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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사랑은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다
우리가 여기까지 오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음악을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전까지 아들 렉스는 어둡고, 외로운 세상에 갇혀 살았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는 스탠퍼드 대학을 졸업하고 꽤 알려진 프랑스 은행에 취직해 파리에서 젊음을 만끽하며 살았다. 그렇지만 파리에 있는 동안 알 수 없는 희미한 공허감이 가끔씩 나를 사로잡곤 했다. 그때 내 가슴에는 그 어떤 것으로도 메울 수 없는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었다. 결국 나는 그것을 견디지 못해 파리를 떠나 미국의 고향으로 돌아왔고, 한 남자와 결혼하여 렉스를 낳았다.

그런데 그처럼 아름답고 순수한 아기의 푸른색 눈이, 내 인생에 거대한 시련의 폭풍우로 다가올 줄이야! 내 아기는 세상을 볼 수 없었다. 특수한 뇌신경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것이다. 그리고 그 절망으로 인해 남편마저 떠나버렸다. 처음에는 렉스를 어떻게 길러야 할지 막막했다. 무시무시한 허리케인을 만났는데 이제껏 내가 경험했던 세상의 것들은 모두 렉스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내 존재를 완전히 뭉개고 지워버리는 거대한 토네이도였다. 그때 내 머릿속에 들어 있던 단 하나의 생각은 내 아이를 허리케인 속에 그냥 내버려둘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어머니였다. 내 아들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었다.

지독한 사랑이었다. 렉스와 함께하는 하루하루의 삶은 고통이었다. 너무도 힘들었기에 내가 의지해야 할 곳은 오직 신뿐이었다. 날마다 아들의 치유를 위해 무릎이 닳도록 기도했다. 도저히 종교에 의지하지 않으면 버틸 수 없었기에 막무가내로 빌고 또 빌었다. 하지만 신은 아들의 치유에 대한 응답 대신 아픔과 절망으로 가득한 그 어머니의 마음을 치유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그 어떤, 알 수 없는 믿음을 어머니에게 주기 시작했다.

절망으로 가득 찼던 내 마음은 조금씩 밝은 빛을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1년 뒤, 렉스의 몸에 기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신이 나에게 내린 첫 번째 기적이었다. 렉스가 걸었고, 말을 했고, 피아노를 쳤다. 렉스의 그 민감한 감각들……. 신은 렉스에게서 시각을 빼앗아간 대신, 천재적인 음악성을 던져주었다. 어느 날 그것을 알고는 이를 위해 내 전부를 바치기로 결심했으며, 참으로 길고 긴 투쟁에 들어갔다.

신이 내게 절망을 던질 때마다 나는 그분에게서 멀어지려고 했다. 기도하며 해답을 찾으려고 했지만 언제나 돌아오는 것은 메아리뿐일 때는 공허하고, 혼란스럽고, 화가 나기도 했다. 하지만 렉스의 피아노 연주를 들을 때마다 나는 숨이 멎도록 놀라곤 했다. 아들의 피아노 선율은 나를 무릎 꿇게 했다. 신은 내게 이렇게 속삭이고 있었다. “음악 속의 내 목소리를 들어라. 선율의 마디 하나하나에 들어 있는 내 목소리를 들어라. 잘못될까 걱정하지 마라. 그 소리를 듣고 아름답다는 걸 느껴라. 그러면 장래에 대한 소망을 갖게 될 것이다.”

렉스는 심한 자폐증을 앓고 있었지만 피아노를 연주하는 동안은 삶의 기쁨으로 빛났다. 내가 실로 원하던 바였다. 렉스가 장애의 불편함을 의식하지 않고, 스스로 즐거움을 느끼기를 고대했던 것이다. 사실, 나는 렉스가 태어나기 전에는 무엇이 삶의 기쁨인지를 몰랐다. 이전에 내가 느꼈던 모든 행복들은 ‘어떤 특정한 상태에 놓인 것’에 불과했다. 내가 뭔가를 이루었을 때, 혹은 누군가로부터 인정받았을 때 그것이 기쁨이라고 느꼈다. 하지만 그것은 진정한 기쁨이 아니었다. 늘 그 행복이 언제 끝날 것인지에 대한 두려움이 뒤따랐던 것이다. 진정한 기쁨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내 안에 있었다.

렉스는 피아노를 통로로 세상과 더불어 살 수 있는 길로 한 발 한 발 내딛고 있다. 이제 곧 사춘기에 접어들게 되는 렉스에게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은 험난할 게 분명하다. 그 아이의 몸과 마음은 전문가들도 놀라는 천재적인 연주 능력과 자신의 신발끈도 제대로 묶지 못하는 극단적인 장애가 한데 뒤섞인 놀라운 공간이다. 그러니 어떻게 험난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믿음을 가지기만 하면 훨씬 더 많은 문이 열릴 것이다. 다만 억지로 강요하지 않는 것은, 신을 믿는다는 것은 렉스가 자기 시간 속에서 자기 자신의 속도로 헤쳐 나가도록 기다리는 것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는 요즘 렉스 덕분에 새로운 소망이 생겼다. 복합장애아 특수교사 자격증을 땄고, 렉스를 키운 경험을 바탕으로 장애아를 가진 부모와 아이들을 돕고 있다. 내 안에 머무르지 않고, 다른 세상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최근 자주 보는 광경이 있다. 아들은 잠든 채로 꿈속에서 즐겁게 웃고 있다. 깨어 있을 때도 자기만의 생각에 빠져들어 큰소리로 웃기도 한다. 한 번은 얼마나 크게 웃었던지 온몸을 마구 흔들어대기까지 했다. 나 혼자만의 생각일 수도 있지만, 아들의 그 웃음은 주변에서 일어나는 신비에 대한 ‘아멘’의 마침표이다. 그리고 그 웃음 속에는 자기 존재에 대한 기쁨과 소망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아들의 잠 속으로 들어갈 수만 있다면, 아들의 무의식 속으로 들어갈 수만 있다면 나는 그 기쁨을 함께 더욱더 맛볼 수 있을 텐데…….

-『렉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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