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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년 동안 부부싸움 한번도 안 했다고요?
"아니, 하 선생님 이게 원일입니까? 많이 곪아서 오셨네요. 아픈 지 좀 된 것 같은데요? 얼마나 되셨어요?" "한 달 정도 된 거 같은데요." "그런데 왜 이제 오셨습니까?" "전화했더니 여름방학이라 손님이 많은 것 같기에. 나보다 급한 분 먼저 보시라고 참았지요."

미국의 링컨 대통령은 40대 이후의 얼굴에는 그 사람의 살아온 인생이 쓰여 있다고 했다. 하 선생님의 인자하고 부드러운 미소와 신사적인 모습은 항상 봐도 좋았다. 부인과 자녀들까지도 언제나 인사성 좋고 밝은 가족이었다.

곪은 이 치료를 하다가 나는 하 선생님의 가정도 부부싸움은 하는지, 한다면 어떤 일로 어떻게 싸우는지 궁금해졌다.

"혹시 부부싸움 하신 적 있으세요?" "우리 부부는 34년 동안 부부싸움이라곤 안 해봤어요." 나는 믿을 수 없기에 다시 물었다. "진실을 말씀하세요. 안 싸우고 사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저는 오늘 아침에도 애들 교육문제로 다투고 출근했는데요... 참, 결혼은 어떻게 하셨어요?"

"우리 부부는 같은 교회 전도사님의 소개로 만났죠. 처음 맞선 본 자리에서 내가 한 첫마디가 '막낸데, 어머니 모시겠냐'였고 '네' 하기에 몇 달 후 약혼하고 결혼했지요." "참 재미있네요. 그런데도 약혼시절이나 결혼생활 동안 부부싸움이 없으셨어요?" "네, 집사람은 워낙 좋은 사람이에요."

34년 동안 부부싸움 한 번도 안 했다는 건 동화책 속에서나 가능한 이야기가 아닌가... 나는 장난 반 호기심 반으로 부인과 함께 있는 자리에서 사실인지 확인하고 싶다고 했다. 하 선생님은 자신 있다는 표정으로 승낙하셨다.

일주일 후 병원 근처 한 일식집에서 하 선생님 부부와 점심식사를 하게 되었다. 나는 마치 검사가 피고인을 심문하듯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첫 만남에서 한마디로 오케이 했다는 게 사실인가요? 첫 인상이 어떠셨나요?" "좀 터프하고 무섭기는 했지만, 부모 모시는 분은 마음 나쁜 분이 없다는 걸 알기에, '예' 했습니다."

그러면서 부인은 친정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선 보러 나갈 때 아버님으로부터 남편에 대해서 듣고 나갔습니다. 아버님은 목사님이셨어요. 남에 대한 배려가 많은 분이셨지요. 편지를 보내실 땐 상대에게 우표도 넣어 보내시고, 우체부 아저씨가 오면 뭐라도 대접해서 보내셨어요. 어머님은 시부모님을 모시고 사셨는데 시집갈 때 저를 부르시더니, 시부모님 머리 염색하는 법을 배워가라고 가르치실 정도였어요. 모든 것을 감사하며 살고 가능하면 좋게 생각하고 좋은 것만 이야기하라고 교육하셨지요."

"그래도 살다보면 다툴 일이 생기지 않습니까?" "저희 부부는 슬픔, 고통, 기쁨 등 모든 것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고 안 되는 일이 있을 때면 저희가 무슨 잘못한 게 없었는가, 반성합니다. 남편이 무슨 일로 기분이 안 좋은 것 같으면 온 식구가 조용히 하고 그이가 편히 쉴 수 있게 배려해 드리지요. 온 식구가 옳고 그르냐를 따지지 않고 그대로 순종합니다. 남편이 집에서마저 대접 못 받으면 나가서도 대접 못 받는다고 생각해요. 물론 남편이 믿음직하게 잘 하니까 그런 것들이 가능하겠죠?"

이쯤 듣다 보니 천사가 세상에 내려와서 앞에 앉아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기 시작했다. 하 선생님은 옆에서 이야기를 들으면서 계속 웃고만 있었다.

"그럼 하 선생님은 앞으로도 부부싸움 안 하실 겁니까?"

"앞으로는 장담 못 합니다." 하 선생님은 짓궂은 얼굴로 대답했다.

나는 부인에게도 똑같은 질문을 했다.

"앞으로도 안 할 겁니다." 확신에 찬 말투였다.

마지막으로 시집가는 딸에게 무슨 말을 해주었는지 물었다. 그랬더니 두 분 왈, "시집 부모에게 잘하고 남편에게 잘해라. 보이는 부모에게 못 하는 사람은 하나님께도 못 하는 법이다. 반드시 남편은 더운 밥 해주어라. 집에서 대우받아야 나가서도 대접받는다."

법대를 졸업한 뒤에 국립 합창단원 공개오디션에 뽑히실 정도로 멋쟁이인 가슴 넓은 하 선생님께선, 우리 부부는 길을 가다가도 자주 만난다고 하시면서 천생연분임을 강조하는 것도 잊지 않으셨다.

이제부터는 싸워야 정이 든다는 스스로를 위로하는 말을 다시 정리해야 할 것 같다. 정말 평생을 부부싸움 없이 사신다면 하 선생님 부부는 '부부왕'으로 기네스북에 오르거나 노벨 부부상을 주어야 하지 않을까?

일주일 후에 혼자 오셨을 때 원장실에서 녹차를 마시면서 하 선생님이 하신 말씀은 평생토록 내 귓가에서 떠나지 않고 맴돌게 될 것 같다.

"실은 장모님이 결혼 후 얼마 안 돼서 돌아가셨지요. 문득 집사람도 수명이 짧을까 많이 걱정이 됩디다. 책도 읽어보고 주위 분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내의 스트레스를 덜어주고 마음을 편하게 해주면 병도 덜 생기고 오래 산다고들 하더군요. 그 이후로는 가능한 한 다툴 일을 만들지 않으려 노력했고 조심하며 살았습니다."


- <입안에 행복을 심는 사람들>(박금출 지음, 예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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