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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월의 자장가
우리 나라에서 심장병 수술이 많이 발달하지 않았던 비교적 초기의 일이었습니다. 청색증을 가진 선천성 심기형은 외과 의사들에게 큰 도전이었고, 이를 바라보는 부모들에게도 절망감을 주는 심각한 질환이었습니다. 죽음을 맞을지도 모르는 어려운 심장 수술을 의사로부터 권유받고 많은 부모들은 망설이게 됩니다. 당시만 해도 좀 복잡한 심기형은 수술 자체가 힘든 시절이었습니다.

그 당시의 일입니다. 아주 어린 딸을 데리고 온 한 부모가 있었는데 아버지의 나이가 많아 보였습니다. 지금 그 어머니에 대한 기억은 별로 없는 반면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생생한 이유는 아마도 사건 후의 인상이 매우 강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복합 심기형을 가진 그 여아는 발달이 미숙하여 저체중이었고 청색증이 매우 심했으며, 소위 수술 여건이 썩 좋지 않은 환아였습니다. 그러나 늦둥이로 본 딸이라 아버지에게는 더없이 소중한 아이라는 것을 아버지의 행동으로 알 수 있었습니다.

수술 날짜를 잡고 정밀 검사를 한 후에 수술을 시행했습니다. 다행히 수술이 성공해서 환아는 중환자실로 옮겨져 인공호흡기를 달게 되었으나, 며칠간의 집중 관리와 밤샘 작업에도 불구하고, 환아는 폐렴 등의 합병증이 병발하여 점점 나빠지기 시작했습니다. 환아가 죽던 날, 아버지는 하루 종일 목 놓아 울었습니다. 옆에서 지켜보던 우리들도 망연자실하여 감히 그를 위로할 방법을 찾지 못했습니다.

환자의 장례를 치르고, 아버지는 다시금 우리들에게 찾아왔습니다. 그리고는 사인을 자신이 알아들을 수 있을 때까지 캐어물었습니다. 한두 번으로 끝날 줄 알았던 그런 행동은 그로부터 자그마치 6개월이나 지속되었습니다. 매일 밤마다 술이 만취가 되어 중환자실 앞에 앉아 우리들과의 면담을 요구하며 일종의 농성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매일 같은 질문에 같은 대답을 하던 우리들도 모두 그 아버지를 피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는 의료 사고라는 말조차도 생소했고, 어려운 심장 수술이다 보니 워낙 사망률이 높던 때라 환자가 죽어도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거의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아버지의 입장에서는 어렵게 얻은 딸의 죽음이 마음속으로 용납이 안 되었던 것이지요.

몇 달간의 이러한 일중 행사(?)로 의사들은 모두 그를 기피했고, 그럴수록 만취된 그의 행동은 점점 과격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 으레 말단인 저는 떠밀리다시피 그 아버지를 만나야 했고, 매일 자장가처럼 그에게 같은 말을 되풀이해서 설명하다, 같이 울다, 다독거리다...... 결국은 그 보호자가 제 무릎을 베고 잠이 들었다 깰 때까지 저는 아무 일도 못하고 중환자실 문 앞에 붙들려 있어야 했습니다. 그러다 보면 그는 술이 깨고 미안하다는 사과의 말까지 하고는 퇴근(?)을 합니다. 이러한 기이한 행사를 6개월이나 지속하던 아버지는 어느 날 저의 자장가 같은 설명에 감복(?)을 했는지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는 우리들 앞에서 사라졌습니다.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는 우리네 어른들의 이야기를 실감한 게 바로 그 사건 이후입니다. 처음엔 기피하고 싶고 힘들던 일도 그 아버지의 슬픔을 공감하면서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나중엔 지친 아버지의 얼굴이 사랑스럽게 보일 수 있었던 까닭도 그 행동의 원인이 바로 자식에 대한 사랑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최근 의학의 발달로 많은 환자들이 생명을 건지지만, 아직도 현대 의학으로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요즈음의 보호자들은 매스컴과 정보의 발달로 많은 지식은 갖고 있으나, 오히려 이로 인하여 환자의 죽음을 더욱 이해하지 못하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전문가가 아니면 이해하기 힘든 부분을 일반인들은 자신의 수준에 맞춰 해명해 줄 것을 요구하며, 이해가 되지 않을 경우 이를 물리적으로 해결하려는 양상을 보입니다. 물론 의학의 발달에 발맞추어 우리들도 분발하여 더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해야 함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의학이 발단해도 사망률을 0으로 낮출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것은 신의 영역이지요.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회 분위기가 안타깝습니다.

그 아버지의 행동은 자신의 아픔을 우리들에게 같이 나누자고 했던 행위에서 끝났지, 우리들에게 의료 사고의 개념으로 책임을 요구하는 행위는 아니었습니다. 의학에도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이론으로가 아니라 취중의 행동으로 이해해 주었던 그 아버지의 행동이 요즘같이 의사들에게 어려움을 요구하는 시대에 더욱 생각나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 『나를 울리는 사람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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