. 서울 학교에서 쫓겨나 이곳 들이 있는 고향으로 내려온 나는, 언제부터 들이 좋아졌는지는 알 수 없으나 초록 신비의 세상인 들을 밤낮으로 돌아다닌다.
시절은 만물을 허랑하게 만드는 듯. 들판을 돌아다니던 나는 개울녘 풀밭에서 자웅의 개가 사람의 눈을 꺼리는 법 없이 장난을 치는 모습을 엿보다가 날아드는 돌멩이에 당황한다. 자기 말고 또 그 광경을 엿본 이가 있었던 것이다. 옥분이였다. 어색해진 나는 옥분의 파혼문제를 꺼내 상황을 모면해본다. 일요일은 문수를 만나 둑 위에서 하루를 보낸다. 그와 독서 토론을 하기도 하고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문수가 들려주는 학교 상황은 내가 쫓겨온 학교 상황과 별반 다르지 않다.
어느날 밤 여전히 들의 정취를 즐기던 나는 과수원 철망을 넘어 들어가 딸기맛에 취해본 후 다시 철망을 넘어 나오다 누군가 사람의 그림자를 발견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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