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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 최정희
 출판사 : -
 출판년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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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인 김동환과의 운명적인 만남
"내가 열 살 되기 전부터 멀리 떠나가 딴 여자와 살고 있는 아버지를 나는 어머니와 한가지로 기다렸다." 최정희의 아버지는 어머니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살림을 차렸다. 어머니는 늘 떠나간 아버지를 기다렸고 어린 최정희에게 어머니는 항상 누군가를 그리워하며 사는 사람이었다.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글에서처럼 최정희는 일찍부터 '기다림이 가져다 준 슬픔' 을 어머니로부터 자연스럽게 물려받았다. 삶은 반복되는 것일까? 아버지의 외도로 어머니의 슬픔을 지켜봤던 그녀는 다른 여인에게 똑같은 슬픔을 안겨주는 운명이 되고 말았다.
그녀는 경제적으로 어려웠기 때문에 유치원 보모가 되기로 결심하고 중앙보육학교에 들어갔다. 1년만에 졸업한 최정희는 경남 안성에 있는 유치원 보모로 있다가 일본으로 건너가 삼하 유치원에서 근무했다. 직장생활로 바쁜 나날이었지만 예술에 대한 그녀의 정열은 남달랐다. 일본에서 연극에 관심을 가지면서 '학생극예술좌'에 참가했고 이를 계기로 귀국 후에도 세 번의 연극공연을 했다.
1930년, 최정희는 카프 회원이었던 김유영과 결혼했다. 김유영과의 결혼은 주위로부터 축복받지 못한 불행한 결혼이었고 애정없는 결혼이었다. 그들이 왜 이런 결혼을 하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어쨌든 그녀의 결혼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이듬해 그녀는 삼천리사에 입사했는데 당시 그 곳의 주간이었던 김동환과의 만남은 그녀의 삶을 온통 뒤흔들어 놓았다. 〈국경의 밤〉이란 시로 유명했던 김동환은 이미 아내와 자식이 있는 유부남이었다. 최정희 역시 남편이 있는 상태였다. 그러나 둘은 서로에게 이끌리는 운명적인 사랑의 감정을 걷잡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들을 둘러싼 현실의 장벽은 높기만 했다. 진작 서로를 만나지 못했음이 원망스러울 따름이었다. 일본의 문화말살정책이 점점 가혹해졌던 1934년, 카프에 대한 2차 검거가 시작됐다. 유일하게 여성 문인이었던 그녀는 전주형무소에 수감되는데 수감된 이유는 카프의 연극단체인 '신건설'에 관여한 김유영의 아내였기 때문이었다. 물론 사회주의 사상이 짙게 깔린 소설을 읽었다는 죄목이 덧씌워졌다.
1939년에 김유영이 죽자 최정희와 김동환의 관계는 더욱 가까워졌다. 그들은 첫딸 지원을 낳고 김동환의 제의로 덕소에서 7년간의 전원생활을 했다. 그들의 운명적인 사랑은 결국 결실을 맺게 되었다.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여성작가 김지원· 김채원 자매가 바로 최정희의 딸이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즐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향수〉 라는 노래로 유명한 시인 정지용은 아름다운 시를 많이 지어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지만 술버릇은 굉장히 고약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삼천리〉 잡지 기자 시절 만났던 문인들과의 일화를 적은 글에서 최정희는 정지용을 술을 좋아한 사람이었다고 적고 있다.
지용이 하루는 요리집에 갔는데 요리상이 들어오기도 전에 어찌된 일인지 기생과 싸움이 붙었다. 싸움의 내용보다는 그 싸우는 모습이 가관이었다. 지용은 두 손으로 기생의 머리끄덩이를 틀어잡고 흔들었고, 기생 또한 지용의 머리를 잡고 있었다. 한참을 그렇게 실갱이 하는 모습을 보니 누가 보아도 그는 난봉꾼의 모습 그대로였다. 어쨌든 요리집에서 지용이 술을 먹고 행패를 부리다가 봉변을 당한 것이 걱정이 되어 최정희는 얼마 후 편지를 보냈다. 그런데 지용의 답장이 더 가관이었다. '사내대장부가 야간체조를 좀 했기로서니 대단할 게 있을까 보냐'였다.
술을 좋아하고 술자리를 꽤나 요란하게 만들었을 법한 지용의 모습과, 여러 문인들과 교우하며 그들을 아끼고 돌보아 주면서 편지까지 주고받은 최정희의 인간적인 모습이 그 시절의 낭만을 느끼게 해준다.스스로의 삶을 개척해나가는 여성상을 창조
최정희는 노천명·모윤숙·이선희와 함께 여류문인 2세대에 속한 작가로 70년대까지 작품활동을 했다. 그의 작품 대부분은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 신변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소설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아름답고 평탄한 삶이 아닌 그늘지고 고달픈 삶을 살아가는 인물들이다. 이것은 그녀의 순탄치 않은 삶의 체험이 소설에 반영된 것이다.
1906년 함북 성진군 예동에서 한의사인 아버지 최재연과 어머니 조선덕의 사 남매 중 장녀로 태어난 최정희는 외도를 한 아버지에 대한 기억과, 아버지를 늘 기다리며 살았던 어머니의 모습이 어린시절 기억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1924년에 상경해 숙명여자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고 28년에 졸업한 후 같은 해 3월에 서울중앙보육학교에 입학했다. 그녀의 〈중앙보육시절〉이라는 회고에 의하면 "남들처럼 일본 동경 유학을 갈만한 경제적 여유가 내겐 없었다. 그렇다고 집에 파묻혀 있기도 싫었다. 그래서 택한 것이 중앙보육학교였다"고 한다. 유치원 보모로 있다가 일본 동경에 있는 삼하(三河) 유치원 보모로 부임했다. 이 시기에 유치진, 김동원 등이 주축이었던 '학생극예술좌(學生劇藝術座)'에 참여했는데 이것이 그녀의 인생을 결정짓는 한 계기가 됐다. 그녀 나이 25세인 1930년 김유영과 결혼했지만 원치 않았던 결합이었으므로 불행했던 시기였다. 최정희의 기록에는 결혼한 사실이 없고 김유영의 기록에만 나오는데 이들 사이에 김홍조가 출생했다. 31년에 그녀는 귀국해 삼천리사에 입사해 가정생활과 직장생활을 병행했다. 카프의 연극단체인 '신건설'에 관여하고 있던 김유영이 1935년 카프 2차 검거 사건으로 전주에 투옥되고 이 과정에서 '최정희가 사회주의 사상이 짙게 깔린 소설을 읽었다'고 진술함으로써 그녀 역시 투옥됐다. 카프 맹원도 아니면서 유일한 여자로 전주형무소에 투옥되었고 8개월만에 출감했다. 출감 후 그녀는 조선일보사에 입사한 뒤 단편 〈흉가〉를 발표함으로써 문단에 데뷔했다. 1937년에는 단편〈인맥〉을《문장》에 발표했다. 1937년 조선일보를 그만두고 파인 김동환의 제의로 경기도 양주군 와우면 덕소에 이사해 7년간 전원생활을 했다. 이때의 이야기는 중편 〈탄금의 서〉에 잘 나타나 있다. 이때의 생활은 궁핍한 농촌 현실에 관심을 갖게 했고 이후 소작인들의 애환이 작품으로 형상화됐다. 35세인 40년, 중편 〈천맥〉을《삼천리》에 연재했고, 1941년 단편 〈봉황녀〉를 발표했다.
8·15해방은 그녀에게 기쁨이 아닌 비극으로 다가왔다. 김동환이 반민특위에 의해 민족반역자로 기소되었다. 혼란 중에 김동환은 행방불명이 되는 비운을 겪게 되고 6·25동란 중 최정희는 자신과 남편의 구명운동을 한 것이 화근이 되어 특별조사를 받게 됐다. 전시 중 문인들은 종군작가단을 구성해 활동했는데 최정희는 공군창공구락부에 소속되어 활동했다.
해방 이후 작품들은 개인의 아픔과 주변의 아픔이 단순히 한 개인의 책임이 아니라 사회 · 정치적인 문제에 기인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1953년에 서울신문에 연재한 〈녹색의 문〉이나 〈끝없는 낭만〉 역시 젊은이들이 시대적인 상황에 의해 희생당하는 이야기다. 장편《인간사》는 1960년《사상계》연재 중에 중단되었으나 64년《신사조》에서 책으로 간행됐다.
그녀는 제1회 여류문인상을 수상하고 70년에는 예술원회원에 피선, 82년에는 3·1문화상을 수상하였고 90년 작고했다. 최정희는 한국 여류문인 2세대로서 여성의 굴곡진 삶을 많은 작품을 통해 남긴 작가다.
▣ 내용을 간단히 말하자면                              
일본에서 '청년동지회' 사건으로 투옥되었다가 석방되어 한국에 돌아온 문오는 지도자로 떠받들고 존경하던 허윤을 찾아나선다. 동경시절 모두의 흠모의 대상이었던 허윤은 마채균의 동생인 채희와 결혼해 서울에서 살고 있었다. 허윤은 병색이 완연한 모습이었고, 오경배는 친일주의자가 되어 있었다. 문오는 채희로 향하는 자신의 마음을 어쩌지 못하고 채희와 관계를 갖고 결혼을 한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한 결혼인데다 궁핍하고 남루한 생활을 견디지 못하는 채희는 도쿄시절부터 '지주의 아들'로 불리워졌던 문오와 살게 된다.
'청년동지회' 사건이 문제가 되어 문오와 하용빈 그리고 채희가 형무소에 수감된다. 채희는 곧 풀려나와 문오의 뒷바라지를 하는데 순전히 문오의 노모가 땅을 팔아 부친 돈으로 치장하고 남은 자투리였다. 채희의 이런 사치벽은 노모에게 알려지고 문오와의 편안한 생활도 끝이 나자 채희는 또 다시 돈 많은 남자에게 포르르 날아간다. 문오는 오경배의 주선으로 취직을 하고 허윤에게서 난 딸 금아와 자신의 아들 민을돌본다. 일본의 식민지배는 점점 악랄해지고 문오는 창씨개명자인 C씨의 평양연설회의 사회자로 결정되어고향인 평양으로 민과 떠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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