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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네가 엄마 해라
딸아이가 중학생이 되었다.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가정환경조사서를 가져왔다. 직업, 주거환경, 월수입...... 볼펜을 손에 쥐고 한참 헤매며 앉아 있던 나와 딸아이의 눈이 마주쳤다. "엄마, 그냥 써. 있는 그대로. 걱정하지 말구요." "그래도 되겠니?" 듣고 보니 웃음이 나온다. 이렇게 간단한 걸. 이 어린 딸은 가끔 내 친구가 되기도 한다. 아니 나보다 더 생각이 깊을 때가 많아 놀랄 때가 있다.

딸아이가 열 살 되던 해 남편이 사업에 실패했다. 학교에서 공부하던 아이를 데리고 시골로 내려가는데, 내 품에 꼭 기댄 채 한마디 말도 없었다. 딸아이의 아픈 마음이 그대로 전해져 와 가슴이 찢어지는 듯했다. 남편에게 "당신 가진 것 얼마 있어? 우리 사직동 하이델베르그에 가자.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 먹이고 싶어."하고 말했다. 그곳은 우리 가족이 함께 외출할 때 가장 좋아하던 장소였다.

음식이 나왔는데 딸아이는 도통 입에 대지를 않는다. "일 년이야...... 딱 일 년만 헤어져 있는 거야. 일 년 후 우리 다시 만나 함께 사는 거야. 일 년이 아니고 더 빠를 수도 있어." 큰녀석은 눈물을 글썽이면서 "엄마, 빨리 와야 해."하는데, 딸아이는 내 손을 꼭 잡고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영비야, 이거 영비가 제일 좋아하는 건데 왜 안 먹어? 우리 헤어지는 것 아니야. 우리가 함께 살 수 있는 방값만 모아지면 엄마가 데리러 올 거야." 손에 수저를 쥐어주었지만 아이는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남편이 화를 내고 내가 불안해하기 시작하자 딸아이는 "엄마...... 먹어...... 엄마 먹으면 나도 먹을게. 엄마, 나하고 오빠하고 잘 있을게. 걱정하지마." 했다.

그렇게까지 의젓하게 참아주었었는데, 갑작스런 환경 변화에 적응하느라 얼마나 힘들었던지 딸아이는 한 달 뒤 시력을 급격하게 잃어 글씨가 잘 안 보인다 했다. 잠자리 안경이 올라앉은 작은 얼굴이 너무도 안쓰러웠다.

요즈음에도 잠을 잘 때면 옆에 와서 만져보고 간다. 딸아이는 말했다. "엄마가 없으면 잠이 안 와. 엄마, 나 그때 엄마하고 헤어져 살 때 엄마 보고싶은 거 참느라고 속울음 많이 울었어." 어린 것이 속울음을 울었다 한다. 별걸 다 안다. 그 어린 나이에 속울음을 알았다니...... 아이에게 참 많은 죄를 진 듯하다. 나하고 남편하고 아이 속을 썩였으면 썩였지 딸아이가 말썽을 피운 적은 없다.

언젠가 아이들이 볼까 싶어 두꺼운 겨울이불 세 겹을 뒤집어쓰고 펑펑 우는데 딸아이가 이불 사이를 들추고 들어와 조심스럽게 말했다. "엄마. 내가 무슨 말 하나 해 줄게...... 엄마, 이거 알아? 사람은 슬퍼서 우는 게 아니고 울어서 슬픈 거래. 사람은 기뻐서 웃는 게 아니고 웃어서 기쁜 거래. 그러니까 엄마도 웃어. 그럼 기뻐지니까."

이렇게 착한 딸아이 마음 아프게 한 나는 철없는 엄마다. 언젠가 내 셋째 언니가 딸아이에게 말했다. "차라리 네가 엄마 해라."

초등학교 사학년 때 딸아이의 담임선생님한테서 그 애가 쓴 시에 대한 소감이 담긴 편지 한 통을 받았다. "참 예쁜 아이입니다. 부럽습니다." 이렇게 나를 세상 부러울 것 없는 사람으로 만든 아이. 나를 어머니의 자리에 서게 만든 아이. 예쁜 아이. 그 아이가 쓴 시를 다시 읽어본다.

엄마에게 드리는 글

이다음에 크면 엄마에게 비단신을 신겨드릴 거예요.
커다란 궁전을 지어 엄마가 좋아하는 책이 가득한 도서실도 만들어드리고
고생하는 엄마를 위해 엄마의 시중을 들어드릴 사람도 구해드리고
엄마에게 비단옷을 만들어드릴 거예요.
엄마에게 비단신을 신겨드릴 거예요.
엄마가 좋아하는 꽃이 가득한 넓은 정원도 꾸며드리고
엄마의 식탁에는 날마다 백 개의 촛불을 켜드릴 거예요.
그리고 엄마가 가고 싶어하는 나라 여행도 시켜드리고
나는 엄마에게 효도할 거예요.
엄마 제가 클 때까지 참으세요.
엄마의 머리에 왕관을 씌워드리겠어요.
일하느라 더워서 흘러내리는 땀이 이마로 내려오지 않게요.

중학생이 된 요즈음 딸아이는 거울 앞에서 한참 멋을 부리곤 한다. 작은 젖가슴을 가지고 브래지어를 사 달라 떼도 쓴다. 어른스러웠던 딸아이가 요즈음 다시 어려지면서 어리광을 부린다. 용돈도 올려 달라 하고, 찢어진 청바지도 사 달라 하고, 씨디 플레이어 꽂고 무릎 흔들거리며 폼도 잡고, 자기 막춤 감상했으니 관람료로 씨디 사 내놓으라 억지 부리고..... 이제 좀 제자리를 찾아가는 것 같기도 하다.

흐음, 요 예쁜 녀석. 이제 내가 다시 엄마 해도 되겠다.


- <나는 자꾸만 살고 싶다>(안효숙 저, 마고북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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