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트렌드, 게리 스몰리 지음/프리셉트/293쪽/11,000원)

많은 사람들이 병상에서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으면 마음을 바꾸고 자녀들을 불러 축복한다. 내가 아버지에 대해 마음속으로 그리던 것도 바로 그런 종류의 행복한 결말이었다. 언젠가 아버지도 나와 형에게 그 축복을 되돌려 주실 것이라고 확실히 믿었기 때문이었다. 부자간에 쌓였던 상처와 외로움을 토해내고 사랑이 담긴 말로 고통스러운 기억의 고리들을 완전히 끊어 버리게 될 것을 고대하고 있었다.

"존, 아버지 상태가 몹시 좋지 않으셔. 정말로 심각해. 지금 바로 내려왔으면 좋겠어." 그 날 아침 걸려온 형의 전화는 내 얼굴에 찬물을 끼얹는 것 같았다. 나는 지름길로 차를 몰아 몇 시간을 달려 아버지가 계신 병원에 도착했다. 병실 안으로 들어가기 전, 잠시 차 안에 앉아서 마음을 추스르던 당시의 감정을 뭐라 설명할까. 슬픔, 소망, 분노, 그리고 동정심, 이 모든 감정이 서로 뒤범벅이 되어 나타났다. 나는 무언가 좋은 일이 일어날 것으로 믿었다. 아니, 분명히 일어나야만 했다.

아버지는 숨을 쉬기 위해 싸우고 있었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완전히 망가진 폐 속에 공기를 채워 넣으려고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 아버지는 출혈성 심장병에다 지나친 흡연으로 인한 폐암이 겹쳐서 목숨을 잃어 가고 있었다.

지난 세월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부모님은 쌍둥이로 태어난 형과 내가 생후 3개월이 되었을 때 헤어졌다. 아버지는 언제나 우리와 몇 마일 떨어진 가까운 곳에서 살았지만 우리가 전화를 해도 전혀 반응이 없었다. 그러다 우리가 십대가 된 어느 날, 우리가 출전한 축구시합을 보러 오겠다는 연락이 왔다. 그 날 얼마나 힘들게 그 시합을 치렀는지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아버지가 미친 듯이 환호하면서 스탠드 어딘가에 앉아 있을 것이라 믿고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일이 생겨 경기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세월이 흐른 지금도 내 자식들의 이름 하나 기억하지 못하는 아버지를 보면서 나는 다시 실망하기보다는 차라리 저 멀리 달아나는 것을 택했다. 아버지를 향한 나의 감정은 완전히 죽어버렸다.

밤이 되면서 나는 오랫동안 소망해 온 그 세월이 내 기대처럼 끝나지 않을 것임을 직감했다. 그 날은 노병에게는 힘든 전투였다. 나는 아버지의 무서운 숨결소리와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에 놀라 잠을 깨곤 했다. 나에게 생명을 주었던 아버지 곁에 앉아 있으면서도 나는 아버지를 알지 못했다. 병상을 지키면서 나는 아버지를 도울, 지금이라도 아버지에게 다가갈 수 있는 어떤 길이 있기를 바랬다.

새벽 4시 40분, 아버지는 발작적인 수면에 들어갔다. 아버지를 살펴 보니, 숨결이 점점 느려지기 시작했다. 뼈만 앙상한 몸이 느슨해지기 시작하더니 드디어 전투가 끝이 났다. 단 몇 분간 고요한 침묵 속에서, 나는 그분의 인생이 스러져 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아버지가 그렇게 가기를 원치 않았다.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남겨 두지 않고 보내기는 싫었다. 단 한번이라도 내 자녀들의 머리에 손을 얹고 축복해주지 않고 보내기는 싫었다. 그러나 그것은 바람을 잡으려고 손을 뻗치는 것과 같았다. 호흡이 멈췄다. 나는 햇살이 가득 찬 방에서 아버지의 어깨에 머리를 파묻고 서러운 통곡을 쏟아 냈다.

퇴역 군인 국립묘지에 가족들이 다 모여서 아버지의 마지막을 추모한 지도 한 달이 지났다. 아버지의 죽음을 되돌아보면서 엄청난 죄의식을 느꼈던 때가 몇 번 있었다. 아버지와 함께 더 많은 시간을 가졌었더라면... 어떻게 아버지에게 그런 험한 말을 할 수 있었을까... 아들 노릇을 좀 더 훌륭하게 했더라면... 죄의식이 쌓이고 또 쌓였다. 내 사랑이 부족해서였나? 왜 나는 아버지의 단단한 껍질을 깨뜨려서 아버지의 내면에 감추어진 그 사랑과 부드러움을 끄집어내지 못했을까? 아버지의 껍질 그 깊숙이에 있는 나를 향한 축복을 확신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나는 아직도 예기치 못한 격한 감정의 순간을 만나게 된다. 평생 동안 그런 일을 겪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번도 가져보지 못했던 부자지간의 관계를 다룬 영화를 볼 때라든가, 모임에서 어떤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도 그런 기분을 맛보게 될 것이다. C. S. 루이스는 <헤아려본 슬픔>에서 "사랑이 초래할 수 있는 고통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곳은 오직 지옥밖에 없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나는 사랑한다는 말을 잃어버린 아픈 마음을 안다. 또한 사랑한다고 말을 해 놓고서 행동으로 그것을 부인해 버린 데서 오는 고통도 알고 있다. 내 가족만큼은 그런 고통을 맛보게 하지 않으리라고 결심한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이다. 물론 가족의 모든 문제를 내가 다 막아줄 수는 없다. 그들이 슬픔을 경험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도 없다. 하지만 매일매일 그들은 나의 축복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라는 사실은 보장할 수 있다.

내가 일을 마치고 돌아올 때, 아내와 아이들은 이미 잠이 들어버린 경우가 많다. 그럴 때면 나는 늘 현관에서 첫 번째 방인, 우리 보배 막내의 방을 살짝 들여다본다. 그 아이의 헝클어진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나의 마음은 따뜻한 사랑으로 충만해지곤 한다. "막내야, 너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단다!" 그 다음에는 우리 맏딸의 방인데, 그 아이는 언제나 담요를 걷어차 버린다. 엄마 아빠가 이불을 다시 덮어 준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이다. "맏이야, 너는 참으로 복된 아이야!" 마지막으로 아내의 잠든 모습을 보면, 내가 얼마나 아내를 사랑하는지를 다시금 떠올리게 된다. "여보, 사랑해!" 이것이 바로 아버지의 죽음이 나에게 남겨준 강하고도 긍정적인 유산이다.

-『축복의 언어』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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