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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어머니를 생각하며
(이청승 글, 그림/글로세움/267쪽/9,500원)

현민아, 제주에는 잘 도착했는지 궁금하구나. 어머니와 헤어져 살기로 한 후부터는, 네가 제주에 내려가 집안이 텅 비는 주말 오후엔 집이 무척이나 더 조용한 것 같구나. ‘빈둥지 증후군’이라는 건 여자들한테만 있는 심리적 공황인 줄 알았는데, 남자인 아버지한테도 있나 보다. 네가 자리를 비운 주말 오후를 맞는 것이 오늘이 처음인 것도 아닌데, 산사 같은 집안의 적막감과 무위가 사뭇 새삼스럽다.

몇 년 전 이맘 때도 상황은 달랐지만, 아버지 홀로 며칠 동안 집안을 지키던 적이 있었지. 네가 유학을 떠나고 네 형마저 그해 여름 군에 입대했을 때 일이었다. 그 무렵 네 어머니가 미국에서 공부하는 너를 챙길 겸 보름 일정으로 집을 비웠지. 조그만 아파트가 그렇게 넓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아이들은 떠나는 연습을 하고, 부모는 보내는 연습을 해야 한다는 말이 참 실감나더구나.

그런데 솔직히 얼마 동안은 그렇게 홀가분할 수가 없었다. 엉뚱한 생각일지 모르지만 비로소 집이 내 집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희한하게도 이 여유로움이 너무 좋아 긴한 약속이 아니면 바깥에서 머무는 시간을 줄이면서까지 일찍 귀가를 서두르기도 했다. 아무데서나 뒹굴며 기대어 책을 보고, 마음대로 집안을 어지르기도 하고, 미루어 놓았던 책상 정리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게 웬일이냐! 며칠이 지나지 않아서 그렇게 희한한 느낌으로 와 닿던 자유로움, 그 여유가 곧 무료함으로 바뀌더구나. 그 때부터는 그 시간이 혼자 감당해야 할 일종의 부채 같다는 느낌이 들었단다. 어느 날인가 챙겨 주는 사람 없이 저 혼자 쌓이는 신문들을 바라보다가 서로 챙겨 주지 않는다는 것이 얼마나 외로운 일인가를 깨닫게 되더구나.

순간 네 어머니이자, 내 사랑하는 아내가 떠올랐다. 아내도 ‘마치 누군가 들여놓지 않아 쌓여져 있는 신문처럼 내동댕이쳐져 있었던 건 아닐까?’하는 생각이 회한으로 밀려들었다. 누군가가 쓴 수필에 ‘아내의 치마’라는 글이 있었지. 아내가 집에 없는 사이에 방바닥에 누워 뒤척이다가 문득 벽에 걸려 있는 아내의 치마를 보고 심심해서 입어보고는, 허전한 아랫도리를 느끼며 여자의 인생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는 내용이었지.

그래, 아버지는 네 어머니가 매일매일 밀려드는 시간의 해일과 힘든 싸움을 하고 있는 동안 굳센 방파제나 따듯한 위로의 노래를 불러 주는 바닷새의 역할에는 참으로 부족하고 인색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깥으로 나돌고 늘 뭔가에 쫓겨 돌아치는 것이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서!’라고 자위했던 그 시간의 반만큼은 네 어머니에게 돌렸어야 했다. 결국 아버지는 “사랑한다”, “고맙다”는 고백을 하지 못한 채 이젠 그 빚을 갚을 길이 없구나.

현민아, 너희 어머니에게 대신 위로의 말을 건네기 바란다. 아버지의 부족함을 장성한 아들이 채워주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고 본다. 공자가 말하기를 ‘허물이 있어도 고치지 않는 것, 그것이 진짜 허물이다.’ 라고 했는데, 아버지는 아직도 내 허물이 무엇이었는지를 다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낮엔 염천 더위인데도 새벽 강바람은 여전히 차구나. 창문 너무 많이 열지 말고 자기 바란다.

- 『아버지의 편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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