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첼 카슨 지음/에코리브르/112쪽/8,800원)

영성 센터의 설립자로 웨스턴 신학대학원에서 영성 훈련 과정을 운영하는 게리 토마스는 옛 영성가들의 삶과 고전을 연구하면서 인간에게는 각기 자신만의 고유한 영적 기질이 있음을 발견했다. 자연주의 영성은 자연 속에서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느끼는 영적 기질이며, 감각주의 영성은 오감으로, 금욕주의 영성은 고독과 단순성으로, 행동주의 영성은 참여와 대결로, 박애주의 영성은 이웃 사랑으로, 열정주의 영성은 신비와 축제로, 묵상주의 영성은 간절히 사모함으로, 지성주의 영성은 지식과 생각으로 하나님께 다가가는 영적 기질이라는 것이다. 그는 우리 속에서 영성의 깊은 샘이 고갈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두드러진 영적 기질을 파악하여 발전시켜 나가는 동시에 균형 있는 영성 계발을 이루어야 한다고 말한다.

『자연, 그 경이로움에 대하여』는 21세기 가장 탁월한 자연주의 영성 작가의 반열에 오른 레이첼 카슨의 마지막 책이다. 환경학의 교과서로 평가받은 『침묵의 봄』을 통해 들판에 뿌려지는 유독성 화학물질과 미국 야생 생태계의 광범위한 파괴에 관해 경종을 울렸던 그녀가 56세에 암으로 세상을 떠나기 얼마 전 "당신의 자녀가 자연에서 놀라움을 느낄 수 있도록 도와라"라는 제목으로 한 잡지에 기고했던 글들을 모아 단행본으로 펴낸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시적 산문과 정확한 과학적 지식이 독특하게 결합된 글을 쓰는 그녀는 핵폐기물의 해양 투척에 반대하여 전세계에 그 위험을 경고한『바다의 가장자리』와 같은 책을 쓴 열정적인 생태보호주의자였으나, 이번 글은 앞서의 책들과는 다소 성격이 다른 시적 산문이다.

이 책에서 카슨은 우리가 태어나 처음으로 자연에 대해 느낀 생생한 감동을 평생에 걸쳐 어떻게 유지해 나갈 수 있는지, 자연과 멀어진 채 지내기 십상인 일상에서 자연에 대한 놀라움과 경외감을 어떻게 잃지 않을 수 있는지, 그 비결을 전해준다. 그 비결은 바로 자연을 설명하거나 가르치려 하지 말고 우리의 모든 감각을 동원해서 자연과 사귀라는 것이다. 카슨에 따르면 자연은 아이와 어른이 함께 기쁨을 나누고 발견의 모험을 하는 곳이다. 자연에 대해 각별히 놀라워할 줄 아는 카슨의 눈도 어린 시절 어머니와 함께 함으로써 깊어질 수 있었다고 한다. 때문에 어린이에게는 자연에 대해 함께 놀라워할 한 사람 이상의 어른이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카슨은 그래서인지 그녀의 집을 방문한 조카의 아들 로저와 주변 숲과 바닷가를 함께 거닐며 흥미진진한 모험을 즐긴 시간들을 이 책에 담았다.

『자연, 그 경이로움에 대하여』의 큰 특징 가운데 하나는 밤을 주제로 했다는 것이다. 카슨은 밤의 고요함과 신비를 무척이나 사랑했다. 바닷가와 밤이야말로 카슨이 삶의 가장 깊은 신비를 명상하는 장소이자 시간이었다. 그녀는 밤에 홀로 나서는 것은 내적인 치유와 인간 내면에 대한 새롭고도 깊은 이해와 통찰을 가져다준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녀는 자주 밤바다나 밤의 들판으로 나간다.


"비바람 치던 어느 가을밤이었다. 그때 로저는 세상 빛을 본지 20개월이 지난 아이였다. 나는 로저를 담요로 감싼 채 비내리는 어둠 속 바닷가에 앉혔다. 저 멀리, 우리의 눈길이 미처 닿지 않는 바다 끝에서, 거대한 물결이 우르릉대며 춤추고 있었다. 세상을 뒤흔들 듯 커다란 소리를 내며, 물결은 이내 우리 곁으로 밀려와 무수한 포말로 스러졌다. 로저와 나는 즐거움에 겨워 크게 웃었다... 로저는 태어나 처음으로 바다가 불러주는 신의 노래를 들었던 것이다. 물론 나는 삶의 거의 대부분을 바다와 사랑에 빠져 보낸 어른이었다. 하지만 로저와 나는 그날 밤 분명히 같은 기분을 느꼈다. 드넓기 그지없는 바다, 세상을 뒤흔들 듯 으르렁대는 바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감싸안고 있는 넉넉한 어둠. 우리는 이 모든 것에 가슴 두근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소슬한 바람이 부는 10월의 고요한 어느 날 밤, 아이와 함께 들판으로 나가보자. 가만히 서서 머리 위 어두운 하늘을 향해 귀 기울여 보자. 어둠 저 너머에서 희미하게 한 소리가 들려온다. 날카롭게 울어대는가 싶으면, 서로를 애타게 부르는 듯도 싶다. 창공에 흩어져 나는 철새들이 같은 무리 속의 다른 새를 부르는 소리다. 나는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수많은 감정의 파도가 내 안에서 물결치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듯한 고독감, 어떤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삶의 방향이 정해지곤 하는, 나를 비롯한 세상의 모든 피조물에 대한 연민, 간절히 원할 수도, 철저히 거부할 수도 없이, 다만 어김없이 따라야만 하는 어떤 섭리에 대한 경외감, 해마다 틀림없는 이동 경로와 방향을 밟는 철새들의 설명할 길 없는 본능에서 느껴지는 신비감.... 이윽고 달 가까이 날아오는가 싶던 새들은 빠르게 달의 얼굴을 가로질러 저 멀리 사라져간다. 알 수 없는 어둠 속에서 와서, 빛 가운데 잠시 머물다가 다시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가는 우주의 외로운 여행자들. 비록 길은 다를지라도 우리 모두는 그런 여행자들이리라."


게리 토마스의 말대로 우리가 지닌 영적 기질은 서로 다를지 모른다. 그러나 대자연 속에서 느끼는 경외감만큼은 누구나 같다. 물론 아이 적부터 자연을 통해 아름다움에 대한 감수성과 새로운 것, 미지의 것에 대한 흥분, 기대, 동경, 사랑을 심어준다면 그들의 자연주의적 영성은 더 한층 꽃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것도 지나치면 오히려 해악이 되듯, 자연을 통해 생명의 경이와 신비를 느끼며 자연주의적 영성을 발전시켜 나가는 것은 바람직하나, 자연이 하나의 우상이 되어 범신론적 합일 같은 영적 체험을 시도하려는 욕구는 식욕, 물욕, 성욕처럼 지나치면 탐욕으로 화할 수 있음도 알아야 할 것이다. 영적 절정에 대한 갈망도 절제해야 할 무엇이기 때문이다. 그래야 우리 존재의 다른 부분들이 균형 있게 계발될 수 있는 것이다.

- 최종옥, 북코스모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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