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1 경제포털
뉴스  ·  증권  ·  부동산  ·  금융  ·  자동차  ·  창업  ·  교육  ·  세무  ·  헬스  ·  BOOK  ·  블로그   
등록예정 2024년 2월 등록예정 도서요약
북다이제스트
        
아이디/패스워드 찾기
회원가입
도서요약전체

미래를 위한준비
도서상세정보
페리키요 사르니엔토
 저자 : 호세 호아킨 페르난데스 데 리사르디
 출판사 : -
 출판년도 :


a4용지 10매내외 핵심요약전문
워드파일 보기및받기 한글파일 보기및 받기 pdf파일 보기및 받기
관련서적이 없습니다.

 
식민 사회의 위선에 염증을 느낀 유머리스트


라틴아메리카 최초의 소설인 《페리키요 사르니엔토》를 쓴 호세 호아킨 페르난데스 데 리사르디는 자신의 작품에서 이런 질문을 던진다. "점잖고 근사하며 돈이 많은 사람이라면, 흔히 현자나 귀족 혹은 정직한 사람으로 평가받지만, 실제로 이렇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다. 그러나 형편없는 누더기를 걸치고 다니면, 가난하고 천하며 무식하고 악한 사람으로 평가한다. 비록 성품이 고귀하며 지혜롭고 자비로워 이런 옷차림을 할지라도 그런 평가를 받게 마련이다. 사람들이 겉모습이나 돈으로 판단하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겉모습이 훌륭하다고 그 사람이 훌륭한 것은 아니다. 페르난데스 데 리사르디는 식민 사회의 겉모습에 숨어 있는 위선을 유머를 통해 폭로한다. 즉, 그가 살았던 식민지 사회를 지배하고 통치하는 봉건 귀족이 사실은 무위도식하며 지혜라고는 전혀 없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들춰낸다. 그리고 천한 사람들 역시 그런 귀족들의 태도를 모방하려고 한다면서 식민 사회를 강도 높게 비판한다. 이런 식으로 그는 식민지에서 벗어난 독립국가는 허위와 가식이 사라진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피카레스크 양식과 유머를 빌어 당시의 사회상을 신랄하게 비판한 페르난데스 데 리사르디. 실제로 그는 평생을 식민 사회의 반항아로 인생을 살았으며, 그런 세계관은 결국 그의 조국 멕시코가 스페인의 식민 통치에서 벗어나는 원동력이 됐다.

문학의 자양분이 된 저널리즘: 라틴아메리카 최초 소설의 원동력

라틴아메리카 최초의 소설이라고 평가받는 《페리키요 사르니엔토》의 작가 호세 호아킨 페르난데스 데 리사르디는 1776년 11월 15일 멕시코시티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난 지 얼마 안되어 가족은 테포소틀란이란 마을로 이사를 가고, 의사였던 그의 아버지는 그곳에서 계약직으로 일한다. 그가 글을 읽고 쓸 수 있게 되자, 아버지는 페르난데스 디 리사르디를 마누엘 엔리케스 선생님의 집으로 보내 교육을 받도록 한다. 그는 성직자가 되겠다는 마음으로 우선 고등학교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1792년 고등학교를 마치자 이듬해 신학을 공부한다. 그러나 가정 경제 사정으로 인해 이내 그 학업을 포기하고 만다.
1805년 마리아 돌로레스 오렌다인과 결혼하고, 그 즈음에 처음으로 글을 출판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독립 이전의 관습에 따라 그 글들은 익명으로 출간된다. 1808년에는 《우리의 카톨릭 군주 페르난도 셉티모를 기리는 폴란드 여인》을 쓰는데, 이때부터 독립군에 동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로 인해 그는 후에 세 번이나 감옥 생활을 하게 된다.
1811년에 그는 첫번째 감옥 생활을 맛본다. 타스코에서 대위로 근무하던 중 모렐로스 신부가 이끄는 독립군에게 투항했다는 이유로 수감되는 것이다. 그는 재판을 받으면서 자신의 뜻과는 달리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진술하고, 그 진술이 인정되어 석방된다. 1812년 그는 신문 《멕시코 사상가》를 창간한다. 후에 '멕시코 사상가'라는 이름은 페르난데스 데 리사르디의 가명으로 사용된다. 그해 식민지에서의 출판의 자유를 허용하는 '카디스 헌법'이 발표되자, 그는 식민체제의 모순을 우아한 필체로 풍자한다. 그의 글 중에는 독립군과 관련 있는 성직자의 특권을 박탈하는 포고령을 철회하라는 내용이 있었다. 이 글을 읽은 부왕(副王, 스페인에 왕이 있고, 그 식민지에는 부왕제도가 있었다. 부왕이 있는 나라를 부왕국이라고 불렀는데, 지금의 멕시코, 콜롬비아, 페루, 아르헨티나에 부왕국이 설치되어 있다) 프란시스코 하비에르 베네가스는 즉시 그를 구속하라고 지시했고, 식민정부를 비판하는 것은 독립의 명분을 외치는 것과 같다면서 다시 출판을 통제하기 시작한다. 1813년, 7개월의 수감생활을 마치고 자유의 몸이 되자, 페르난데스 데 리사르디는 다시 글을 쓴다. 이 당시는 주로 멕시코를 피폐하게 만든 전염병에 관한 기사가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이 해에 《페리키요 사르니엔토》를 쓰기 시작하고, 이 작품은 1816년에 출판된다. 이 소설의 1부는 아무런 어려움 없이 출간됐다. 1819년에 발표된 《'페리키요 사르니엔토'를 찬양함》에서도 그것을 엿볼 수 있다. "서적상들은 이 책으로 돈을 벌었습니다. 이 책이 좋은 평가를 받자 더욱 많이 팔렸습니다. 이 책은 스페인, 아바나, 포르투갈에서도 출판됐으며, 영국인들은 영어로 번역해서 출간했습니다."
《페리키요 사르니엔토》 2부는 1832년이 되어서야 빛을 본다. 이 작품은 1816년에 이미 완성되어 있었지만, 당국의 출판 허락을 받을 수가 없었다. 당시 검열관이었던 마르티네스는 보고서에 이렇게 적고 있다. "제1장에 밑줄 친 부분은 모두 흑인에 관해 말하고 있다. 내가 보기에는 너무 반복이 심하고 부적절하며, 너무 그런 상황을 과대평가한 것이며, 왕이 허락한 무역에 반대되는 입장을 표명한다. 마찬가지로 제3장에 밑줄 친 부분도 삭제되어야 마땅하고......" 1816년 10월 19일 그는 "이 작품의 출판은 필요하지 않음. 원본을 보관하고, 작가에게는 출판의 여지가 없음을 통보할 것"이라고 최종 판단을 내린다. 이런 역경에도 그는 《슬픈 밤과 기쁜 날》(1818), 《키호티타와 조카》(1819)를 출판한다. 1821년에는 《차모로와 도미니킨의 대화》로 인해 며칠간 다시 감옥 생활을 맛본다. 그리고 1822년에는 《프리메이슨을 변호하며》라는 흥미로운 책자를 출판한다. 그러자 교회는 그를 파문하고, 그는 즉시 자기 말을 취소한다. 그러자 교회는 다음해 파문을 취소한다. 페르난데스 데 리사르디는 자신의 가장 유명한 에세이 〈유언과 이별〉이 출판되는 것을 보지 못한 채, 1827년 6월 21일 폐결핵에 걸려 멕시코시티에서 세상을 떠난다.
▣ 내용을 간단히 말하자면                              

주인공 페리키요 사르니엔토('옴병 걸린 앵무새')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옴병을 앓은 적이 있는 사람이다. 중류층의 외아들로 태어난 덕택에 그는 어머니의 온갖 귀여움을 받으며 버릇없이 자란다. 아버지는 그를 제대로 교육시키려고 했지만, 어머니의 눈물과 투정 앞에서 굴복하고 만다. 학교에 들어가서도 공부를 하기보다는 요령과 술수를 터득하는 데 전념하고, 못된 학생들과 어울려 순진한 애들을 골려주면서 학교 생활을 한다. 고등학교를 마치자 아버지는 페리키요가 직장을 얻길 바라지만, 어머니는 자신의 허영심을 만족시키고 집안 체면을 위해서 대학에 진학시킨다.
대학에서도 그는 공부를 하지 않고 거들먹거리면서 소일하거나 여자 애들과 놀면서 보낸다. 대학을 졸업하자, 페리키요는 수도사가 되기로 마음먹는다. 수도사가 되면 일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생각과는 달리 일만 하는 형편이 된다. 그러던 중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그 핑계로 그는 수도원을 빠져나와 예전의 방탕한 생활로 돌아간다. 그러나 아버지가 남긴 재산이 모두 날아가면서 세상의 온갖 문제들과 마주치게 되는데......

단체회원가입안내
독서퀴즈이벤트
나도작가 신청안내
무료체험
1분독서영상
한국독서능력검정 신청
모바일 북다이제스트 이용안내

인재채용 | 광고안내 | 구독신청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용약관 | 서비스문의 이용문의:mkmaster@mk.co.kr
회원문의:usrmaster@mk.co.kr
매경닷컴은 회원의 허락없이 개인정보를 수집, 공개, 유출을 하지 않으며 회원정보의 보호를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