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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깨어나는 신비주의
담장 틈새에 핀 꽃이여,
내 너를 틈새에서 뽑아
뿌리째 손 안에 들고 있다.
작은 꽃이여,
하지만 네가 누구인지
뿌리째 전부 내 알 수만 있다면
신과 인간이 누구인지도 알 수 있으리.


19세기 영국 시인 테니슨의 짧은 시이다. 담장 틈새의 꽃을 만질 때 신비가의 손가락은 신의 옷섶에 닿는다. 신비가에게는 오색찬란한 황혼의 장관보다 황혼의 부름이 훨씬 더 실체다. 비록 증명하지 못하지만, 신이 우리 중에 누구와도 멀지 않고 옥수수에 부는 모든 바람 속에 호흡하며 모든 외로운 골짜기를 사랑으로 품고 있음을 느낀다.

한편 신비주의를 종교적인 의미에서 보면 그 이상이다. 그것은 신을 영혼의 은밀한 곳에서 찾고 구해야 한다는 교리이다. 바깥세상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거기서 신의 참 자태를 볼 수는 없다. 일출과 황혼과 저녁별은 그분의 길에서 변방일 뿐이다. 참된 연합이 이뤄지고 평화의 자태가 허락되는 곳은 우리 내면의 영혼, 숨은 성소, 인간 심령의 밀실 속이다. 종교적 신비가는 그것을 위해 인간이 자신의 내면으로 물러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침묵과 고독과 성찰 속에서 신의 실체에 대해 깨어나게 된다는 것이다.

여름날 산에 오르면 멀리 하늘로 피어오르는 오두막의 연기가 보인다. 우리는 멀리 보이는 길 위로 달리는 차들을 눈으로 좇다가 서서히 꿈에 빠져든다. 시각의 능동적인 힘이 풀린다. 그때, 바로 그때 무수한 날개의 속삭임 같은 소리가 슬그머니 우리를 찾아온다. 그렇게 바깥세상을 내려놓고 모든 것을 보면서도 아무것도 보지 않을 때, 신비한 신의 의식이 영혼에 은근슬쩍 다가온다. 처음에는 그저 직관일 수도 있다. 그분이 곁에 계신다는 설명할 수 없는 느낌일 수도 있다.

속세에 찌든 가련한 우리에게 그것은 그 이상의 경이로 이어지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하늘로부터 난 신비가에게는, 그도 사도 바울과 사도 요한처럼 하늘로 이끌려 가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을 들을 정도가 된다. 그런 황홀경 속에서는 하나님을 입증할 필요가 없다. 하나님이야말로 영혼이 더없이 사모하는 단 하나의 강렬한 실체로서, 호흡보다 가깝고 손발보다 가깝기 때문이다. 이제 우주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생생한 의식 아래서 흐릿해진다. 자연과 그 모든 빛나는 장면도 알맹이 없는 꿈의 허상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단 하나의 압도적인 실체는 하나님이다.

이교 신비주의와 기독교 신비주의는 차이가 있다. 이교도 신비가는 친구도, 동행도 없이 혼자 침묵 속으로 침잠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 신비가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배운 하나님의 모든 것을 가지고 침묵 속으로 들어간다. 그는 침묵과 은밀한 친밀감 속에서, 냉랭하고 불가해한 어떤 영이 아닌, 지금까지 사랑하기를 그치신 적이 없고 또 사랑하기에 희망을 그치신 적이 없는 아버지를 만난다.

거기에 예수님에 대한 의식은 없을지 모르지만, 예수님께서 시종일관 영광을 받으신다. 그리스도인 신비가가 만나는 대상은 예수님의 하나님이지 삼라만상의 어떤 알 수 없는 영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그가 구하는 모든 것과 하나님 안에서 찾는 모든 것을 그리스도의 삶과 말씀 속에서 구하고 찾도록 배웠다. 그리스도인 신비가는 이런 점에서 모든 범신론자나 신플라톤주의자와 다르며, 그 차이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신비주의가 주는 큰 유익은 신앙의 경직화를 막아 준다는 것이다. 냉랭한 교리에서 구원을 얻는 참된 길은 교회 안에 신비주의 정신의 숨통이 트이고, 무한하신 하나님을 향한 외경에 눈뜨며, 어린아이와 같은 경이의 정신이 살아나는 것이다. 나는 젊은 목사 시절에 서소(Thurso)로 파송돼 매우 특이한 환경에 처했다. 그곳 사람들에게는 교리가 신앙의 전부였다. 나도 골수 스코틀랜드 사람인지라 그런 교리에 점차 푹 빠져들었다. 나는 교리에 관해서라면 그들 중 누구와도 설전을 벌일 수 있었다.

하지만 그곳에는 더할 나위 없이 신사이면서 더할 나위 없이 신비가인 한 친구가 있었다. 그는 고독한 데다 실명까지 했지만 내면에 빛이 충만했고, 지금도 그곳에 살고 있다. 고백하건데, 나의 신앙이 지적으로만 치닫고 있을 때에 그 신비가인 친구가 나를 구해 주었다. 그는 정의도 좋지만, 그때에도 우리는 가만히 있어 그분이 하나님 되심을 알아야 함을 가르쳐 주었다. 심지어 십자가 앞에도 제 육시부터 제 구시까지 어둠이 있었음을 잊지 말라고 했다.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시편 46:10)

-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며』 중에서
(조지 모리슨 지음 / 두란노 / 263쪽 / 11,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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