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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의 눈으로 서울을 다시보다: 정동ㆍ광화문 편
 저자 : 강동완, 전병길
 출판사 : 너나드리
 출판년도 : 2020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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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의 눈으로 서울을 다시보다: 정동ㆍ광화문 편
저자 : 강동완, 전병길 / 출판사 : 너나드리
교보문고  BCMall     

 

강동완, 전병길 지음
너나드리 / 2020년 4월 / 176쪽 / 21,000원


▣ 저자

강동완 - 통일 조국의 평양특별시장을 꿈꾼다. 통일 운동과 연구 성과로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현재 북한 이탈 주민과 함께 통일을 준비하며 일상생활에서 통일을 찾는 〈당신이 통일입니다〉를 진행 중이다. 채널 A 〈이제 만나러 갑니다(이만갑)〉, TV조선 〈모란봉클럽〉, KBS 〈남북의 창〉, MBC 〈통일전망대〉등 다양한 통일 북한 관련 방송에 출연 중이다. 저서로는 『러시아에서 분단을 만났습니다: ‘충성의 외화벌이’라 불리는 북한노동자』, 『그들만의 평양: 인민의 낙원에는 인민이 없다』, 『사람과 사람: 김정은 시대 북조선 인민을 만나다』, 『한류, 북한을 흔들다』 등이 있다.

전병길 - 마케팅과 사회 혁신, 통일 문제를 넘나드는 다양한 활동을 하며 그동안 기업, 공공 단체, 대학 등에서 강연과 컨설팅을 해왔다. 현재 재단 법인 통일과 나눔 사무국장으로 일하며, 연세대학교 경영학 박사 과정에서 기업과 사회 그리고 미래 전략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다. 저서로는 『새로운 자본주의에 도전하라』, 『코즈마케팅』, 『통일한국 브랜딩』, 『사회혁신 비즈니스』, 『브랜드 임팩트』, 『공동관람구역: 영화로 통일을 읽다』, 『대한민국 활명수에 살다』 등이 있다.

Short Summary

대한민국의 중심 거리인 세종대로 사거리. 사람들은 이곳에서 정치, 사회, 종교, 문화 등 다양한 이슈에 대해 각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어찌 보면 하나의 집회나 행사지만 그것은 한국 사회의 흐름이고 훗날 크고 작은 역사의 한 페이지로 기록될 장면들이다. 세종대로 사거리는 한반도 도로의 원표이기도 하다. 이 도로를 기점으로 한반도의 모든 도로가 이어진다. 분단된 한반도의 통일은 곧 남북한 사이의 끊어진 길을 잇고 해양과 대륙을 연결하며 새로운 길을 만드는 것이다.

통일이라는 미래의 길을 가기에 앞서 먼저 우리의 지난 삶을 돌아보는 역사의 길을 걸어 보는 건 어떨까. 세종대로를 기점으로 하는 정동과 광화문 일대는 한국 근현대사를 돌아볼 수 있는 최적의 공간이다. 정동과 광화문은 19세기 후반 서구 열강이 조선에 들어오면서 20세기 국권 상실과 독립운동, 분단과 전쟁, 산업화와 민주화 현장 한가운데에 있었다. 그리고 통일에 대한 희망과 꿈을 고이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서울 정동과 광화문 일대의 근현대 역사의 현장을 잘 이해하면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가 보인다.

서울 정동의 역사는 1400년대 중반 성종 임금의 형인 월산대군이 작은 궁(현재의 덕수궁)을 지으면서 시작되었다. 정동은 17세기에 들어서면서 부각되었다. 임진왜란 중 경복궁과 창덕궁이 화재로 소실되면서 선조가 덕수궁을 왕실의 거처이자 업무를 보는 곳으로 삼았다. 선조가 사망한 뒤, 광해군이 경복궁을 재건하자 덕수궁은 쇠퇴하다가 구한말에 이르러 다시 역사의 중심지로 부상하게 된다.

19세기 후반 조선은 외국과 교류하지 않은 쇄국 정책을 펴고 있었다. 1876년 조선은 일본과 강화도 조약을 체결했다. 일본이 첫 외교관을 파견했고 조선의 쇄국 정책은 막을 내렸다. 1880년 이전까지만 해도 서울 도성 4대문 안은 외국인 거주가 허용되지 않았다. 조선에 파견된 첫 외국 공관인 일본 공사관도 남대문이 내려다보이는 성 밖 남산 자락에 자리 잡았다.

4대문 안으로 들어온 최초의 외국 공관은 미국 공사관이다. 1882년 조선과 미국이 수교를 하면서 미국은 정동에 공사관(지금의 주한 미국 대사관저)을 열었다. 이후 외국의 공사관들이 덕수궁 근처 정동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외국 공관들이 들어오면서 조선에 들어온 개신교 선교사들도 정동으로 모여들었다. 정동 거리에는 1886년 감리교 선교사들이 왕실의 후원 아래 배재학당을 세웠다. 배재학당은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이 된 이승만을 비롯하여 많은 인재를 길러 냈다. 감리교 선교사들은 같은 해에 정동 거리에 이화학당을 세웠다. 또한 한국 개신교 선교의 양대 축이었던 아펜젤러와 언더우드 선교사는 불과 100여 미터 거리를 두고 ‘정동교회’와 ‘새문안교회’를 세웠다. 이 밖에도 정동 거리에는 중국인 야채상과 외국인을 위한 양복점, 러시아 대사의 처형인 손탁 부인이 운영하는 게스트 하우스가 있었으며 한국 최초의 브랜드인 ‘부채표 활명수’도 1897년 정동 인근에서 태어났다.

한마디로 정동은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 한국 근대사의 희망과 절망이 압축된 공간이다. 청일 전쟁과 을미사변을 비롯한 일제의 무자비한 무력시위가 이어지는 가운데 아관파천이라는 비극적인 장면이 이곳에서 연출되었다. 일제가 이른바 을사늑약 체결을 겁박하고 나선 현장 또한 정동이었다.

하지만 절망 속에서 희망의 싹이 피어났다. 정동을 중심으로 서양 문물이 전파되었고 신식 교육이 시작되었으며 조선 민족을 깨우치고자 했던 선교사들의 활동이 이루어졌다. 또한 진정한 대한의 독립을 꿈꾸는 이들도 정동으로 모여들었다. 그리고 정동은 사회주의 혁명을 꿈꾸는 이들이 배회하기도 했고 냉엄한 국제 질서 속에서 극심한 이념 갈등이 벌어지기도 했다. 또한 정동은 분단과 전쟁의 아픔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으며 민주화에 대한 열기가 뿜어져 나오는 공간이기도 했다. 통일 노래인 <우리의 소원>이 처음 불린 곳도 바로 정동이다.

▣ 차례

프롤로그
서울 정동ㆍ광화문의 통일map
왜 정동인가: 정동길이 품은 역사

01 도로 원표 공원 / 02 민족일보 터 / 03 조선일보 편집국(옛 서울중앙방송국 자리)
04 서울시의회 청사(옛 국회의사당) / 05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 06 덕수궁 석조전
07 하비브하우스(현 미국 대사관저) / 08 정동교회(현 정동제일교회) / 09 배재학당 역사 박물관
10 동화약품 (옛 동화약방) / 11 중명전 / 12 이화박물관(옛 손탁호텔 터) / 13 옛 러시아 공사관
14 경교장 / 15 구세군 - 정동 1928 아트센터 / 16 주시경 마당(한글가온길)
17 동광, 새벽 그리고 광장(현 포시즌호텔 부근) / 18 통일부(현 서울정부청사)
19 옛 중앙청(현 경복궁 흥례문 자리) / 20 대한민국역사박물관 / 21 아서원(현 롯데호텔 부근)
22 현봉학 동상(옛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자리) / 23 통일로 1(옛 서울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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