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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로지기 틸
 저자 : 게하르트 하우프트만
 출판사 : -
 출판년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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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도 사랑도 쉬운 것은 없다

하우프트만에게는 형이 둘 있었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그 두 형들은 모두 테네만 가의 딸들과 약혼을 했다. 이에 합세하여 하우프트만도 같은 집안의 다섯째 딸 마리에 테네만과 약혼을 하고 세 형제가 나란히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 후 베를린 근교 에르크너라는 아름다운 곳에서 지내면서 이곳 풍경을 배경으로 한 작품들을 발표했다. 어느 결혼생활에서든 갈등의 시기가 있듯이 하우프트만도 부인과의 사이가 조금씩 벌어지기 시작했다.
하우프트만이 배우인 마가레테를 사랑하게 되고 그 사실을 아내가 알게 되면서 둘의 갈등은 심각해졌다. 그의 아내는 이런 상황을 힘들어하다가 혼자 미국에 갔지만 몇 개월 후 뒤따라온 하우프트만을 따라 다시 돌아왔다. 그러나 한번 벌어진 틈을 다시 메우기는 힘들었다. 이혼이 합의에 이르기 전까지 정신적으로 힘든 시기를 겪었다. 건강도 좋지 않았다. 처음에는 아내로부터 이혼 제안을 거절당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혼자서 베를린으로 갔고, 거기서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다. 1904년 하우프트만과 아내 마리에는 결국 합의 이혼을 했다. 그리고 그는 성격이 밝고 활동적인 여배우 마가레트와 재혼하였다. 재혼과 더불어 생활이 안정되었고, 그는 다시 작가로서의 역량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었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흔히 독일의 대표적인 자연주의 작가로 소개되는 하우프트만은 시와 소설, 희곡과 서사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을 남겼다. 독일 슐레지엔 지방의 잘츠부룬에서 태어나서 실업학교에 들어갔지만 그곳에서 문학과 미술 외에는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예술학교에 들어가서 조각을 배우기도 하고 예나 대학과 베를린 대학에서 자연과학과 철학 등을 공부했다. 한때는 이태리 여행을 하고 나서 미켈란젤로의 작품을 보고 감동을 받아 조각에 몰두하기도 했다. 하지만 문학에 쏠리는 열정과 관심을 억제할 수 없었다. 결혼을 한 후에도 미술을 할 것인지, 문학을 할 것인지 갈등했지만 결과적으로 그가 남긴 수많은 문학 작품은 그가 어떤 선택을 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하우프트만의 초기 작품 중 가장 획기적이었던 것은 《해뜨기 전 Vor Sonnenaufgang》(1889)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을 통해 그는 유명해지기 시작했고, 문학적으로 의미 있는 평가를 받게 됐다. 그런데 이 5막으로 된 비극이 독일에서 공연됐을 당시 관객들의 반응은 두 가지 상반되는 평가로 나뉘었다. 새로운 시도에 대한 열띤 지지의 목소리와 이를 비난하는 야유와 휘파람으로 공연장이 야단법석이었다.
어쨌든 그는 이 작품으로 자연주의를 이끄는 작가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자연주의 작품은 관찰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고 정신적이거나 미적인 이상을 배격하여 적나라한 인간의 모습과 사회의 부패상을 냉철하게 표현한다. 하우프트만의 작품들은 이런 경향과 더불어 따뜻한 인간미와 낭만적인 요소를 두루 갖춘 미덕을 보인다는 점에서 더욱 가치가 높다.
또 한번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작품은《직조공 Die Weber》(1892)이었다. 하우프트만의 할아버지가 직조공이었기 때문이었는지 그는 1844년에 있었던 직조공들의 폭동 사건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그리고 그들의 비참한 생활에 대해 분노와 동정을 함께 느꼈다. 그는 이 작품을 위해 많은 자료들을 자세히 조사했다. 그러나 막상 이 작품이 무대에 올려지자 당국의 제재를 받아 1년 이상 상연금지 조치를 당했다. 그러나 하우프트만의 의도를 객관적으로 들여다보면 그의 작품이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레싱이 말하고자 한 것은 특수한 환경 속에 있는 한 인간의 삶이었다. 이 작품은 1894년 다시 상연이 재개되었고, 그후 3년 동안 계속되면서 관객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았다.

끊임없는 열정

나이가 들어가고 인생의 여러 가지 경험을 하면서 하우프트만의 작품은 자연주의에 얽매이지 않고 낭만주의와 이상주의적 경향까지 포괄하는 경향을 선보인다.《한넬레의 승천 Hanneles Himmelfahrt》(1893) 《침종 Die versunkene Glocke》(1896)등의 희곡에서 그런 모습을 찾을 수 있다. 또한 하우프트만은 장편소설《아트란티스 Atlantis》(1912), 중편소설《조아나의 이단자 Der Kezter von Soana》(1918) 등을 통해 소설 분야에서도 굳건한 자리를 확립했다.
하우푸트만은 노령으로 쇠약해진 몸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을 때까지 자신의 정열을 문학에 바쳤다. 그리하여 최후의 작품인 《이피게니아》에 이르기까지 문학에 대한 열정은 계속되었다. 이렇게 문학과 함께 했던 그의 삶은 국민실러상, 노벨문학상(1912) 등의 수상으로 객관적인 평가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레싱이 후세들에게 보다 더 마음 깊이 다가오는 것은 독일의 자연주의를 독자적인 방법으로 선도해가면서 남긴 많은 작품들과 문학을 향한 그의 끊임없는 열정, 그리고 사랑일 것이다.


▣ 내용을 간단히 말하자면                              

철로지기가 직업인 틸, 그는 그저 평범하고 선량하며 직무에 충실한 소시민이었다. 바로 그 사건이 생기기 전까지는. 전처가 죽은 후 맞이한 두 번째 부인은 그가 원했던 대로 씩씩한 일꾼이자 가정주부였다. 하지만 그녀는 사납고 거칠며 상스러운 또 다른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틸은 그런 아내에게 종속되어갔다. 그는 거의 모든 것을 포기한 사람처럼 무기력하게 자신의 삶을 견디고 있었다. 하지만 적어도 아내가 전처의 아들인 토비아스를 학대하는 것을 묵인해야 하는 것만큼은 그에게 큰 고통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아내의 무관심과 부주의 때문에 토비아스가 사고를 당했다. 그가 매일 지키고 있던 바로 그 선로 위에 떨어져 기차와 충돌한 것이다. 토비아스는 죽고 틸은 아내에 대해 억제할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 그는 어떤 형태로든 '응징의 벌'이 내려져야 함을 깨달았다. 그는 마침내 직접 그 일을 실행하려 하고, 또 다른 비극이 시작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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