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1 경제포털
뉴스  ·  증권  ·  부동산  ·  금융  ·  자동차  ·  창업  ·  교육  ·  세무  ·  헬스  ·  BOOK  ·  블로그   
등록예정 2023년 9월 등록예정 도서요약
북다이제스트
        
아이디/패스워드 찾기
회원가입
INFO BOOK
기도하는 존재
“부친께서 위독하신가 봐요. 뵈러 가셔야겠네요?” 식탁 위에 놓아둔 전보를 본 모양이다. “아니에요. 부친은 가끔 그런 전보를 제게 보내곤 하는데, 병을 앓을 분은 아니에요. 저보다 더 오래 사실 분이세요.” 커피를 타면서 등을 보인 채 답을 했다.

“중심을 잃어버리셨군요.” 그녀가 던져오는 말 속에는 힘이 있다. 그 힘이 텅 비어 있는 나의 가슴을 친다. 내 가슴 안에 가득한 어둠들이, 허무가, 공허가 출렁거린다. 혼란스럽다.

“정서 씨가 말하는 중심이 뭐죠?” 도망가는 대신 물었다. 정서니까. 그녀가 정서니까. “현실이라고 할까요. 천 년이 하루 속에 녹아 있고 하루가 천 년의 품속에 안겨 있는, 늘 중심 속을 걸어가도 늘 중심 속에 존재하는 거라고 할까요.” 그녀의 얼굴에는 잔잔한 미소가 흐르고 있는데 그녀의 눈에서는 눈물이 볼을 타고 계속 흐르고 있다.
“함께하는 건가요? 지금 이렇게 함께 심장이 뛰고 함께 숨을 쉬고 함께 눈물을 흘리는 것과 관계가 있는 건가요?”

“지성 씨는 모자를 쓰고 살아오신 거 같아요. 푹 눌러쓰고 난 안 보고 싶어. 내가 싫은 건 그냥 안 보고 살고 싶어. 봐 봤자야. 모두가 사람일 뿐이니까. 지금까지 겪어 온 이야기. 사람 사는 이야기. 가난할 뿐이야. 비참하고 야비할 뿐이야……. 그러다가 모자가 심장을 덮어씌우죠. 살아 있음이, 생명이 죽음의 권위에 굴복하는 거죠. 빛이 어둠 속에 갇히는 거예요. 나도 가만히 당하고만 있지는 않을 거라고, 모자 속에서는 이제 죽음의 이야기가 만들어지죠. 모자 속에 갇혀 버린 삶은 비판이라는 가시나무를 키우고, 원망과 짜증과 불평불만을 토하게 되고…… 중심을 잃어 가는 거죠.”

난 부친을 생각해 본다. 부친은 ‘유아독존’이 존재방식인 사람. ‘너’를 인정해 주는 감각 기관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 ‘나’ 이외에는 모두 벌레이거나 티끌이거나 부속품 정도로밖에 여기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어머니는 그 그늘 밑에서 이끼처럼 살다가 사그러지셨다. 늘 잔잔한 한숨이 가슴에 받치셨을 뿐……. 난 부친의 우월감에 대롱대롱 매달려 매미처럼 울었다. 큰 손, 큰 눈, 큰 고함소리, 큰 힘. 그 속에서 억압이라는 수치심을 먹고 자랐다.

“정서 씨는 사람 하면 어떤 게 떠오르나요?”

“기도요. 기도하는 모습이 보여요. 기도할 수밖에 없는 기도가 보여요. 전 사람은 기도라고 봐 왔어요. 물론 죽음이 보이죠. 죽음이 공격하고 죽음이 덮쳐 오고 죽음이 장난을 걸어 오죠. 협박해 오기도 하고 두들겨 패기도 하고 속이기도 하죠. 사실이에요. 현상이죠. 실제 일어나고 있는. 그러나 그것이 진실일까요?

죽음이 엄연한 사실이지만 또한 살아 있다는 것, 그러니까 죽음 앞에 살아서 존재한다는 것, 그것 또한 사실이죠. 살아 있는 것이 죽음과 연결되어 있다고 해서 삶이 죽음이라고는 느끼지 않아요. 전 삶을 그냥 삶 자체로 품었어요. 생명을 그냥 생명 그 자체로 품어서 호흡해요. 너무 빨리 앞서가지도, 그리고 너무 멀리 바라보지도 그리고 너무 조급하게 결론을 내리지도 않았어요.

그보다는 오히려 전 삶에 대해서 너무 신기해요. 하루하루 순간순간 경험하는 것들이 모두 새로운 것이거든요. 전 기억 속에서 저를 찾기보다는 지금 이 순간 제가 존재한다는 것에 대해 무한히 감사하고 경이로워요. 내 앞에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 또는 ‘나’가 이 순간의 삶을 어떻게 통과해 나갈지 아무것도 모르고 또 모른다는 걸 사랑해요. 흥분하죠. 전 사람을 잘 몰라요. 나에 대해서도 모르죠. 모두들 인생을 끝까지 살지 않았으니 완성되지 않은 거니까. 난 세상을 잘 몰라요. 지구를 잘 모르고 우주는 더 모르고, 하지만 하루하루 순간순간 살아가는 데 크게 힘들지는 않아요.

내게도 고통이 깊게 찌르면서 들어올 때가 있지요. 생명을 위협할 만큼. 생명의 떨림을 느끼죠. 흔들리죠. ‘생명을 뽑아 버리겠다!’라는 의지! 생명 밖에서 안으로 전해져 오는 메시지. 그럼 기도해요. 떨림 속에서, 흔들림 속에서, 난 나의 삶을 사랑한다. 난 생명을 사랑하고 살아 있음에 감사한다.

난 노래해요, 지금을. 그리고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를 배우고 싶어요. 뭘 구해야 하는지를 기도해요. 지금 이 생명 속에서 이 떨림과 흔들림과 또 다른 의지 속에서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지를 난 배우길 원해요. 자라 가고 넓어져 가고 변화해 가고……. 나에게 있어서 ‘나’라는 건 늘 신비로워요. 다르니까.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가 모두 지금의 ‘나’ 속으로 흘러 들어오죠. 자연스럽게.”

- 『망그로브 숲』 중에서
(최영윤 지음 / 말과창조 / 205쪽 / 11,000원)
번호 | 제목 | 날짜
434 나 때문에 아파하는 당신에게 2015년 07월 31일
433 참 자아를 찾아서 2015년 06월 29일
432 당신은 사랑받는 사람입니다! 2015년 06월 02일
431 기도하는 존재 2015년 04월 30일
430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믿음의 인내 2015년 03월 30일
429 지금 살아 있음이 행복입니다 2015년 03월 02일
428 파이 이야기 2015년 02월 02일
427 삶이 우리에게 주는 좋고 나쁜 모든 것 2014년 12월 31일
426 어떤 눈물? 고통 아니면 기쁨 2014년 12월 01일
425 오늘 더 행복해 2014년 10월 31일
단체회원가입안내
독서퀴즈이벤트
나도작가 신청안내
무료체험
1분독서영상
한국독서능력검정 신청
모바일 북다이제스트 이용안내

인재채용 | 광고안내 | 구독신청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용약관 | 서비스문의 이용문의:mkmaster@mk.co.kr
회원문의:usrmaster@mk.co.kr
매경닷컴은 회원의 허락없이 개인정보를 수집, 공개, 유출을 하지 않으며 회원정보의 보호를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