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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언니
꽃을 보면 늘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일하시는 엄마를 대신해 집안 살림을 돌보았던 큰언니는 인근에 소문난 미인이었다. 얼굴 못지않게 마음은 더 곱디고왔다. 새벽에 일어나 아침밥을 준비해 놓고 우리 육 남매를 깨워 밥을 먹게 했다. 그 동안 큰언니는 호미를 들고 화단을 가꾸다 밥을 다 먹은 우리가 책가방을 들고 나서면 선생님 책상에 놓아드리라고 꽃을 싸 주곤 했다.

언니는 저녁시간이면 하얀 포플린 천에 수틀을 대고 레이디데이지 스티치로 밤이 깊어가도록 수를 놓다가 이따금씩 잠든 내 몸에 그 포플린 천을 갖다 대보곤 했다. 그러다 며칠 후 학교에서 돌아와 보면 빨랫줄에 산뜻하게 풀을 먹여 널어놓은 하얀 원피스가 햇빛을 받아 눈부시게 나풀거리고 있기도 했다. 설렘으로 가슴을 콩콩 뛰며 "언니, 내 옷 다 말들었어?" 하면 언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내 손을 잡고는 샘물가로 데려가 뽀득뽀득 몸을 씻기고 비누냄새가 채 가시지 않은 몸에 며칠 밤을 새워 만든 하얀 원피스를 입혀놓고 흐뭇하게 바라보곤 했다.

집 앞으로 기찻길이 있었다. 밤에 이불 속에서 잠을 청할 때면 문풍지로 그림자와 함께 기적소리를 울리며 기차가 달리던 그 때, 언니에겐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다. 일곱 살이었던 내 손을 잡고 언니는 기차에 올라 언니의 남자를 만나러 가곤 했다. 군인장교였던 그 남자는 지금의 큰형부다. 큰언니가 언니의 남자와 얘기하는 동안 나는 기찻길 주변에서 토끼풀로 목걸이를 만든다거나 왕관을 만들며 혼자 놀기를 좋아했다.

돌아가는 길엔 늘 석양이 지고 있었다. 장교복을 입은 그 남자는 우리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역사에 서서 손을 흔들었고 어느 날은 달리는 기차를 따라 뛰어오기도 했다.

그런 언니가 시집을 가고 나니 집안이 텅 빈 듯싶었다. 화단의 꽃들도 하나씩 생명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언니가 없는 집에 들어가기가 싫었다. 나는 학교 끝나면 우리 집처럼 큰언니네 집으로 달려갔다. 내 첫 생리도, 내 몸에 여자를 느끼게 해 준 브래지어도 큰언니가 챙겨주었다.

큰언니는 음식솜씨가 좋아 주위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주었다. 목소리도 나긋나긋하여 듣기 좋았으며 늘 웃는 얼굴이 상냥했다. 교직에 계시던 형부의 수입만으로는 힘에 부쳐 하숙을 치며 두 시동생 대학공부를 시켰고 형부의 대학원 공부가 끝나자 시동생들 대학원 뒷바라지까지 자청했다. 살아가면서 남편에게나 자식에게, 그리고 형제들에게 목소리 한번 높여본 적이 없는 큰언니. 언제나 고운 모습으로 삶에 충실했던 큰언니.

큰언니 집에 갈 때마다 언니 부부의 서로에 대한 깊은 애정이 그 집안 전체에 흐르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누구나 큰언니네 집엘 가면 행복해했다. 나도 크면 큰언니처럼 살 거라고 수없이 생각했다. 지금 큰언니는 쉰다섯 살이다. 언제나 형부의 손을 꼬옥 잡고 산책하는 큰언니보다 더 아름다운 여자를 나는 여지껏 본 적이 없다.

그런 큰언니가, 남편의 사업 실패로 고생하는 나만 생각하면 온몸이 다 시려와 견딜 수가 없다고 한다. 몇 년 전부터 성당에 나가면 나를 위한 기도로 눈이 젖어 돌아오곤 한다는 말을 셋째 언니한테 들었을 때 가슴이 미어져 큰언니를 볼 자신이 없었다.

오늘 아이들을 성당에 보내는 길, 나뭇가지에 밤새도록 내린 눈을 보니 그 옛날 눈 쌓인 나뭇가지가 아프겠다고 눈을 털어주던 큰언니의 뒷모습이 꽃그늘처럼 떠오른다.

큰언니...... 언니......


- <나는 자꾸만 살고 싶다>(안효숙, 마고북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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