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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버지 여운형
저자 : 여연구
출판사 : 김영사
출판년도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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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버지 여운형
저자 : 여연구 지음/신준영 엮음 / 출판사 : 김영사
나를 깨워라
저자 : 내일을 여는 역사 엮음 / 출판사 : 서해문집
백범 김구 평전
저자 : 김삼웅 지음 / 출판사 : 시대의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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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연구 지음/신준영 엮음 김영사/2001년 11월/334쪽/10,900원
▣ 저 자 여연구 몽양의 둘째딸로 1991년 11월 서울에서 열린 '아시아의 평화와 여성의 역할'에 관한 토론회에 참가해 남쪽에도 잘 알려진 인물이다. 1927년 중국 상해에서 태어나 배화여고를 졸업하고 이화여전을 다니다가 1946년 여동생 원구와 함께 월북했다. 1947년 모스크바에 유학했으며, 1979년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조국전선) 서기국 부국장으로 전격 발탁됐다. 이후 조국전선 서기국장(1981년), 범민련 북측본부 부의장(1993년) 등 주로 대남분야에서 활동했다. 특히 1990년 5월부터는 남한의 국회부의장에 해당하는 최고인민회의 부의장직을 맡았다. 1996년 9월 28일 친구 문병을 다녀오다 과속으로 달리는 트럭에 치이는 불의의 사고로 사망했다.
▣ 엮은이 신준영 1963년 생으로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10년 간 「월간 말」 기자로 활동했으며, 2001년 '남북이 함께 만드는' 언론매체 「월간 민족21」을 창간해 편집장을 맡고 있다.
▣ Short Summary 한국 현대사의 우여곡절을 겪은 정치인 가운데 몽양(夢陽) 여운형(呂運亨, 1886∼1947)만큼 찬반과 훼예(毁譽)가 양극을 달리는 인물은 없다. 그에 대한 논란은 주로 해방 후 그의 행적과 관련되어 증폭된 것이었다. 좌파는 혁명 동지로 출발해서 회색적 기회주의자, 친미 허수아비에 이르기까지 극단을 오르내렸고, 미군정 역시 그에게 온건 민주주의 인사로부터 친공·친북주의자, 기회주의적 공산주의자, 친일 브로커에 이르기까지 양립할 수 없는 인물평을 내렸다. 해방 후 여운형은 양 극단으로부터 논란과 비난의 표적이 되었고, 역사상 가장 많은 테러의 표적이 된 채 마침내 생을 마감했다. 그는 철저한 반일주의자인 동시에 '좌우합작·남북합작'을 몸으로 실천한 정치 지도자였다. "바르게 보고 힘써 전진하라(正觀邁進, 1947년 신년 휘호)"는 휘호처럼 몽양은 정세를 꿰뚫어보고 올곧게 민족의 이익에 합당한 민족의 진로를 찾아 일생을 헌신했다.
몽양 여운형 선생의 일곱 자녀 중 여연구 전 최고인민회의 부의장이 직접 쓴 『나의 아버지 여운형』은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몽양의 인간적 진면목을 보여주는 역사적 기록인 동시에 파란만장한 20세기 한국 역사를 그대로 보여 주는 실록이기도 하다. 몽양은 격동의 20세기를 함께 살았던 이들과 비교해볼 때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 실천가였다. 특히 뛰어난 국제적 감각과 함께 민족화합의 '중도노선'을 걸었던 몽양의 인생 역정은 21세기 '세계화시대'를 살아가는 오늘날 우리에게 사표가 되기에 충분하다.
▣ 차 례 책을 내면서 '민족화합의 정치가' 몽양 선생의 부활을 기대하며
1. 비껴온 서광 조선 독립의 초지를 품고 백두의 여명 일본 천왕과 담판하다
2. 민족화합의 한길 해방의 아침 진보적 민주주의의 길 영생하는 아버지
부록 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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