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산업에서 3차산업으로: 자연농원은 1976년 국토개발 시범사업장으로 처음 출발했다. 그러다 보니 농림 축산 진흥이 주목적이었고 가족놀이동산으로서의 기능은 부수적이었으므로 국민들의 여가에 대한 욕구를 채워 주기에는 당연히 한계를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또한 당시만 해도 용인은 서울에서 접근하기가 쉽지 않은 거리였다. 그러나 국민소득이 점차 증가하면서 국민들의 문화에 대한 눈높이는 점점 높아지고 있었다. 놀이동산에 대한 수요도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이러한 시대의 변화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자연농원이 가지고 있는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과감한 변화와 혁신이 필요했다. 당장 변하지 않는다면 사람들로부터 외면을 받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대표이사로 취임하고 나자 자연농원의 혁신에 대한 고민이 더욱 깊어졌다. 하지만 한두 가지의 변화로는 자연농원이 태생적으로 가지고 있는 한계를 뛰어넘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자연농원에 대한 사고를 송두리째 바꾸어 놓을 만한 변화가 필요했다. 그래서 기존 생각의 연장선상이 아니라 완전한 환골탈태換骨奪胎를 시키기로 마음먹었다. 우선 업業의 개념부터 바꾸었다. 과거 자연농원이 시골농장 개념의 1차산업이라면, 앞으로는 서비스를 판매하는 3차산업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이를 위해서는 직원들의 마인드부터 바뀌어야만 했다. 그리고 지역에 국한되어 있던 사업 범위를 전국으로 넓히고, 나아가 세계로 확대하기로 했다. 또한 내국인 중심의 영업 마인드를 글로벌 고객을 대상으로 변화시켜 나갔다. 그리하여 ‘리조트’ 개념을 도입, ‘21세기 체재형 리조트 타운 건설’이라는 슬로건을 내걺으로써 국토개발 시범사업장으로 처음 등장했던 자연농원은 개장 18년 만에 월드 클래스 리조트로 도약을 꿈꿀 수 있게 되었다.

새로운 콘셉트의 리조트를 꿈꾸다: 새로운 변화에 대해 반대의견은 만만치 않았다. “힘들게 새로운 계획을 세울 필요가 있을까요? 기존에 세워 둔 마스터플랜도 많은데, 그것을 잘 실행하는 것이 더 좋지 않겠습니까?” 알고 보니 그동안 자연농원에 대한 마스터플랜이 수립된 것만 해도 여섯 차례나 되었다. 하지만 기존 마스터플랜에는 21세기에 예상되는 시장 변화가 전혀 반영되어 있지 않았다. 마스터플랜이라기보다는 공원 내 조경계획이라고 보는 편이 더 나았다. 특히 하드웨어적인 부분의 개선안만 포함되어 있어서 테마파크의 종합적인 계획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기존의 마스터플랜이 테마파크 단지에만 국한되어 있었다면, 당시 내가 구상하던 것은 테마파크를 포함한 리조트 단지 마스터플랜이었다. 또한 리조트 전체 단지 계획을 유기적으로 세우되, 연간 입장객을 추정해 단계별로 적정 규모의 개발을 해 나감에 따라 전체 프로젝트의 경제성도 고려할 수 있도록 했다. 이와 함께 디즈니랜드와 같은 선진 테마파크의 비즈니스 모델을 벤치마킹하고 깊이 연구해 나갔다.

외부의 힘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당시 자연농원은 자체적으로 뛰어난 시공 능력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월드 클래스 리조트 콘셉트를 개발하고 단지를 최적으로 디자인할 만한 능력은 부족한 상황이었다. 순혈주의 등을 내세워 기존 인력만을 고집할 경우 리조트 개발에 무리가 따를 것으로 보였다. 따라서 우수한 인재를 확보하는 데 적극 나서는 것과 동시에 세계적인 리조트 개발 경험이 많은 선진기업을 함께 활용하기로 하고 대규모 단지 개발 실적이 경쟁업체보다 월등히 많은 미국의 대표적인 마스터플랜 업체 SWA그룹을 선정했다.

한국의 테마파크를 넘어 세계의 테마파크로: 용인 자연농원을 월드 클래스 리조트로 개발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1차산업형 브랜드인 기존의 ‘자연농원’이라는 이름을 바꾸는 것이었다. ‘자연농원’은 설립 당시만 해도 시대를 앞선 뛰어난 콘셉트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자연농원을 둘러싼 환경은 빠르게 변하고 있었다. ‘자연농원’은 말 그대로 농작물을 심고 가꾸는 곳이라는 느낌은 제대로 전해 주고 있지만 꿈과 희망을 연상시키기에는 부족했다. 특히 전 세계를 무대로 하는 국제형 테마파크 이름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단순히 이름을 바꾸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종합적인 브랜드 전략을 세워야 한다는 판단 하에 세계적인 브랜드를 만든 경험이 있는 미국의 랜도Landor사를 선정했다. 한국의 테마파크나 아시아의 테마파크가 아니라 월드 클래스 테마파크가 되어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브랜드가 바로 ‘에버랜드’다. 지금이야 에버랜드라는 브랜드가 친숙하고 세련되게 느껴지지만, 그때 브랜드 변경 작업을 진행할 당시의 분위기는 지금과는 많이 달랐다. 열이면 아홉은 반대의견을 낼 정도로 매우 부정적이었다.

선대회장의 ‘간판’을 내리다: 1970년대 중반, 먹고 살기에 아직도 풍족하다고 할 수 없었던 시대에 이병철 선대회장은 선견지명으로 바위산이었던 용인 일대의 땅을 사들여 국토 개간의 시범사업장을 만들었다. 척박한 땅을 개발하여 밤나무, 사과나무 등의 유실수를 심고 손수 자연농원이라는 이름을 지으셨다. ‘자연농원’은 선대회장의 땀과 애정이 어린 곳이다. ‘자연농원’이라는 브랜드는 선대회장이 직접 지은 이름인데다 입구에 친필로 써놓은 ‘자연농원’이라는 브랜드를 일개 월급쟁이 사장이 뜯어고치겠다고 나선 것이 당시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모험이었다. 그래서 반대도 많았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고 고객이 변하는데 자연농원만 1970년대의 콘셉트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세계와 경쟁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혁신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을 해 보지도 않고 지레짐작으로 안 될 것이라 염려하고 주저했다면 지금의 에버랜드는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저 세상에 계신 선대회장도 자연농원의 바뀐 이름에 대해서 충분히 만족하고 계실 것이라고 믿는다.

-『마음을 얻어야 세상을 얻는다』 중에서
(허태학 지음 / 이지출판 / 292쪽 / 14,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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