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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범경작생
 저자 : 박영준
 출판사 : -
 출판년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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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가르쳐준 길, 아들이 다시 걷다
박영준은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처음 기독교가 평양을 중심으로 뿌리내리면서 그의 집안은 기독교의 세례를 가장 먼저 받았다. 목사였던 아버지 때문에 그는 어린시절부터 기독교 윤리관에 의해 교육받았다. 이런 가정교육으로 그는 스스로 가난하면서도 남을 돕는 희생과 헌신의 삶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가정에서 엄격했던 부친은 그가 채 열살이 되기 전에 3.1일 운동 등 독립운동에 가담했다가 체포되는 바람에 감옥에서 옥사했다. 이 때문에 그의 집안은 더욱 어려워졌다. 하지만 부친의 죽음은 그에겐 단지 물리적 죽음일 뿐, 그의 내면에 아버지의 영향력은 여전히 살아있었다.
그는 끊임없이 자신을 둘러싼 외부세계에 저항했고, 그의 저항정신을 문학과 구체적인 행동으로 나타내며 아버지와 닮은꼴의 삶을 살았다. '독서회'에서 일제가 금하는 불온서적을 봐 옥고를 치르는가 하면, 농민의 생활을 생생하게 다룬 소설〈일년〉의 상당부분은 일제에 의해 삭제되기도 했다. 또한 일제의 한글말살정책이 노골화될 때는 '한글로 글을 Tm지 못한다면 차라리 절필하겠다'는 이유로 한동안 절필하기도 했다. 그는 그렇게 늘 자신을 둘러싼 주변사람들(농민, 소시민)의 삶과 현실 문제에 주의를 기울인 작가였다. 문학주의자의 결벽성과 윤리성 회복의 지향
박영준의 호는 만우(晩牛)며 소설가, 언론인, 교수로 활동했다. 1911년 평남 강서에서 가난한 목사의 차남으로 태어난 그는 서당에서 한학을 수학하고 14세 때 비로소 정식 학교에 입학했다. 아버지가 죽고 집안이 몰락했지만 1924년 숭실중학교에 입학하고 1926년 광성고등보통학교에 편입하면서 문학에 취미를 갖기 시작했다.
1934년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하면서 처녀장편 《일년 一年》이 《신동아》 현상소설 모집에, 단편〈모범경작생〉이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콩트 〈새우젓〉이 《신동아》에 각각 당선되면서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농민의 1년 동안의 삶을 그린 〈일년〉이 연재 도중 총독부의 검열로 내용이 많이 삭제되면서 순탄치 못한 작가 생활을 시작했다.
1935년 '독서회' 사건으로 5개월 간 옥고를 치르기도 했던 그는 1938년 만주 길림성으로 이주해 해방될 때까지 교편을 잡았다. 만주에 있는 동안 장편 《쌍영 雙影》을 《만선일보》에 발표한 것 외에는 거의 작품활동을 하지 못했는데, 아마도 일제의 한글 말살정책으로 한글을 쓸 수 없게 되자 절필한 것으로 여겨진다. 해방 후 '만년필과 약간의 일용품만 들고' 귀국한 그는 이무영의 도움으로 잡지 《신세대》에 취직하게 된다.
박영준의 작품세계는 해방을 기점으로 뚜렷한 변화를 겪는다. 해방 전에는〈모범경작생〉과 같이 주로 농촌을 배경으로 가난한 농민들의 삶과 애환을 그린 반면 해방 이후에는 도시생활 또는 소시민 생활의 윤리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뤘다. 그가 특히 윤리문제를 천착한 것은 해방과 전쟁으로 미국 문화가 대량 유입되고, 전통적 윤리관이 급속도로 몰락하면서 새로운 윤리관이 확립되지 못한 시대 상황 때문이었다. 6.25가 발발했지만 피난을 가지 못하고 있다가 인민군에 피납, 끌려가다가 개천에서 극적으로 탈출했으며 종군작가단이 결성되자 사무국장으로 취임, 수차례 종군작가로 전쟁에 참여했다. 이때 체험을 바탕으로 빨치산 대장의 심리적 갈등을 수기형식으로 쓴 〈빨치산〉(1951)과 단편집 《그늘진 꽃밭》(1954)을 발표했는데, 《그늘진 꽃밭》은 제1회 아세아 자유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기독교적 세계관 드러난 작품세계
전쟁이 끝난 후 그는 연희대학교, 수도여자사범대학, 한양대학교 등 대학에서 문학 강의를 하면서 왕성한 창작활동을 했다. 윤리 파탄의 시대상을 그린 그의 작품은 대부분 윤리의 회복을 지향했다. 노총각 검사와 다방 마담, 여교사의 애정 문제를 그린 《청춘병실》(1955), 결혼한 부부 사이의 애정 문제를 그린 《푸른 치마》(1955), 애욕에 찬 인간들이 벌이는 퇴폐적 현실을 통해 한 가정의 혼란상을 그린 《태풍지대》(1956), 40대 교사와 여제자와의 사랑을 그린 《오늘의 신화》(1960)가 대표적 작품이다. 이 작품들은 주로 삼각관계의 통속적 구도를 바탕으로 성이 쾌락의 도구로 전락한 사회 풍조와 윤리 부재의 퇴폐적 현실을 사실적으로 그렸다. 특히 《오늘의 신화》는 연재 도중 센세이셔널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는데, 독자들의 비난과 격려가 쇄도했다.
그러나 이 작품들은 신문 연재소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통속소설과는 성격이 다르다. 비록 통속적 구도를 갖췄지만 그것은 당대의 윤리적 타락을 사실적으로 형상화했을 뿐 아니라 그런 현실을 작가가 비판적 관점에서 고발했다는 점, 그리고 타락한 인물들이 자기 성찰을 통해 휴머니즘적 윤리관을 회복하는 과정을 집중적으로 그렸다는 점에서 통속작품과 다르다. 윤리 회복에 대한 그의 강한 의지는 종교적 신념으로까지 발전하게 된다. 타락한 인물이 신에게 기도하고 회개함으로써 기독교적 사랑을 실천하고 인간의 참된 길로 나아가는 과정을 그린 〈종각〉(1965),〈사랑의 거리〉(1962) 〈교회당이 있는 마을〉(1959)은 작가의 기독교적 신앙과 무관치 않다.
1958년 예술가로서의 최고 영예인 예술원 회원이 되고, 1962년 연세대 교수로 취임하면서 후학 양성과 정력적인 창작활동을 병행했다. 특히 그는 원고 청탁을 받으면 날짜를 어기는 일이 한 번도 없었으며, 장편 연재의 경우에도 단 한 회도 걸러본 적이 없을 정도로 작가로서 성실했다. 50대 이후에도 여느 작가들과 달리 매년 10편 이상을 발표할 정도로 정열적으로 활동했다.
그는 예술원상(1965), 서울시문화상(1967), 문화예술상(1975)을 수상하는 등 작가로서 문학성을 인정받았다. 술이라곤 한 잔도 입에 대지 않았고, 만년에는 다방 '가화'에 거의 매일 일정한 시간에 들러 담배를 피워 물고 고독을 즐겼다. 문단에 등단한 후 40년 동안 문학 안에서만 살려는 의지로 일관하면서 꾸준히 창작활동을 벌인 그는 1976년 오랜 지병인 당뇨병으로 정년퇴임을 앞두고 사망했다.

▣ 내용을 간단히 말하자면                              
모범경작생 길서는 군에서 보내는 농사강습회 요원으로 뽑혀 1주일 동안 서울에 갔다가 돌아온다. 마을 사람들은 길서의 이야기를 들으러 몰려든다. 길서는 마을 사람들에게 레그혼이라는 흰 닭을 길러야 한다는 것, 지금 농촌은 불경기지만 호경기가 곧 온다는 것, 공산주의를 경계하면서 부지런히 일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길서를 흠모하는 의숙은 파란 비누를 선물받고 진심으로 길서의 손을 잡아준다. 이튿날 길서는 읍내로 들어가 면장에게 보고를 하고, 면장은 길서 동네의 호세를 인상하는데 협조하라고 한다. 가을이 되자 병충해가 생겨 수확이 줄게 됐다. 동네 사람들은 지주인 서재당에게 가서 소작료 인하를 요청하나 거절당한다. 며칠 뒤 도무지 시세가 없던 뽕나무 값이 엄청나게 비싸지고, 호세가 부쩍 올랐다. 길서의 장난으로 호세가 인상됐다는 것은 알게 된 마을 사람들은 그에게 나쁜 감정을 갖는다. 그 사이에 길서는 시찰단으로 뽑혀 일본에 갔다가 의의양양하게 돌아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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