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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아지는 살들
 저자 : 이호철
 출판사 : -
 출판년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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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시민,살"
저자 : 이호철 등 / 출판사 : 문학사상사
교보문고  BCMall     

 
74년의 간첩이 97년에는 남성최초로 숙명여대에서 명예학사학위를 받다!
1974년 2월 5일 각 일간지에 〈문인, 지식인 간첩단 검거〉라는 제목의 기사가 나왔다. 거기에는 이호철을 비롯한 임헌영, 김우종, 장백일, 정을병 다섯 명의 문인과 지식인의 사진과 증거품 일람이라는 것도 함께 나와 있었다. 일본에서 유일하게 나오던 한글 잡지 《한양》지의 편집인 김 모씨를 일본에서 만나고 또 향응을 받았다는 죄였다. 바로 김 모씨가 북괴공작원이었다는 것이었다. 2~3일 전까지도 《한양》지 국내 업무를 맡은 사람이 공공연히 일을 하고 있었는데도.
여하튼 그는 10개월의 옥고를 치른 후 석방됐다. 간첩이 10개월의 옥고 후 출소하는 우스운(?) 사건이었다. 문인들의 시국성명에 대한 유신정권의 우회적 보복조치였고, 당시 사회를 본 이호철을 비롯한 문인들은 희생양이었다. 이때 감옥에서 이호철은 한 간첩사형수를 만나게 되었는데 이 경험은 76년 《문(門)》이라는 장편소설로 발간됐다. 80년 5월에는 '김대중 사건'으로 고통을 겪었고, 85년부터는 '자유실천문인협의회'의 대표를 맡아 민주화운동에 더욱 헌신했다. 현재 일흔을 앞둔 나이에도 불구하고 분단된 민족의 현실에 대한 고민과 민주주의에 대한 열정을 기반으로 왕성한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
1979년 숙명여대에서 최초의 남성명예학사 학위를 받았는데, 이유는 그가 한국의 대표적 작가로 특히 분단문학에 있어 훌륭한 저술활동을 했고, 주요 문학상을 수상했으며 통일문화연구 등에 기여한 공로가 크다는 것이었다. 이 학위수여의 사유는 그가 평생 쌓아올린 업적에 대한 요약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튼 위와 같은 사실들은 우리의 해방전후사가 갖는 역사적 질곡의 편린을 보여 줄 뿐만 아니라, 우리 문단에 있어 거대한 하나의 산으로 꼽을 수 있는 이호철이라는 작가의 개인적 삶의 여정을 잘 보여주는 예이며, 그의 작품세계를 이해 할 수 있는 출발점이기도 하다.
서정적 리얼리스트, '감미로운 갈채 속에서의 대중적 편향'에 물들지 않다
이호철은 스스로 호(號:본 이름 외에 허물없이 부르거나 쓰기 위해 지은 이름)를 견산(見山)이라고 쓴다. 이것은 그가 태어난 고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일제치하였던 1932년 3월 15일 함경남도 원산시 현동리 속칭 전산이라는 마을에서 아버지 이찬용과 어머니 박정화의 2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 마을의 한자명은 견산, 즉 큰 산이 보이는 마을이었다. 그리고 그의 집이 고려 때 절터여서인지 조망이 한마디로 그림이었다. 그의 작품 〈큰 산〉에서 그 일부를 볼 수 있다.
"태어난 뒤 가장 먼저 익숙해진 것은 어머니의 젖가슴이었겠지만, 두번째로 익숙해진 것은 그 '큰 산'이었을 것이다."
이렇게 토로할 정도로 그 고향의 산은 그의 내면 깊숙이 잠재되어 있고, 작가 이문구는 그런 이호철을 '큰 산을 품은 큰 산'이라고 표현했다.
외가는 일제하에 독립운동, 이념운동(아나키즘, 사회주의)등으로 집안이 풍비박산 났다. 유년에 대한 그의 최초의 기억은 책과 관련되어 있다. 네 살 때 할아버지 밑에서 천자문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두 살 위인 육촌형의 천자문책을 할아버지가 먼저 구해주자 그 일을 서럽게 여긴 그는 마구 울어댔다고 한다. 아무튼 그는 배운 천자문을 동네 어른들이 모인 자리에서 거꾸로 줄줄 외워 칭찬을 받았고, 인근에서는 재주나 지혜가 보통을 넘는다하여 천동이라고 불렀다. 여섯 살 때에 서당에서 글을 배우기 시작했으나 무척이나 지루하고 재미없게 느꼈고 여느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이따금 땡땡이 치며 놀다 할아버지에게 회초리를 맞기도 했다. 여덟 살에 갈마국민학교에 입학했다. 아버지는 매우 엄격한 사람으로 그 당시 이념적인 부분에 약간의 관심을 가진 농촌지식청년이었다.
이호철은 1945년에 관북지방에서 알아주는 명문 원산 중학교에 입학하였고, 그해 8월에 해방을 맞이하여 학교는 한길중학교로 개편됐다. 그 어수선한 시기에 소월과 임화의 시, 이광수의 소설을 매우 열심히 읽으며 막연히 문학청년으로서의 기반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세계문학전집류와 특히 19세기의 프랑스와 러시아문학에 심취해 있었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는 시나 소설 따위는 싹수없는 녀석들이나 하는 따위로 생각하고 있었고 그에게 역사공부를 착실히 해서 교사노릇이나 하기를 원했다. 그런 아버지를 설득하기 위해 주로 대 문호 톨스토이에 빗대어서 얘기했다. 왜냐하면 '톨스토이라면' 그의 아버지도 다소 수그러들었기 때문이었다. 1948년에 신민당과 공산당이 노동당으로 합병되자 그간 북한 당국에 다소 비협조적이었던 그의 아버지는 반동으로 낙인 찍혀 재산을 몰수당하고 마을에서 쫓겨났다. 다행히 그의 아버지는 연줄을 통해 원산시내 국영한약국에 일자리를 얻어 생계를 꾸려나갔다.
고교 졸업시험을 앞두고 대학진학문제를 고민하고 있던 그는 6.25 발발로 소년 인민군으로 전쟁에 동원됐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포로로 잡혀 여기 저기로 이동해 다니다가 몰살의 위기를 간신히 넘기고 흡곡에서 자형을 만나 풀려났다. 그해 12월에 단신으로 월남하여 부산항에 왔다. 그후 그는 부두노동, 제면소 도제(국수 만드는 공장의 근로자)등의 직업을 전전하다 동래 온천장의 미군기관의 경비원으로 취직하였고 그곳에서부터 그는 소설 습작을 시작했다. 그 당시 염상섭과 황순원에게 원고를 보여주고 약간의 호평을 받기도 했고 그때 쓴 〈어둠 속에서〉라는 작품이 뒤에 〈탈향〉이 됐다. 1953년에 상경하여 여전히 효창동의 미군기관 경비원으로 일했다. 1955년에 그의 데뷔작인 〈탈향〉이 《문학예술》지에 발표됐다. 삶의 변화에 대한 희망에 가득 차 있던 그는 고교동창에게 사기를 당하고 다시 한번 경제적인 좌절을 맛보았다. 그 당시 두 번째 작품인 〈나상〉 이 발표되었고 두 번째로 추천완료되어 황순원의 도움으로 광문사라는 출판사에 일자리를 얻었다. 이로써 그는 당시 명동을 중심으로 한 문단의 한 귀퉁이에 자리를 잡게 됐다. 그 이후로 40여 년간 민족분단이라는 주제를 바탕으로 꾸준하고도 왕성한 작품활동을 전개해 오고 있다. 1961년에는 〈판문점〉으로 현대문학상(7회)을, 1962년에는〈닳아지는 살들〉로 동인문학상(7회)을, 1996년에는 《남녘사람 북녘사람》으로 대산문학상(제4회)을 수상했다. 대표 작품들로는 장편소설 《소시민》《서울은 만원이다》, 《남풍 북풍》, 《문》, 《재미있는 세상》등이 있고, 중편과 단편으로는〈퇴역선임하사〉, 〈무너지는 소리〉, 〈부시장 부임지로 안 가다〉 등이 있으며, 칼럼 및 산문집으로는 《세기말의 사상기행》, 《문단골 사람들》, 《산 울리는 소리》 등이 있다. 그리고 70년대에 들어서부터는 현실문제에도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해 연행, 체포, 구속, 석방이라는 삶의 거친 파도를 헤쳐왔다.
이호철은 최인훈과 더불어 60~70년대의 대표적인 화제의 작가로 불릴 만큼 많은 작품을 쏟아냈지만 대중의 인기와 영합하여 상업적이고 관성적으로 작품을 쓰지 않고, 자신이 추구하는 엄숙한 문학적 기준을 잘 지켜오고 있다고 평가받고 있다. 그의 문학적 특징은 민족의 분단과 항시 연결되어 있다. 이것은 비단 그가 실향민이라는 개인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만이 아니라 보다 근본적으로는 민족의 분단이라는 것이 단지 지리적인 분단이 아니라, 민족의 자원, 국력, 생활, 언어, 사상, 풍속 등 인간으로서의 삶의 총체적인 부분에까지 뿌리깊이 파고 들어와 이질화시키고 있다는 데 주목하고 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그리하여 그는 작품 속에서 사회의 거창한 사건보다는 개인의 자잘한 일상적 삶을 통해서 추상적인 이론이나 거대한 구조라는 것이 어떻게 복잡하고 미묘하게 전개되어 나가고 있는가 하는 점을 잘 나타내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주관주의적인 감정에 기울어지지 않고 담담하고 객관적으로 그것들을 파악하고 묘사함으로써 '서정적 리얼리스트'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그의 다른 특징 중의 하나는 증오의 대상물도 관용으로써 포용하는 휴머니즘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그의 작품을 유심히 관찰해 보면 과도한 비약이나 틀에 박힌 도식적 전개 따위를 배제하고 자신 특유의 문학적 적정선을 유지해 나간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통일에 대한 관심과 백두산 및 금강산여행이라는 민간차원의 실질적인 북한방문이 늘어가고 있다. 글과 행동의 일치를 보여온 이호철은 현재 98년 방북경험을 바탕으로 99년에 《한 살림 통일론》이란 책을 냈다. 거기서 그는 "남북 양쪽 사람들끼리 어떤 식으로든 자주 만나고, 개인적으로 정분을 쌓아가며, 형편 형편만큼 `한살림'을 차려 가는 것이야말로 가장 손쉽고 동시에 실현가능성이 높은 통일법이 아닙니까?”라며 그의 통일관을 표명했는데 이것 또한 그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하나의 작은 실마리라 생각된다.


▣ 내용을 간단히 말하자면                                 
과거 은행장을 지냈지만 지금은 거동도 불편하고 반 백치 상태인 아버지의 고집으로 영희네 집안식구 모두 응접실에 모여 있다. 며느리 정애와 아들 성식과 함께 북으로 시집간 맏딸 즉 영희의 언니를 기다리고 있다. 그것도 밤 12시에 온다고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모두 정말 그녀가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아무튼 이 기다림이라는 행사는 기다리는 모두에게 아무런 목적의식과 의미가 없는 의례적인 것이었다.
장남이지만 집안일과 세상의 일에 무기력하고 무관심한 성식과 시아버지와는 좀 다른 의미의 반백치가 되어 있는 성식의 아내 정애와 같이 모여 있는 이 시간은 영희에게 마치 미칠 것 같이 답답하다. 아버지의 반 백치화 이후 훨씬 자유롭고 활달하며 뻔뻔해진 식모는 왜 기다리는 시간이 밤 열두시냐며 '곱게 미칠 것이지'라며 불평을 내뱉자 영희는 속이 상한다. 영희는 정애와 성식에게 답답함을 토로하지만 돌파구는 없고 또 답답해지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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