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1 경제포털
뉴스  ·  증권  ·  부동산  ·  금융  ·  자동차  ·  창업  ·  교육  ·  세무  ·  헬스  ·  BOOK  ·  블로그   
등록예정 2023년 3월 등록예정 도서요약
북다이제스트
        
아이디/패스워드 찾기
회원가입
도서요약전체

미래를 위한준비
도서상세정보
사반의 십자가
 저자 : 김동리
 출판사 : -
 출판년도 :


a4용지 10매내외 핵심요약전문
워드파일 보기및받기 한글파일 보기및 받기 pdf파일 보기및 받기
사반의 십자가
저자 : 김동리 / 출판사 : 송정문화사
교보문고  BCMall     

 
선이의 죽음, 동리 문학의 원천
김동리는 스스로 자신의 문학의 뿌리 혹은 동기는 '죽음'이라고 생전에 밝혔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문학 세계에는 인간의 죽음과 삶의 문제를 종교적이고 철학적인 깊이까지 천착해간 작품이 중요한 맥을 이루고 있다. 그가 이렇게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된 연유엔 어린 시절의 친구, 선이의 죽음이 가로놓여 있다.
김동리는 유년기에 죽음에 대한 체험을 많이 했다. 그가 어렸을 때 한 번은 지홍이(형 범부의 큰아들)와 함께 예기소에 목욕을 갔는데, 모래사장 위에 송장을 하나 건져 놓았다. 죽은 사람을 살린다고 인공호흡하다가 갑자기 죽은 사람이 붓는 바람에 무서워 그냥 달려 온 적이 있었다. 평소 해마다 사람이 빠져 죽는다는 예기소 근처에 살면서 보고 들은 수많은 죽음들을 통해 죽음과 삶, 인간에 대해 깊이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런 죽음에 대한 성찰은 그의 유일한 소꼽친구였던 선이의 죽음을 통해 결정적으로 그의 삶과 문학 전반에 지울 수 없는 흔적으로 남는다. 그의 산문〈가랑잎 위에서〉를 보면 선이의 죽음이 그에게 얼마나 큰 상처로 남았는지 알 수 있다.
'내 짝 선이가 거적에 싸여 저희 삼촌 지게에 얹힌 채 냇물을 건너가던 뒷모양을 한참 동안 바라보고 섰다가 집으로 돌아온 뒤, 나는 얼마 동안 그녀의 이름을 입에 담지 않았다.' 어린 나이였지만 그는 선이를 잊을 수 없었고, 더욱이 선이의 죽음을 이해할 수는 없었다. '그런 아아(아이)'들은 아무 데나 묻어버린다는 어머니의 말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아무 데나 버린다는 것은 선이 부모나 다른 사람들이 선이를 미워했기 때문일 터인데, 그가 생각하기에 그 착한 선이를 누군가가 미워한다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선이가 죽은 뒤 삼 년이 지나도록 그는 선이를 잊지 못했다. 언젠가 동네 안의 어떤 애가 죽은 날 밤, 그는 엄마와 누나에게 그 애도 아무 산자락에나 내버리느냐고 물었다. 어머니와 누나는 그에 대한 대답을 하지 않고, 한참 뒤 누나가 선이를 잊어버리라는 말을 했다. 어머니와 누나는 창봉이(김동리의 어릴 때 이름)가 여전히 선이를 잊지 못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동리는 여전히 선이의 죽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부모에 앞서 죽은 아이는 원수이며 따라서 아무 데나 버리는 것이라는 어머니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선이같이 순하고 예쁜 아이가 자기 어머니의 원수일 리가 없다는 생각만이 그에게 들뿐이었다.
그의 소년 시절은 언제나 어둡고 쓸쓸하고 외롭기만 한 나날들이었다. 그 원인은 아버지의 음주도, 그 때문에 생긴 부모님의 불화도 아니었다. 바로 선이의 죽음 때문이었다. 선이의 죽음은 그로 하여금 죽음을 잊을 수 없게 만들었던 것이다.
'나는 밤이면 밤마다 별을 쳐다보며, 낮이면 먼 산이나 수풀을 바라보며, 죽음을 생각하고 있었다. 비오는 날이면 비를 보며, 눈오는 밤엔 눈을 보며, 죽어 나가던 선이와 죽음이란 것을 생각했다. 가을이 되면 산골짜기를 메우는 가랑잎 속에 누워…'
죽음에 뿌리를 둔 문학, 그 구경으로서의 인간의 문학
한국 현대 문학의 거두 김동리는 1913년 음력 11월 24일 경상북도 성건리에서 김임수와 허임순 사이에서 5남매의 막내로 출생했다. 17살 때 서울 경신 중학교 4학년을 중퇴하고 귀향하여 철학서적과 세계 문학, 동양 고전에 심취했다. 이때부터 그는《매일신보》와《중외일보》에 시〈고독〉,〈방랑의 우수〉및 수필을 발표했다. 1933년 무렵에는 서울 필운동의 백씨(伯氏) 범부(凡父) 선생 숙소에서 서정주를 소개받아 사귀기 시작한다. 1934년《조선일보》신춘 문예에 시〈백로〉가 입선되고 1935년《중앙일보》신춘문예에 단편 소설〈화랑의 후예〉가 당선됐다. 이를 계기로 그는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위해 경남 사천의 다솔사와 합천의 해인사를 전전한다.
〈화랑의 후예〉는 사직동 시절의 형님의 모습을 모티프로 하며 '조선의 심벌'='황진사'= '화랑의 후예' 를 작품의 전개 과정에서 밝혀나가는 구조로 이루어졌다. 주인공 황진사는 몰락한 양반의 후손으로서 세대의 변전을 수용하지 못하고 시대 착오적인 관념에 사로잡힌 인물이다. 1인칭 서술자인 나는 이러한 황진사를 풍자와 연민이 뒤섞인 이중적인 시선으로 관찰하고 있다. 이 시선은 퇴색해가는 조선의 심벌을 심미적으로 관조하는 작가 자신의 입장을 반영하고 있다.
1936년 《동아일보》신춘문예에〈산화〉가 당선. 상경하여 종로 연건동에 하숙을 정하고 창작활동에 몰두했다. 그때 발표된 작품이〈바위〉,〈무녀도〉등이다. 이들 작품의 모티프는 다솔사 지역이며, 김동리의 대부분의 소설 모티프를 제공하고 있다. 이들 지역은 토속신앙의 발상지이며 우리 민족의 정신을 지배하고 있는 무속신앙의 본고장으로 그의 성장과정에서 많은 영향을 준 곳이라 짐작할 수 있다.
〈무녀도〉는 세 번에 걸친 개작 과정에서 보여지듯이 김동리의 문학 세계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개작을 통하여 첫 작품에서 미미했던 '욱이'를 기독교인으로 설정하여 모자간의 갈등관계를 우리 민족의 정신적인 지주인 샤머니즘과 대결시킴으로써 종교에 대한 그의 관심을 심화시켰다.
1937년 서정주, 김달진 등과 시인부락(詩人部落) 동인 활동을 하지만, 서울 생활에 실의하여 다솔사 소속의 광명학원에서 교편을 잡는다. 1942년 소설〈소녀〉,〈하현〉등이 일제 총독부의 검열로 전문이 삭제되고 광명학원이 폐쇄되는데 이어, 백씨 범부 선생이 구속되자 그는 절망과 분노를 안은 채 절필을 선언한다.
해방 이후 1940년대 후반은 좌·우익의 분열 대립한 시기로 이때부터 두 파 문인들의 논쟁이 시작되었다. 이때 김동리는 '계급주의 민족문학론'에 대항해 '인간주의 민족문학론'을 제창하며 '본격문학'이란 말을 처음 사용했다.〈문학하는 것에 대한 사고〉《백민》(1948. 3)에는 당시 동리의 문학관이 자세히 나와 있다. 이 글에서 문학하는 것은 '구경적 생의 형식'이라 했으며 '구경적 삶'이란 작가가 지닌 무한한 자아추구이며 또한 공통된 운명을 발견하는 것이고, 새로운 신을 찾고 구하는 것이며 문학을 하기 위해 모든 가능성과 자율성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또한 이 순수논쟁은 그의 독특한 휴머니즘, 즉 신인간주의를 표방하기도 한다.
1955년《사반의 십자가》를 《현대문학》에 연재한다.《사반의 십자가》는 '사반'이라는 가공적 인물을 통해 기독교적 서양 제국 문화의 한계와 문제점을 제시함으로써 인간을 위한 신의 존재를 모색해 보는 작품이다. 인간 중심주의, 현실주의자 사반과 신 중심주의며 내세주의자 예수와의 가치관의 대립은 화합할 수 없는 서양의 정신에서 동양으로 눈을 돌리게 했다.
1978년 장편소설 《을화(乙火)》 발표. 김동리는 "〈을화〉를 통하여 먼저〈무녀도〉에서 줄거리의 일부에다 분위기만 붙여두었던 이 샤머니즘의 세계를 문학적으로 형상화시키는 일과 아울러 샤머니즘에서 이승과 저승에 관련되는 새로운 문제점을 한국 문학과 나아가서는 세계문화에 제의해보고자 하는 것이다."고 스스로 해설을 하기도 했다.
김동리는 절벽에 부딪친 신과 인간의 문제를 새로운 성격의 신과 새로운 형의 인간을 창조함으로써 해결하려고 했는데 그것이 샤머니즘적 인간형이라 한다. 이런 샤머니즘 인간형은 '신성을 지닌 인간'으로 "을화"라는 무당을 통해 신의 존재를 인정하고 신과 인간과의 역할을 해주는 것이며 이를 통해 한국인의 신인간 사상을 나타내고자 했던 것이다.

▣ 내용을 간단히 말하자면                              
사반은 요한이 헤롯에게 잡혀 투옥되었다는 말을 듣고 이번 기회에 요한이 정말 선지자인지, 메시아인지 알아보고자 도마를 보냈다. 사반은 혈맹단의 통솔자로 메시아가 올 날을 기다리며 그날 메시아를 도와 봉기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도마는 요한의 소식과 함께 나바티야의 왕 아레타스의 밀사 아굴라와 하닷의 딸 실바아와 함께 돌아온다. 하닷은 혈맹단의 단사(團師)로서 사반의 정신적 스승의 역할을 하며 별을 보고 예언을 하는 술사(術士)이다.
사반은 메시아에 대한 새로운 신념으로, 자기들은 비밀적인 조직과 훈련을 쌓아 두었다가 메시아의 날에 분연히 일어날 것을 주장했다. 이러한 전략으로 그는 단원들의 신임과 지지를 받았다. 이러한 구상은 하닷의 예언 때문이었다. 즉 사반은 하닷이 만날 것이라 예언한 큰 사람을 메시아로 해석했던 것이다. 도마는 사반에게 세례 요한이 자기 스스로 메시아가 아니며 단지 자기 뒤에 올 그를 위해 사람들의 귀를 열어두는 것뿐이며, 그가 자기가 누구인지 말할 것이라고 했다는 말을 한다. 도마는 이어 요한은 투옥 이후에도 메시아로서의 증거를 보이지 못하고 있으며 투옥되기 전 요한이 나사렛에서 목공 노릇을 하던 예수라는 자를 보고 하나님의 아들이라 했다는 말을 전한다. 그리고 예수라는 자가 가나라는 마을의 혼인 잔칫집에서 냉수를 포도주로 바꾸는 기적을 보였다고 알리면서 혹시 메시아일지도 모른다고 덧붙였다. 사반은 그 말을 듣고 확신하며 예수를 만나기로 결정하는데 ……

단체회원가입안내
독서퀴즈이벤트
나도작가 신청안내
무료체험
1분독서영상
한국독서능력검정 신청
모바일 북다이제스트 이용안내

인재채용 | 광고안내 | 구독신청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용약관 | 서비스문의 이용문의:mkmaster@mk.co.kr
회원문의:usrmaster@mk.co.kr
매경닷컴은 회원의 허락없이 개인정보를 수집, 공개, 유출을 하지 않으며 회원정보의 보호를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