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레미 리프킨 지음/민음사/452쪽/15,000원)

인간은 본능적으로 즐거움을 추구한다. 고대로부터 인간은 놀이와 축제를 즐겨왔고 놀이를 통한 즐거움은 우리의 삶을 정겹고 풍요롭게 해주었다. 그러나 문명의 발달과 함께 놀이와 즐거움의 문화가 쾌락을 추구하는 본능에 의해 압도되고 있다. 쾌락을 추구하는 본능은 이러한 문화뿐만 아니라 윤리나 도덕 심지어는 이념이나 종교적 신앙마저 억누르고 우리의 마음과 행동을 지배한다. 실제로 오늘날 청소년들에서부터 성인들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감각적인 쾌락에 탐닉하고 나쁜 습관이나 약물 등에 중독되어 있다. 게임에 중독된 청소년들은 PC방 등에서 몇 날 밤을 꼬박 새우고, 수많은 성인들이 요즈음 봇물처럼 늘어나고 있는 성인오락실에서, 불야성을 이룬 환락가에서 온갖 쾌락에 중독되어 자신들의 소중한 삶을 낭비하고 있다. 쾌락에 대한 중독은 마약처럼 빠져들면 빠져들수록 보다 강도 높은 쾌락을 찾게 되고 결국은 우리의 삶을 파멸로 이끌고 만다.

중독의 치명적 폐해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꽁꽁 얼어붙은 북극에 사는 에스키모인들은 아주 간단한 방법으로 늑대를 잡는다. 면도칼처럼 날카로운 칼날에 피를 흠뻑 묻힌 다음 그 칼을 얼린 뒤 날카로운 칼날이 위쪽을 향하게 하여 얼어붙은 땅속에 칼의 손잡이를 박아놓는다. 그러면 피 냄새를 맡은 늑대들이 와서 칼날을 핥고, 얼어서 무감각해진 늑대의 혓바닥은 어느새 날카로운 칼끝을 핥게 된다. 피를 흘리기 시작한 늑대는 자신의 피에 끌려 더욱더 빠른 속도로 계속해서 칼날을 핥다가 결국 죽음에 이르고 만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우리 사회의 많은 사람들이 지금 여러 가지 형태의 중독의 덫에 빠져 단 한 번뿐인 자신의 소중한 삶을 망치고, 가정을 파탄에 이르게 하고 나아가 우리 사회에 불안하고 어두운 죄악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지금 당장 눈앞의 돈벌이를 위해 이러한 쾌락을 생산하는 기업이나 사람들도 결국은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는 그 쾌락의 덫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세계적인 사회비평가 제러미 리프킨은 그의 저서 <소유의 종말>에서 순수한 놀이는 인간이 누리는 자유의 가장 높은 수준의 표현형식이며 문화 경제의 시대인 21세기에는 놀이가 점점 중요해진다고 강조하고 있다.

경제는 거대한 공장에서 거대한 극장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제조업 중심의 자본주의에서는 산출량이 중요하지만 문화 중심의 자본주의에서는 연기가 중요하다. 새로운 시대의 주역은 "근면"이 아니라 "창조"이며 사업은 일보다는 유희에 가까워진다. 업무환경은 실체험의 마케팅과 문화적 연기를 중시하는 유희환경으로 서서히 탈바꿈하고 있다. 기업은 예술적 창조성을 유도할 수 있는 여유로운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하여 "놀기 좋은" 온갖 종류의 혁신적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산업 경제에서 일이 중요했던 것처럼 문화 경제에서는 놀이가 점점 중요해진다. 그리고 성숙한 놀이는 수동적 오락과는 달리 언제나 문화 영역에서 일어난다. 사람들이 친목, 시민 활동, 교회, 예술, 운동, 사회 정의, 환경 조직 같은 다양한 활동에 자발적으로 참여할 때 그들은 성숙한 놀이의 진수를 보여준다. 그들의 사회적 교류는 사회적 신뢰의 섬을 곳곳에 만들고 풍성한 사회 자본을 끌어낸다. 성숙한 놀이는 사람들을 공동체로 끌어 모은다. 그것은 가장 친밀하면서도 가장 섬세한 인간 교류의 형식이다. 성숙한 놀이는 정치적 성격을 띠었건 상업적 성격을 띠었건 제도화된 권력의 무분별한 횡포에 저항하는 힘이다.

리프킨이 지적하고 있듯이 이제 세계는 과거의 물질 경제의 시대에서 체험경제의 시대로 전환하고 있다. 이와 함께 놀이와 즐거움은 분명 우리 시대의 키워드이며 우리의 생활 전반에 걸쳐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게임, 성인 오락, 그 밖의 감각적이고 수동적인 쾌락들 역시 놀이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은 자신의 피가 묻어 있는 날카로운 칼날처럼 우리의 영혼을 파괴하고 우리 사회에 불안과 죄악을 확대 재생산하는 저급한 놀이다. 사람들과의 교류를 통한 정겨움, 어려운 이웃을 배려하는 따뜻함, 땀흘려 얻는 신선한 쾌감, 보다 나은 공동체를 만들어 나갈 때 얻는 성취감과 보람 등을 추구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즐거움이고 성숙한 놀이이다. 이러한 성숙한 놀이는 우리의 영혼을 살찌우고 나아가 우리 사회의 부정부패와 어두운 그늘을 모두 걷어낼 것이다. 우리 모두가 감각적인 쾌락의 추구가 아니라 성숙한 놀이 문화를 만들어나가기 위해 노력할 때 우리사회는 곳곳에 신뢰의 섬이 만들어지고 세상은 더욱 따뜻하고 풍요로운 곳이 될 것이다.

- 최종옥, 북코스모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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