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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 해답을 찾은 CEO들
일찍이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만일 소크라테스와 점심 식사를 할 수 있다면 우리 회사가 가진 모든 기술을 그와 바꾸겠다”고 말한 바 있다. 스티브 잡스는 대학 시절 플라톤과 호머는 물론 동양 고전에 이르기까지 책읽기에 푹 빠졌다. 대학 시절 들었던 서예 강좌는 훗날 매킨토시와 아이팟 디자인 감각의 원천이 되었으며 늘 소크라테스식 질문법을 경영에 적용하여 오늘날 세계적인 기업을 일구어냈다.

우리나라 최고의 기업가라고 할 수 있는 고 이병철 회장의 ‘인재 경영’과 정주영 회장의 ‘불굴의 의지 경영’ 역시 책이 그 원천이었다. 이병철 회장은 자서전에서 자신의 모든 경영 비법은 『논어』로부터 비롯되었다고 고백했고, 경영의 지혜를 갈구하던 청년 이건희에게 단 한 권의 책을 추천했는데 바로 『논어』였다. 정주영 회장 또한 고령교 복구 공사 위기 때는 『채근담』, 현대건설의 해외 진출을 앞두고는 『대학』의 지혜를 활용하여 위기에서 벗어나고 새로운 도전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자서전에서 고백한 바 있다.

이처럼 국내외의 위대한 CEO들은 책 속에서 기업 경영 철학의 원천을 발견했고 기업의 사활이 걸린 중요한 시기마다 책에서 그 해답을 얻었다. 결국 ‘책’은 오늘날 CEO들을 성공의 자리에 올려놓은 일등 공신이자 또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킬 수 있게 하는 뛰어난 책사(策士)라고 할 수 있다.

LS전선의 구자열 회장은 토머스 프리드먼의 열혈 독자다. 『렉서스와 올리브나무』, 『세계는 평평하다』 등 프리드먼의 저서는 빠짐없이 읽었다. 한 달에 열 권 이상 책을 읽는 그가 임직원들에게 반드시 읽길 권한 책이 바로 프리드먼의 저서이다. 그러다보니 임직원들 사이에서는 “프리드먼의 저서를 읽으면 구 회장을 읽을 수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뉴욕 타임즈》의 칼럼니스트인 프리드먼이 세계 곳곳에서 목격한 세계화의 현장을 정리한 『렉서스와 올리브나무』는 새천년을 규정짓는 거대 담론이었던 ‘세계화’와 그 영향 그리고 앞으로의 전망을 잘 짚어낸 책이다. 구 회장은 자신의 경영 화두인 ‘글로벌’을 『렉서스와 올리브나무』에서 배웠다고 한다. LS전선(당시 LG전선) 대표이사로 취임하면서 어떻게 회사를 이끌어나갈까 고민하던 시기에 그는 이 책을 통해 세계화에 대해 확실히 이해하고. 글로벌 경영에 대한 통찰력을 키웠다.

다음 과제는 본격적인 글로벌화였다. 한국 시장만을 고집하며 국내 생산체제를 계속 이어가다간 경쟁업체들과의 싸움에서 뒤로 밀려날 것이 뻔했다. 그래서 구 회장은 중국으로 눈을 돌려 2005년 중국에 10만 평 규모의 산업단지를 만들었다. 그러나 해외에 사업장을 만든다고 해서 저절로 글로벌 기업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사람이 필요했다. 그것도 글로벌 시대에 걸맞은 사람이. 그때 구 회장 눈에 들어온 것이 바로 프리드먼의 책 『세계는 평평하다』였다. 이 책을 읽고 구 회장은 무릎을 쳤다. 그가 고민하던 모든 것이 이 책에 정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어떤 성장 전략이 진정한 글로벌 기업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하는지 그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었다.

“프리드먼의 지적처럼 변화의 속도가 엄청나게 빠른 ‘평평한 세상’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변화에 대한 민첩한 적응력과 시장 그리고 고객에 대한 정보를 빠르게 성과로 연결 짓는 속도가 필요합니다. 우리 회사의 해외 사업을 주도할 인재에게 필요한 덕목이 바로 이것입니다.”

책에 대한 구자열 회장의 사랑은 각별하다. 출장을 갈 땐 반드시 책을 챙긴다. 비행기나 호텔에 머무는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책을 읽고 분기별로 2~3권의 책을 골라 임직원들에게 권해준다. 일독을 권하고 싶은 책만 선별해서 ‘CEO 추천 올해 필독도서’ 목록도 직접 만들고 책을 선물하기도 한다.

SK에너지의 신헌철 부회장은 2003년부터 SK에너지 대표이사 자리를 맡으면서 재임기간에 회사 매출과 영업이익을 3배나 올려놓는 신화를 이뤄냈다. 2007년 SK에너지는 성장을 위해서는 당시 30~40퍼센트밖에 되지 않았던 수출을 늘리는 수밖에 없었다. 신 부회장은 그때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가 떠올랐다고 한다. 작은 도시에 불과했던 로마가 이탈리아와 아프리카, 중동, 영국에 이르는 넓은 지역을 거느렸던 이야기를 돌아보면 원하는 답을 얻을 수 있으리란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2007년 10월부터 그 책을 직원들과 함께 한 달에 한 권씩 차분히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로마인 이야기』 읽기 레이스가 이어졌다. 신 부회장은 그냥 책을 읽는 것만으로는 이야기하고 싶은 것들을 모두 담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놓은 아이디어가 사내 온라인 게시판에 별도로 창을 만들어 직원들이 자유롭게 토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2008년 12월까지 직원들은 하루도 빠지지 않고 꼬박꼬박 글을 올렸다. 효과는 놀라웠다. 직원들은 『로마인 이야기』를 읽어가며 ‘SK에너지 경영 제언’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직원들이 올린 것은 때로는 따끔한 질책이 되기도 했고 때로는 무릎을 탁 칠만한 경영 아이디어가 되기도 했다.

SK에너지 직원 2,000명 가운데 600명에 달하는 직원들이 『로마인 이야기』를 읽었을 정도로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경영 성과로 이어졌다. ‘카이사르의 리더십 분석’과 같은 임직원들의 각종 제언과 아이디어는 인사와 경영 평가에 큰 도움이 되었고 또한 직원들은 세계 시장으로 나가야 한다는 신 부회장의 대 명제를 스스럼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

“이 강을 건너면 인간 세계가 비참해지고 건너지 않으면 내가 비참해진다. 나아가자! 주사위는 던져졌다.” 신 부회장은 루비콘 강을 앞에 두고 고민하던 카이사르의 고뇌가 마치 해외 시장을 개척하지 않으면 죽음을 맞을 수밖에 없는 회사의 처지와 비슷하게 여겨졌다고 말하며 냉혹한 선택에 대한 굳은 결심이 느껴지는 카이사르의 이 말을 아낀다고 한다.

-『책 읽는 CEO』 중에서
(김현예 지음 / 비즈니스북스 / 288쪽 / 1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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