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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패는 사람에 달려 있다
1894년 청일전쟁이 발발하기 전까지만 해도 극동아시아에서 가장 강력한 해군함대는 청의 북양함대였다. 그런데 이 최강의 함대가 단 한 차례의 전투도 버티지 못하고 일본의 연합함대에 의해 침몰되고 말았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기존의 견해에 따르면, 북양함대 참패의 원인이 해군 경비에 손을 댄 서태후와 청 정부에 맞춰져 있었다. 그러나 학자들은 연구 끝에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었다. 청 정부는 1861년에 북양함대를 건립하여 1888년까지 27년 동안 해군 경비로 1억 량의 백은을 투입하여 연평균 300만 량을 지원했다. 반면 일본정부는 1868년에서 1894년까지 26년 동안 백은으로 환산해 6,000만 량을 투입하여 매년 230만 량을 지원했다. 일본 정부의 총 투자액은 같은 기간 청 정부의 총 투자액 대비 60%밖에 되지 않았던 것이다.

무장 면에서도 북양함대의 장갑선 수와 화력 모두 일본의 연합함대를 훨씬 뛰어넘었다. 철갑선도 북양함대와 일본 연합함대가 6:1로 훨씬 앞섰고, 비철갑선은 8:9로 일본이 다소 우세했다. 청의 정원호와 진원호의 철갑 두께는 14인치였고, 경원호와 내원호의 철갑 두께도 9.5인치나 되었다. 일본함대에서 위력이 가장 세다고 하는 ‘삼경호’도 이런 대규모의 장갑 시설이 부족했다. 북양함대의 정원호와 진원호는 각각 12인치 대포 4문을 갖추어 당시 아시아 최고의 철갑선이자 세계 수준의 함선이었다. 화포로 말하자면 대구경과 소구경을 막론하고 모두 북양함대가 우세했다. 오직 중구경 화포에서만 일본이 약간 우세한 정도였다. 평균속도에서는 일본 함대가 중국 함대보다 시간당 1.44노트 정도 빨랐으나 큰 차이는 아니었다. 청 정부는 이런 역량을 믿고 일본에 선전포고를 했다.

그러나 이런 전력상의 우세에도 불구하고 북양함대는 큰 피해를 입은 반면 일본 연합함대는 한 척도 침몰하지 않았다. 거액을 들여 이루어낸 북양함대가 이토록 허무하게 무너진 원인은 무엇일까?

우선 만주족 중앙정권이 쇠약해짐에 따라 리홍장 같은 한족 관료가 부상하기 시작했다. 리홍장을 필두로 한 양무파는 공장을 세우고 군대를 신설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일부 만주 귀족들이 보기에 북양함대는 리홍장 개인의 자본으로 여겨졌다. 리홍장의 군사력은 나날이 막강해져 누구도 넘볼 수 없었다. 그러자 조정 대신들은 리홍장의 세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북양함대의 예산을 삭감했고 그 결과 북양함대의 군비는 나날이 감소했다. 해군은 정치판도에 따라 놀아나는 말에 불과했다. 민족과 국가의 이익을 뒤로 하고 개인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서 군대는 개인의 이익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했다.

그리고 북양함대가 창설된 이후 여러 악습으로 인해 군대의 기강이 무너졌다. 당시 북양해군 규정에는 각 군관은 모두 종신토록 배에 머물며 공관을 세우지 않는다는 규정이 있었다. 하지만 제독인 딩루창은 해군 사무소가 있던 지역에 주택을 짓고 각 장교들에게 세를 놓아 낮에는 배에서 근무하고 밤에는 집에 머물도록 했다. 최고 통수권자인 리홍장도 군율을 가벼이 여기고 이러한 부하들의 행동을 눈감아 주었다. 심지어 북양함대가 가장 위험하던 웨이하이 해전 후반에 내원호와 위원호가 일본 어뢰정의 야습을 받던 그날 밤, 내원호와 위원호의 장교들은 기생을 보기 위해 상륙했다가 귀환하지 않았다. 이렇게 모래처럼 흩어진 군대가 어떻게 전투에서 이길 수 있었겠는가?

전투에 임해서도 북양함대는 명령계통이 확립되지 않아 포진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각 함대가 각개 전투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렸고, 전투가 시작되자 적이 유효사거리 밖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둘러 포격을 가했다. 정원호의 선제 발포는 목표를 타격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주포 위에 있던 브리지를 쓰러트렸고 이로 인해 딩루창 제독이 떨어지면서 중상을 입었다. 결국 이 첫 포격으로 북양함대는 이후 운명이 걸린 4시간의 전투 과정에서 통일된 지휘체계를 상실하고 말았다.

또한 후퇴 과정에서도 조직적으로 함정을 보호하면서 퇴각하지 않고 장교들이 자신만 살겠다고 배를 버림으로써 병사들의 사기를 크게 떨어뜨렸다. 이처럼 전군이 붕괴되던 상황에서 딩루창도 손쓸 방도가 없었다. 딩루창이 적의 포위를 뚫으라고 명령했으나 통하지 않았다. 또한 포위망 탈출이 불가능해지자 ‘장교들에게 배를 침몰시키라고 지시했으나 장교들은 명령을 듣지 않았다. 병사들이 칼을 들고 딩루창을 위협하자, 딩루창은 선실로 들어가 약을 먹고 죽었다. 청이 침몰시키지 않은 진원호, 제원호, 평원호 등 10여 척은 일본 해군에 포획되었고, 북양함대는 순식간에 전멸했다.

‘커다란 나무에 벌레 한 마리가 뿌리로 들어가니, 겉에서 보면 작은 구멍에 불과하지만 속은 이미 절반 이상 비어있음을 어찌 알았겠는가?’ 북양함대의 몰락에서 보듯이 결국 전쟁을 포함하여 세상사 승패는 사람에 달려 있다.

- 『발칙한 군사학』 중에서
(장리지, 야오샤오화 지음 / 예문 / 229쪽 / 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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