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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 식
 저자 : 이제하
 출판사 : -
 출판년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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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하 소설전집 1 : 초식>
저자 : 이제하 / 출판사 : 문학동네
교보문고  BCMall     
<이제하의 시네마천국>
저자 : 이제하 / 출판사 : 우리문학사
교보문고  BCMall     

 
편집증적 성격, 고집과 순수
이제하는 위로 10년, 7년 차이가 나는 누님 둘을 둔 막내이자 외아들이었던 탓인지 고집불통의 성격이었다. 그는 스스로 그런 고집불통의 성격이 자신을 문학으로 이끈 것이라고 고백했다. 오랫동안 외지로 돌아다시던 아버지가 서먹서먹하게 느껴지던 네 살 때 개숫물통 사건이 일어난다. 아버지가 어느날 아들의 고집불통인 성격을 감당하지 못해 그만, 이제하를 개숫물통에다 담가버린 것이었다. 이 일로 아버지에 대한 반감은 더욱 깊어졌다.
이에 반해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어머니에게는 정도 이상의 심정적 친연성을 느끼고 있었다. 부모에 대한 상반된 감정은 그의 문학에서 가장 근본적인 결을 이루고 있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페미니스트적 취향으로 나타난다.
1945년, 그는 호적등재가 늦어 그만 학교에 입학할 수 없게 됐다. 그러나 자신의 끈질긴 노력으로 정식 학생이 된다. 그는 이때 일을 회상하면서 스스로 자신이 편집증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고백한다. 호적 나이가 늦어 입학이 불가능하자 그는 한 학기 반 동안을 교실 창틀에 매달려 교실 안을 기웃거리며 남의 공부를 지켜보기도 하고 야외 수업을 하면 슬그머니 그 틈에 끼여들기도 하며 보냈다. 이렇게 되자 결국 학교에선 그를 정식 학생으로 편입을 시키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재밌게도 대학생활은 그 반대였다. 그는 대학을 5년이나 다니면서도 결국 졸업을 하지 못했는데, 대학 시절 그는 2학년이 되도록 학점이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고 한다. 어릴 때나 대학 때나 모두 관심은 엉뚱한 데 있어, 이를테면 선생과 아이들이 '서로 마주보고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에만 혼이 나가, 수업 내용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고 스스로 밝히고 있다.
이러한 편집증적 성격은 곧 그의 순수한 성격과 그 무엇과도 타협하지 않는 고집으로 이어졌다. 이것은 그의 문학 작품의 예술성을 이루는 중요한 자양분이 된다. 〈초식〉과 관계된 그의 문학상 거부는 그의 순수와 고집의 단면을 여실하게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1972년〈초식〉을《문학과 지성》에 발표하고 이듬해에는 최초의 창작집《초식》을 민음사에서 자비로 간행했다. 이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국내 작가들과 출판계에 충격을 던졌고, 나아가 70년대 창작집 출판붐을 일으키는 데 일조를 했다.
1974년〈초식〉으로 현대문학 신인상을 수상하게 되었는데, 그는 수상을 거부하여 일대 파란을 일으켰다. 그가 수상을 거부한 이유는 나눠먹기식 문학상의 행태와 당시 현대문학 주간이었던 조연현과 문단원로들이단체장 선거를 둘러싸고 감투싸움에 환멸을 느낀 탓이었다. 그는 당시 도무지 수상 소감이 씌어지지 않아 수상을 할 수 없다고 하였다. 당시 편집장이었던 김수명씨의 질책으로 마음을 잡고 다시 수상 소감을 써 보려고 했으나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김수명씨에게 미안함을 가지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작가의 이러한 고집은 꿈꾸는 자, 순수한 마음을 가진 자만이 보일 수 있는 파격이요, 열정이라고 할 수 있다.
꿈꾸는 자, 그 행로의 다양한 변주
'언어의 마력적 속성을 발굴하고 회생시키는 작가'라는 찬사를 받고 있는 이제하. 그는 소설뿐만 아니라 시, 동화, 그림, 영화 평론 등 장르의 경계를 넘나드는 활동을 통해 '우리 시대에 보기 드문 르네상스적 예술가의 면모'를 보이고 있는 작가다.
이제하는 1937년 음력 5월 20일 경상남도 밀양군 부북면 전(前) 사포리 320번지에서 태어났다. 위로 10년, 7년 차이가 나는 누님 둘을 둔 막내이자 외아들이었다.
그는 1946년 그의 예술적 행로에 있어 중요한 바탕이 되는 마산으로 이사를 하게 된다. 거기서 회원국교(檜原國校), 마산동중, 마산고를 다니게 된다. 중학교 3학년이던 1952년부터《학원》지에 투고를 하기 시작했는데 〈비오는 날〉이라는 짧은 글이 독자문단에 실리면서, 그는 본격적으로 작품을 투고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낯모르는 친구들과 문학에 관한 편지를 주고받는 재미에 빠져 지낸다.
1953년 마산고 시절 제1회 '학원문학상'을 수상한다.〈靑솔 그늘에 앉아〉란 시가 우수작 2편 중에서 2석을 차지하자, 이후 하루 10여 통씩 서너 달 동안 팬레터가 끊이지 않았다. 이 작품은 그가 쓴 최초의 시로, 사실 작가의 당초 생각은 〈개잡는 풍경〉이란 산문으로 수상을 할 줄 알았는데 시가 당선되자 얼떨떨한 기쁨과 씁쓸한 실망이 교차되었다. 이때 시부문의 심사위원은 조지훈, 박목월이었다.
1956년 홍익대 조소과에 입학한다. 원래 그는 서양화과에 진학을 하고 싶었지만 성적에 자신이 없어 조소과에 진학했다. 하지만 결국 그는 군대를 마친 이후 1962년 서양화과에 3학년으로 편입하게 된다. 아무튼 대학 입학하던 그해 《서울신문》산춘문예에〈꽃〉으로 입선을 하고《새벗》에 강소천 선생의 추천으로 동화〈수정구슬〉이 당선된다.
그 이듬해, 1957년《현대문학》에 〈노을〉로 미당 서정주의 추천을 받는다. 당시 이화여대 국문과에 다니고 있던, 이제하와 알고 지내던 여학생이 미당의 집에 다니면서 이제하의 시작 노트를 미당에게 보여 주게 됨으로써 이루어졌다.
1958년 다시 미당의 추천으로《현대문학》에〈설야(雪夜)〉,〈바다〉두 편의 시를 발표하여 완전한 시인의 자격을 갖추게 된다. 그런데 그해 그는 이미〈황색 강아지〉(이 작품은 후에 작품집《초식》에 〈황색의 개〉로 개명되어 실린다)라는 소설 작품이《신태양》에 당선되어 있었다. 그 당시 그는 미당 서정주의 장남인 서승해, 송상욱, 황동규 등과 어울려 문학 청년으로서의 기질을 마음껏 발휘하며 신촌을 누비고 다녔다니며 포크너, 카뮈, 표현주의, 초현실주의 화가들에 심취해 있던 시절이기도 하였다. 그해 《소설계》(삼중당 공모 소설문학상)에〈나팔산조〉가 당선작 없는 준당선이 된다.
1959년 군에 입대, 김해 공병학교 편찬과에서 군사학 교과서를 편집하며 지내다가 1년 반 뒤 의가사 제대를 한다. 1961년《한국일보》신춘문예에 김일선(어머니의 이름)이란 필명으로〈손(手)〉을 투고, 당선작 없는 가작으로 뽑혔다. 이 작품은 부조리한 삶의 인식을 드러내고 있는데, 이에는 군대의 경험과 당시 경도되어 있던 프랑스 초현실주의 화가 델보의 영향이 크다. 그는 이상문학상 수상 소감에서 델보의 그림 〈손(手)〉을 보았을 때의 충격을 잊을 수가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조소과를 그만두고 서양화과에 편입했지만 학교 생활에 적응을 못하고 또한 실연을 당해 학교를 결국 때려치우게 된다. 이후 한동안 권태와 공허로운 생활을 보내게 된다.
1964년 최정희 선생의 도움으로《현대문학》에〈태평양〉,《공군》에〈기적〉을 발표한다. 두 작품 모두 작가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 작품인데, 이러한 특징은 이전 작품들과 다른 면을 보인다. '제게 있어 문학이란 앞을 내다보는 일이 아니라 뒤를 돌아보는 일'이라는 작가의 말이 달라진 문학 세계를 대변한다. 1965년〈소경 눈뜨다〉를《현대문학》에 발표했는데, 이 작품 또한 실제 체험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이 당시 평론가 김현은 '이제하 소설을 관류하여 흐르고 있는 것은 파괴본능이다. 성욕(性慾)과 역(逆)의 방향에서 작용하는 파괴본능은 그의 소설에 증오라는 감정을 부여해 준다. 증오와 구토는 그의 소설 주인공들의 정서적 반응이다.'고 평했다. 그 증오는 '비정상적인 가족간의 생활에서 야기한다. 가족관계가 중요한 소재를 이루고 있는〈기적〉,〈소경 눈뜨다〉,〈초식〉등에서 주인공의 어머니는 대개 기독교를 기적의 종교로 믿고 있는 맹신자이며, 아버지는 그러한 어머니의 맹신을 비웃는다. 그 부모들은 대체로 싸운다'라고 그 공통성을 추출해낸다. 그리고 그 불화의 원인을〈소경 눈뜨다〉에서 추론해 볼 때, 재래적인 삼각관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1969년〈임금님의 귀〉(현대문학),〈스미스 씨의 약초〉(월간문학), 속물과 진정한 예술가의 대입을 통해 당대의 부조리를 탁월하게 형상화한 〈유자약전〉(현대문학)을 발표한다. 이 무렵부터 그의 작품 세계는 점차 사회적, 문화적 의미를 획득하여 그 지평을 넓혀 나가게 된다.
1972년 〈초식〉(문학과 지성)을 발표하고 이듬해에는 최초의 창작집 《초식》을 민음사에서 자비로 간행한다. 1974년 《초식》으로 현대문학 신인상을 수상하게 되었으나 수상 거부. 1978년에는 창작집 《기차, 기선, 바다, 하늘》을 홍성사에서 간행한다.
1982년 데뷔 23년 만에 첫 시집 《저 어둠 속 燈빛들을 느끼듯이》를 청하에서 간행. 6월에는 관훈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가진다.1984년에는〈권투〉(문학사상〉를 발표했는데, 이 작품은 1987년 MBC 〈베스트셀러 극장〉으로 방영되었고 이를 직접 각색했다.
1985년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현대문학〉를 발표. 이 작품으로 이상문학상을 수상했다.1987년에는 《한국일보》에 연재했던《광화사》를 문학사상사에서 2권으로 묶어 출판했는데, 이 작품으로 한국일보 문학상을 수상한다.
1988년, 87년부터 문학사상에 연재했던 《소녀 유자》를 고려원에서 간행하였고, 김화영씨의 추천으로 이장호 감독과 인연이 닿아〈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를 영화화하게 되고 직접 시나리오를 썼다. 《초식》을 문학과비평사에서 재간행. 이때 《동아일보》와 대담을 갖는데 그 자리에서 그는 '내 소설은 회화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어요. (생략) 내 소설이 스토리가 아닌 이미지 위주인 것은 이 때문이며 나는 독자와의 긴장을 유지하면서 그들의 상상력에 더 많은 여지를 남기고 싶은 겁니다'라고 자신의 소설에 대해 밝혔다.
1991년 안정효, 김지원과 3인 중편집《혼선》(경향신문사) 출간. 일러스트집 《사라의 눈물》(예문각) 재출간. 한국일보와 잡지 등에 영화 칼럼 연재를 시작한다. 1992년 영화 칼럼집 《이제하의 시네마천국》(우리문학사)출간. 1994년 두 번째 영화 칼럼집 《괴짜들, 짱구들, 젊은 영화들》(웅진) 출간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했다.


▣ 내용을 간단히 말하자면                                   
세 번째 국회의원 선거 출마를 선언한 아버지는 또 채식을 시작한다. 그러자 우리 집엔 예의 그 선거 참모들, 삼촌, 숙모, 외할머니, 그리고 오촌 당숙들과 그들이 이끌고 온 친척의 친척들이 득실거린다. 그들은 이번에야말로 당선은 틀림없으며, 최소한 3위 이상은 되지 않겠느냐고 떠벌린다. 첫 번은 여섯 명중에서 두 번째, 둘째 번은 여덟 명중에서 첫 번째로, 아버지는 꼬리로부터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내가 소학 4년 때, 등받이를 떼어버린 얼음 운반용 자전거에 도시락 두 개와 '서광삼 기호 1번'이란 깃발 하나를 매달고 부친은 첫 유세에 나섰던 것이다. 그러면서 부친은 '채식'같은 기묘한 방법을 생각해 내었다. 이번에도 식구들에게 출마를 하겠다고 선포를 했을 때, 아버지는 별식으로 모처럼 놓인 도미구이 접시를 한 옆으로 슬그머니 밀어놓고, 허탈한 얼굴로 시금치 접시로 젓가락을 가져갔다.
일요일, 아버지와 나는 자전거를 타고 바다로 갔으며, 그 이후 틈만 나면, 아니 필사적으로 틈을 붙들기만 하면 젖 먹던 힘을 다해 아버지는 바다로 도망쳤다.
몇 번째나 마찬가지였지만 고비로 접어들자 선거의 양상은 가열해지고 또한 더러워졌다. 날뛰는 주객전도의 광란 속에서 합동유세의 날이 오고, 거기서 뜻밖의 작은 사건이 발생한다. 그 사건으로 이 양양하던 입후보자는 허리가 반으로 접혀, 드디어 백팔십도 방향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되는 기묘한 사태가 벌어지고야 만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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