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의 폴란드는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직전의 흉흉한 분위기에 휩싸여 있었고, 유대인들과 비 유대인들 사이의 긴장은 이미 팽팽해진 상태였다. 나의 아버지는 마을을 뒤덮기 시작한 두려움과 의혹에 절대로 굴복하지 않았다. 겨우 일곱 살이었음에도 내 아버지는 자유를 갈망하는 정신의 소유자였고, 진정으로 사랑 받는 아이이기도 했다. 그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비 유대인 아이들과 계속 친하게 지냈으니까.

아버지에게는 특히 친하게 지내는 또래 아이가 한 명 있었다. 두 아이는 서로의 물건을 바꾸는 취미가 있었다. 장난감, 외국 우표, 우스운 이야기 등등 많은 것을 바꾸었다. 어느 날 그들은 장난스럽게도 각자의 종교에 속한 기도문을 바꾸기로 했다. "너는 유대교의 기도문을 가르쳐 줘. 그러면 나는 주기도문을 가르쳐줄게." 순진하기만 한 두 아이는 부모님들이 알면 얼마나 화를 낼지는 알지도 못하고 틀리지 않고 외울 때까지 몇 번이고 외웠다.

그로부터 십 년이 지났고, 모든 것이 변했다.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게토(유대인 거주지)로 이주하거나 집단 수용소에 수용되었고,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들도 많았다. 열일곱 살이던 내 아버지는 독일인 같은 외모와 위조 신분증 덕분에 비 유대인으로 위장하고 유럽을 떠돌아다녔다.

그러나 어느 날 아버지가 기차를 타고 있을 때, 나찌 군인이 승차하여 모든 승객들의 신분증을 검사했다. 자신의 차례가 되자 아버지는 이미 여러 번 신분증 검사를 통과했었기에, 별 걱정 없이 신분증을 내밀었다. 그러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 나찌 군인은 갸름해진 눈으로 아버지의 위조 신분증을 이모저모 뜯어보았다. 그의 눈에서는 의혹의 빛이 역력했다. 아버지는 심장이 곧 멈출 듯 몹시 떨렸다. 이제는 죽은목숨이나 다름없었다.

마침내 아버지를 쏘아보던 그가 경멸투로 말했다. "그렇다면 너는 기독교인이겠지? 좋아, 그럼 그 사실을 증명해봐. 주기도문이라도 외워보란 말이야!" 그는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으며 먹이를 낚아챌 기쁨의 순간을 기다렸다.

그러나 그 순간 아버지의 가슴 속 어디에선가 오래 된 추억이 떠올랐다. 아버지는 주기도문을 완벽하게 암송했고, 흠칫 놀란 그 군인은 투덜거리며 기차에서 내렸다. 그는 아버지가 알고 있는 기도문은 주기도문이 전부였다는 사실을 몰랐으리라. 십 년 전 어린 폴란드 친구가 가르쳐주며 꼭 외우고 있으라고 했던 바로 그 기도문을 아버지는 단 한 자도 잊지 않았던 것이다.

아버지는 전쟁에서 살아남았고, 그 후로 새로운 인생을 세워나갔다. 그리고 당신의 아이들에게 종교와 인종 그리고 생활 신조를 초월하여 모든 사람들을 존중하고 사랑할 것을 가르쳤다. 아버지의 생명을 구해준 것은 순수했던 시절 모든 것을 뛰어넘어 믿어주고 사랑하던 한 친구의 우정이었던 것이다.

- <사랑과 우정의 아름다운 기적>(이타 할버스탐, 주디스 레벤탈 엮음, 다리미디어) 중에서

21 22 23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