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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에겐 강하게, 측근에겐 엄하게
권력은 언제나 상대가 있는 법이다. 권력(權力)이란 용어의 ‘권(權)’에 ‘저울 추(錐)’를 쓴 것은 권력의 분배를 의미했다. 정조는 권력의 속성이란 언제나 내가 가진 권력 일부를 상대에게 베푸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이런 원칙을 철저히 지켰다. 그래서 항상 어느 한 정파를 특별히 두둔하지 않았다. 정조는 사람을 쓸 때 이 사람이 자신의 개혁정책을 밀고 나갈 사람인가 판단하고 한편으로 그를 견제하기 위해 반드시 다른 사람을 중용했다. 강력한 적이 있어야 강력한 내편이 있을 수 있다는 정조의 특별한 인재관리 기법이다.

채제공과 김종수는 그런 면에서 아주 특별한 의미를 지닌 인물들이다. 정조 시대를 이해하려면 두 사람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두 사람은 물과 기름이었다. 이렇게 물과 기름인 사람을 정조는 절묘하게 배합하려 애를 썼다. 그것이 정조가 하고자 한 인재관리의 묘미이고 특별한 기술이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커다란 인내가 필요했고 때로는 고통도 따랐다. 김종수는 노론을 대표하는 정치인이며 채제공은 남인을 대표하는 정치인이다. 정조는 언제나 김종수를 채제공과 반대편에선 긴장관계의 한 축으로 놓고 정치를 폈다. 정조는 채제공이 강해지기 위해서는 김종수 같은 인물이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채제공은 사도세자가 죽음의 위기에 있을 때 영조에게 살려달라고 눈물로 호소한 인물이다. 그런 것을 아는 정조이기에 그가 남인이란 붉은 꼬리표가 부담스러웠지만 죽는 날까지 그를 가까이 했다. 남인의 실력자가 임금에게 중용되자 그를 미워하는 무리들이 많았다. 당시 노론과 남인의 정치적 차이는 오늘날 극우세력과 급진개혁 세력의 차이로 이해할 수 있다. 정조는 극우와 극좌 세력을 한 팀으로 이끌려고 했다. 이는 대단히 모험적이고 고통을 감내해야만 하는 정치적 선택이었다.

1782년 1월, 정조는 병조판서에 채제공을 임명했다. 그러나 곧바로 영의정 서명선과 좌의정 홍낙성 등이 반대하면서 입궐하지 않았고 우의정 이휘지는 화가 나자 사직서를 조정에 제출하고 고향으로 내려가 버렸다. 이조판서였던 김종수도 정조에게 반대의 뜻을 분명히 하며 사임을 청했다. 채제공의 병조판서 임명은 한해 내내 임금과 신하의 갈등을 야기했다. 결국 정조는 그해 10월 채제공을 한성판윤으로 돌리면서 자기 뜻을 거두었다. 정조의 집권 24년 동안 채제공은 항상 화약고 같은 인물이었다.

다시 2년 뒤인 1784년 정조는 채제공을 공조판서에 임명했다. 그러자 영의정 정존겸, 좌의정 이복원, 우의정 김익이 연명으로 채제공을 탄핵했다. 당시 조정은 노론 일색이었다. 그럼에도 임금이 탕평이란 이름으로 몇 명 안 되는 소론과 남인을 기용하면 노론은 시끄럽게 임금의 인사가 옳지 못하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정조는 노론이 전부가 아니면 전부 물러나겠다는 일당독재 의식에 깊은 반감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을 길들이기 위해 채제공 카드를 자주 쓴 것이다.
정조는 훌륭한 재상들이 나라를 다스리는 정치를 원했다. 정조가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한 구도는 영의정 김종수, 우이정 유언호 그리고 좌의정에 채제공을 배치하는 것이었다. 정조는 면밀히 준비했다. 1786년 가을 채제공을 파격적으로 좌의정에 발탁한 것도 그런 복안에서 시작된 것이다. 채제공을 보면 정조의 개혁 정치가 어떤 방향으로 가는지를 가늠할 수 있다. 그는 정조의 복심이었다.

개혁의 칼은 좌의정 채제공에게 주고 그것을 끊임없이 견제하는 역할은 영의정 김종수에게 맡기려는 정조의 치밀한 복안은 오랜 꿈이기도 했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보면 사도세자의 죽음에서 김종수가 그렇게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의 형 김종후는 김상로, 홍계희와 함께 사도세자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주범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정조의 입장에서 보면 아버지를 해치는 데 앞장 선 김종후, 그리고 그의 동생 김종수는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사람이었다. 그러나 정조는 “경은 내가 동궁 시절 나를 10년 동안 가르친 스승이다. 내가 정치적으로 성공하면 경도 성공한 것이다. 우린 같은 배를 탄 동지다.” 이런 주장으로 김종수를 끌어들였다. 정조는 조선이란 작은 나라에서 역사적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충신이 아닌 집안이 없고 역적이 아닌 집안이 없다고도 했다. 그래서 필요한 사람에게는 교목세가(喬木世家; 여러 대에 걸쳐 중요한 벼슬을 지내 나라와 운명을 같이하는 집안)의 의리를 내세웠다. 정조는 김종수를 항상 주변에 있게 하면서 자신의 통치 행위에 불편부당함이 없어야 함을 그를 통해 감시하게 했다. 그런 역할을 김종수는 곧잘 수행했다.

정조는 강한 적이 있어야 내가 강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언제나 자신에게 반대되는 세력, 그것도 강한 적을 그리워했다. 정조는 신하들을 길들이는 일로 재위 기간 대부분을 보냈다. 마치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신하들을 하나하나 지도했다. 끊임없이 아름다운 선율을 내기 위해 튀는 사람은 주의를 주고 너무 소리가 작은 인물은 불러다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었다. 사악한 마음만 갖지 않는 자라면 모두 다 쓰려 했다. 음흉하거나 그냥 녹봉이나 받으면서 대충대충 지내려고 하는 자들을 가장 경멸했다. 소신이 뚜렷해서 임금에게 거침없이 항의하고 자기 뜻을 관철시키려는 그런 인물들을 정조는 좋아했다. 방향이 다르면 토론을 하고 설득해서 한 방향으로 갈 수 있지만 애초 의지나 열정도 없는 것들은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것이 정조의 생각이었다. 그래서 느슨한 안정감보다 팽팽한 긴장감을 더 즐긴 정조였다.

- 『CEO, 정조에게 경영을 묻다』 중에서
(김용관 지음 / 오늘의책 / 319쪽 / 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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