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택 지음/마음산책/191쪽/8,800원)

민세야, 잘 지내느냐. 태풍이 한 차례 지나가고, 오늘은 비가 간간이 뿌리는구나. 3주째 너를 보지 못해 엄마도 나도 네가 무척 보고 싶구나. 내가 엄마에게 "민세가 은근히 보고 싶다∼" 그러면, 엄마는 "뭐가 보고 싶어, 그 나쁜 놈이" 하면서도 네가 무척이나 보고 싶은 눈치다. 엄마는 네 생각을 하며 혼자 눈물을 흘릴 때가 있단다. 엄마는 눈물이 참 많은 사람이다. 연속극을 볼 때도 맨날 울잖니. 눈물이 많은 사람이 착한 사람이라지 아마?

요즘 민해는 공부를 너무 열심히 해서 엄마와 내가 힘이 많이 든다. 시험기간이라 새벽 2시에 민해를 데리러 간단다. 사회 시험을 못 보았다고 엄마 앞에서 디굴디굴 뒹굴고, 다리를 뻗고 우는(그러나 나는 유감스럽게도 그 꼴을 보지 못했다) 민해를 보며 우습기도 하고, 불쌍하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하고, 아무튼 아버지 마음이 여간 복잡한 게 아니다.

어제는 엄마와 모악산에 갔다. 산이 참 푸르더구나. 비가 온 뒤여서 더 그렇지. 엄마는 참 유쾌한 사람이다. 어디를 가든지 명랑하고 농담 잘하고, 그러나 사는 걸 보면 늘 반듯하고 예의바르고 할 일과 하지 않아야 일에 대한 판단이 정확하단다. 아빠는 이 세상에서 할머니와 네 엄마를 가장 믿는다. 엄마는 할머니에게서 삶의 태도와 자세를 배웠단다. 참 고생이 많았지.

엄마가 우리 집에 처음 왔을 때는 우리 집이 너무 가난했단다. 엄마는 뒷집에서 물을 길어다가 밥을 했고, 나무로 불을 땠지. 불을 잘 땔 줄 몰라 부엌이 온통 연기로 가득 차곤 했는데, 그 연기 속에서 콜록거리며 밖으로 나오던 모습이 지금도 선하다. 고생을 많이 했지만 엄마는 늘 밝고 명랑하게 살았다. 동네 사람들이 모두 좋아했지. 여름이면 엄마는 늘 냉장고에 시원한 물을 병마다 가득 채워 두었단다. 일을 마치고 우리 집 앞을 지나는 동네 어른들에게 드리기 위해서였지.

민세야, 그런 엄마가 제일 믿고 있는 사람이 바로 너라는 것을 너도 알 것이다. 공부를 잘하고 못하고, 점수를 많이 받고 적게 받고를 떠나서 민세를 제일 믿고 사랑하는 사람은 나와 네 엄마다. 민세 뒤에는 세상에서 민세를 제일 사랑하는 두 사람이 있음을 늘 기억하길 바란다.

또 비가 내리는구나. 비가 내리는 모습을 오래 바라보다가 네 생각이 나서 이렇게 편지를 쓴다. 때로는 외롭고 쓸쓸하게 방황하고 그러면서 이 세상을 향한 끝없는 사랑이 네 마음속에 자리잡아가기를 아버지는 바란다. 푸른 네 청춘이 아름답길 바란다. 사람의 마음도, 사람의 육체도 쓰기 나름이다. 생각을 넓히길 바란다.

아빠는 요즘 글이 잘 써지질 않는구나. 게을러서 그럴 것이다.

가는비가 소낙비로 변했다. 강 건너 마을이 빗속에 잠잠하다. 고개를 돌리면 민세가 자란 우리 마을이 푸름 속에 있다.

민세야, 오늘은 이만 줄이마. 늘 새롭거라.

- 2002년 7월 8일,
비오는 날 민세를 좋아하는 아버지가



* 이 글의 주인공 김용택은 시집 <그 여자네 집>을 쓴 시인으로 스물한 살에 모교이기도 한 덕치초등학교 선생님이 되어 지금까지 35년 동안 고향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이 글은 가족과 멀리 떨어져 학교에 다니는 아들을 염려한 걱정을 담은 편지다. 책을 읽을 시간이 넉넉하지 않은 아들에게 한 편의 에세이를 보내듯 쓴 편지이기도 하다.

-『아들 마음 아버지 마음』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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